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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샤갈' 빛·공간·색채… 상상하라! 그대도 자유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내달 3일 개막]
붉은 빛 머금은 사랑 이야기, 푸른 빛이 감도는 콘서트홀…
마법같이 느껴진 색채의 향연… 정작 무덤엔 아무런 장식 없어

니스= 글ㆍ사진김지원기자 eddie@hk.co.kr

1977년 90세 때의 샤갈. ⓒArchives Marc et Ida Chagall, Paris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발레 '파키타' 공연이 열린 지난 3일 밤 파리오페라극장. 프랑스 장교 루시앵과 사랑에 빠진 스페인 집시 소녀 파키타가 우아하고 경쾌한 몸짓으로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의 점프가 향하는 곳에서는 또 다른 한 편의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춤을 추는 무희들, 피리를 부는 천사, 날아오르는 새들, 꼭 껴안은 연인들…. 바로 20세기 최고의 색채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이 파리오페라극장에 그린 천장화다.

이 천장화에 대해 샤갈은 이렇게 말했다. "이론이나 방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다.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색채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 비테프스크 빈민촌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샤갈은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평생을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베를린, 뉴욕 등지를 떠돌며 살았다. 그에게 프랑스는 인생의 절반을 살았던 제2의 고향이었다.

한국일보와 서울시립미술관 공동 주최로 12월 3일부터 내년 3월 2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샤갈 회고전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을 앞두고 프랑스에서 샤갈의 흔적을 되짚었다.

파리오페라극장 천장화의 감동을 품은 채 향한 곳은 프랑스 남부 니스의 국립마르크샤갈미술관. 지중해의 반짝이는 햇살과 올리브 나무가 가득한 정원 한가운데, 현대적 외관의 나지막한 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주도해 1973년 건립된 미술관이다.

샤갈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인간의 창조’ (왼쪽)와‘이삭의 희생’ 등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이곳에 성서를 주제로 한 대형 유화 17점을 비롯해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450여점의 작품을 기증한 샤갈은 미술관 디자인에 깊숙이 관여했음은 물론, 작품의 배치까지 직접 결정할 만큼 열정을 쏟아부었다. 미술관이 문을 열던 날 샤갈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평화와 영적인 깨달음,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술관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주제로 한 대형 유화 12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광이 내리치는 가운데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그림 '인간의 창조'를 시작으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아브라함과 세 천사' '노아와 무지개' 등이 무지개처럼 걸려있었다. 유대인이었던 샤갈은 "성서는 가장 위대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곤 했고,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는 성서화를 통해 엄숙한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시적인 표현과 아름다운 색채로 보편적 인류애를 담아냈다.

널찍한 공간 사이사이에 놓인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말없이 샤갈의 그림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부인과 함께 프랑스 릴에서 왔다는 헤몽 방델베르그(60)씨는 "빛과 공간, 색채의 만남이 마법같이 느껴진다"며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마치 우리가 아담과 이브가 된 것 같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샤갈이 1964년 완성한 파리오페라극장의 천장화. 

'나의 아내 바바. 나의 기쁨, 나의 환희'라는 샤갈의 글귀로 시작되는 다음 전시실은 온통 붉은 빛이다. 구약의 아가서를 테마로 한 5점의 그림에는 샤갈이 말년을 살았던 생폴드방스의 풍경 위로 날아오르는 신랑과 신부, 꽃 속에 파묻힌 여인, 악기를 연주하는 새 등 온통 사랑의 이미지들이 물결치고 있다.

전시실뿐 아니라 미술관 곳곳에 샤갈의 손길이 남아있다.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창조'의 푸른 빛이 감싸고 있는 콘서트홀, 뚜껑에 샤갈의 그림이 그려진 고악기 쳄발로, 미술관 창 밖으로 보이는 샤갈의 모자이크화 등은 하나같이 삶에 대한 긍정과 평화를 노래하고 있었다.

샤갈미술관에 설치된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니스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생폴드방스에 닿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피카소, 마티스, 레제 등 미술사의 많은 대가들이 빛을 따라 프랑스 남부 해안지역 코트다쥐르 부근에 자리를 잡았고, 샤갈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다. 샤갈은 1950년 파리에서 방스로 이주한 데 이어 1966년 다시 인근의 생폴드방스로 옮겨 생의 마지막 20년을 살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의 그림은 더욱 찬란해졌다.

작은 갤러리와 공예품점이 양쪽으로 늘어서있는 꼬불꼬불한 돌길을 올라가다 만난 작은 공동묘지. 수많은 무덤 사이 한 구석에 샤갈과 그의 두 번째 아내 바바가 함께 잠들어 있다. 색색의 꽃다발, 사진 등이 놓여있는 다른 무덤과 달리 샤갈의 무덤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무덤덤했다. 폭발하듯 현란한 색채와 동화처럼 환상적인 작품세계와 상반되는 소박한 무덤의 모습이 샤갈의 외롭고 고달팠던 인생 여정을 말하는 듯했다.

추모의 뜻을 담은 돌이 하트를 이루고 있는 샤갈의 무덤. 


육중한 회색빛 돌 위에 새겨진 샤갈의 이름 주위에는 수많은 조약돌들이 하트를 이루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샤갈을 향해 남긴 사랑과 위로의 표시다. 그 위에 살짝 작은 돌 하나를 더해놓으며 샤갈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스스럼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낼 때,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기교이고 종교이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11/09 21:08:08  수정시간 : 2010/11/09 22:2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