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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여인네들 수다도, 역앞 불만 게시판도 공공미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참여 작가 수전 레이시와 전시기획자 전승보 대담
 

‘2010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열리고 있는 안양시에서 전시기획자 전승보씨(왼쪽)와 ‘뉴 장르 공공미술’의 이론가인 수전 레이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들의 수다도 공공미술이 된다? 물론이다. 2일 개막한 2010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예술감독 박경)에선 우리 삶을 더 좋도록 만드는 시시콜콜 일상사 모든 것이 공공미술로 인정받는다. 경기도 안양역 광장에 세운 파노라마 간판에 불편한 점을 스티커에 써붙인 ‘불평박물관’도 공공미술이고, 안양시내 7개 중·고등학생 3000명이 함께 사진으로 남긴 ‘2010 만안의 이미지-기록과 기억’도 공공미술이다. 건물 앞에 우뚝 서 먼지만 쌓여가던 환경조형물만 공공미술은 아닌 것이다.

주민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에 무게를 실은 ‘뉴 장르 공공미술’이 새 흐름으로 떠올랐다. 올 APAP에 ‘우리들의 방: 안양 여성들의 수다’ 프로젝트를 들고 참여한 ‘뉴 장르 공공미술’의 이론가 수전 레이시(64·미국 오티스미술디자인대학원 학장)를 전시기획자 전승보(46·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 추진위원)씨가 만나 한국 공공미술의 미래를 얘기했다.
 

1987년 미국의 KTCA 공영방송에서 생방송 중계된 ‘크리스털 퀼트’. 60~100세 할머니 430명이 자신들의 문제와 이룬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작품’이다. 수전 레이시를 세계에 알린 ‘뉴 장르 공공미술’의 대표작으로, ‘안양 여성들의 수다’의 모델이 됐다.
 
전승보(이하 전): 이번에 출품돼 화제를 불러온 ‘우리들의 방: 안양 여성들의 수다’는 어떤 작품인가.

수전 레이시(이하 레이시): 안양 여성들의 사소한 잡담을 공공의 장으로 가져온 것이다. 15개 공공장소에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과정은 그들의 삶의 초상이다. 한국 여성들에게 미래는 무엇인가, 다가오는 10년 후에 어떤 의제가 여성들의 삶을 더 풍족하게 만들 것인가, 한국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기여를 어떻게 더 강력하게 만들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나누고 소통해야 할 공공미술이 아닌가.

전: 한국에서 공공미술은 아직도 길거리나 대형 건물 앞에 놓이는 조각상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레이시: 한국은 미술계 내부, 즉 상업화랑·미술관·미술잡지 등으로부터 외부로 예술을 가져오는 경로가 정형화되어 있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공공미술에서 ‘공공’은 공적인 공간이고, 그 공간 안에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래서 한국의 공공미술은 자연스럽게 공원, 시청광장 등과 같은 공적인 공간 속에 조각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APAP에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도시 전체를 통해 일어나는 예술로 공간을 재위치시키는 것이다. 한국이 다원화된 사회, 민주적인 통합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술이 공공미술로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전: 뉴 장르 공공미술에서 시민들의 참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레이시: 그것은 미술과 관람객에 대한 전통적인 예술개념에 대한 도전이다. 예술은 오직 보여주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시민들 스스로 참여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는 제안이다. 사람들이 단지 예술을 목격하기보다는 참여자가 되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며 우리 문화의 일원으로 동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요즘 정치가들이 부르짖는 시민통합이 아닐까.

전: 그동안 분리되었던 예술과 사회, 예술행위와 현실, 관객과 예술가를 연결시키는 뉴 장르 공공미술은 오늘의 한국에서 몹시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상 후원을 얻기 위해 정부나 기업을 설득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닌데.

레이시: 후원 기관들이 공공미술에서 물질적인 결과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뉴 장르 공공미술을 작업하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경험이다. APAP의 결과물은 ‘활동과 경험’이다. 나는 활동과 경험이 시민 통합과 참여의 개념 안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뉴 장르 공공미술이 다양한 시민에게 ‘목소리를 줄 수 있다’는 그 아름다운 공유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더 큰 전체, 즉 도시의 일부분으로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전: 2005년부터 안양시에서 주최해 온 APAP는 올해 3회째를 맞으면서 한국에 낯선 뉴 장르 공공미술을 대거 소개해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로서 APAP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레이시: 안양시의 많은 영역을 묵묵히 탐구해 온 박찬응의 ‘스톤 앤 워터’, 재개발지역의 방치된 공간을 저비용으로 활성화한 ‘오동팀’ 등 안양은 이미 훌륭한 뉴 장르 공공미술의 본보기를 일궈왔다. 나는 몇 년 안에 이 프로젝트가 한국 공공미술의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리라고 본다. 안양시의회 또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예술적 경험과 결합함으로써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정리=정재숙 선임기자 ,
사진=APAP 조직위원회 제공

중앙일보 | 2010.10.04 00:19 입력 / 2010.10.04 00:19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