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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산업 中에선 `귀한 몸` 한국에선 `찬밥`


애니메이션 제작사 JM애니메이션과 선우엔터테인먼트는 요즘 우울하다. KBS 2TV가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 맞춰 양사의 애니메이션 '쥬로링 동물탐정'과 '최강합체 믹스마스터' 방영 시간대를 기존의 오후 4시30분에서 오후 3시5분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 시간대에는 아이들이 집에 없어 가뜩이나 낮은 시청률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방영 시간을 오후 6시대로 옮겨 달라는 업계의 요청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병규 한국애니메이션협회 이사는 "중국 등 외국에서는 방송사들이 애니메이션에 직접 투자하고 프라임타임에 내보낸다"며 "그런데 국내에서는 방송사의 홀대로 애니메이션 산업이 중국에 추월당할 위기"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방송사들의 투자에 힘입어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빅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 '시양양과 후이타이랑'은 지난해 8000만위안(약 144억원)의 흥행 수입을 거뒀고 올 들어 속편도 1억위안(180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편당 제작비가 1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초대박'이다. 게다가 출판,문구,완구,의류,식품 등 캐릭터 상품 매출규모는 1조8000억원을 헤아린다. 장편 애니메이션 성공 사례가 없는 한국으로서는 차세대 애니메이션 산업 주도권 쟁탈전에서 중국에 밀릴 처지다. 

중국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은 방송물의 성공에 따른 브랜드파워 덕분이다. 상하이미디어그룹(SMG)은 2005년 이 애니메이션을 프라임타임대에 방영해 최고 1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중국 정부의 애니메이션 육성 정책에 따라 방송사는 중국산과 수입산을 7 대 3 비율로 내보내고 있다. 프라임타임대에 외국산은 방영하지 않는다. 방송사들은 또한 제작비의 절반 안팎을 투자한다. 수입사는 쿼터제 적용을 받아 자체 제작분만큼만 수입할 수 있다. 이로써 중국 애니메이션 제작량은 2004년 2만3800분에서 2008년 13만1042분으로 5배나 늘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세제 감면과 투자 확대 등 금융지원책까지 내놨다.

반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표면적인 성장세와 달리 내실은 허약하다. 지난해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전년 대비 30% 성장한 404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상파가 방송시간의 1%,케이블전문채널이 35%를 국산으로 채워야 하는 총량제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KBS 등 지상파는 시청률 사각지대인 오후 3~4시,전문채널들은 새벽 시간대에 주로 방영한다. 이 시간에는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 있거나 잠을 잔다.

투자 부진도 문제다. 방송사들은 한때 편당 제작비의 30~40%까지 투자했지만 최근에는 투자비를 10% 선으로 줄였다. 아예 구매로 바꾸는 사례도 늘고 있다. 투자의 절반 이상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떠맡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방송사들은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방송법 제73조에 따르면 어린이 타깃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광고'란 자막을 넣어야 하고 애니메이션 관련 회사의 제품 광고도 할 수 없다. 방송사로서는 모두 부담스런 조항이라는 얘기다. 내용면에서도 국산의 오락성이 뒤진다고 지적한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해 오락성이 떨어져 시청률이 낮고 광고도 붙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오후 6시대에 방영하면 시청률이 올라가고 광고도 쉽게 붙는다"고 반박한다. 또 제작비의 절반 안팎을 투자하는 중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의 방송사에 비해 국내 방송사들의 역할은 너무 작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지상파가 프라임타임대에 국산을 방영하면 총량제 비율 산정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처럼 지상파 방송사의 총예산 혹은 매출의 1%를 애니메이션 산업에 투자하는 내용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애니메이션 제작자는 "애니메이션을 캐릭터 산업 등으로 키우려면 프라임타임대 방송이 필수적"이라며 "외국처럼 국내 방송사들도 애니메이션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달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한국경제 2010.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