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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칼럼] 만약 앙드레 김이 휴대폰을 디자인했다면...

얼마 전 타계하신 앙드레 김 선생을 단지 패션 디자이너로 정의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 확실한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다.

무엇보다 패션쇼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엘레강스한’ 마담 여성복은 물론 언더웨어와 가전, 심지어 인테리어와 건축에도 발자국을 남기신 말 그대로 전천후 디자이너였다. 심지어 김봉남이라는 친근한 본명은 물론 자신의 독특한 어투가 개그 소재로 활용되는 것에도 평소에 결코 화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즐기셨다고 전해진다.

앙드레 김이 없었다면 스타들의 멋진 패션쇼 장면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승엽이나 박세리 같은 스포츠스타가 패션쇼를 한다는 정말 기상천외한 발상을 누가 했을까? 그런 점에서 앙드레김은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닌 패션을 무기로 삼은 최고의 마케터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본인이 직접 CF에도 나오셨지만 얼마 전부터는 하얀 옷을 입은 안드로보이가 바쁘신 선생을 대신해 휴대폰을 소개하는 장면은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가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물론 아쉽지만 앙드레 김이 직접 디자인한 휴대폰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무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이라고 하더라도 휴대폰이나 IT제품은 확실히 다른 분야인 까닭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앞으로도 선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 특별한 앙드레김 에디션 같은 제품을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만약 앙드레 김이 산업디자이너였으면 과연 어떤 제품들을 만드셨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실 애플을 이끌어가는 진정한 힘은 스티브 잡스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과 함께 조너던 아이브라는 천재 디자이너가 없었으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영국 출신의 이 디자이너는 애플의 초창기부터 일해온 이는 아니다. 가장 애플이 어려웠던 1990년대에, 스티브 잡스의 컴백 즈음에 애플에서 디자인을 사실상 책임졌다. 그가 애플에서 처음 선보였던 제품은 지금은 사라진 뉴튼이라는 PDA였고, 디자인을 책임지면서 처음 선보였던 제품이 다름 아닌 일체형 컴퓨터의 교과서인 iMac이었으며, 얼마 후 지금껏 팔리는 아이팟을 선보이면서 오늘날 애플의 이름에서 컴퓨터를 없앤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나단 아이브의 정확한 직책은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다. 디자인에 비중이 큰 애플답다. 하지만 사장인 스티브 잡스는 그를 단지 디자인 담당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조나단 아이브를 가리켜 천만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 사람이라고 극찬했고, 최소 하루에 한번 이상은 대화를 나눈다고 알려진다. 2007년 맥월드 엑스포에서 당시 애플이 막 선보인 신제품, 바로 아이폰으로 스티브 잡스가 제일 먼저 통화한 사람은 그의 가족이 아니라 다름 아닌 조나단 아이브였다는 것이 그의 가치를 잘 말해주는 부분이다.

그 후로 그는 지금껏 팔리는 거의 모든 애플 디자인을 말 그대로 창조했다. 그 대부분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벌래먹은 사과라는, 사실상 사망진단을 받았던 애플을 오늘날 보유현금만 30조에 가까운 엄청난 기업으로 키우는 데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만약 우리에게 IT분야의 앙드레 김, 한국의 조나단 아이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멋진, 그리고 훨씬 쓰기 편한 갤럭시S를, X노트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한 디자인이란 겉모습이 아니라 기능인 까닭이다.

예를 들어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은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흔히 심플하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단지 흰색이 주는 느낌만이 아니라, 필요없는 기능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쓰기 편한 기능에는 더 많은 공간과 배려를 해주는 디자인 철학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능력이 없지만, 앞으로 많은 이들이 산업디자인의 영역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속옷에만 쓰던 흰색을 과감하게 겉옷에 쓴 선구자적인 디자인 철학을 가진 앙드레 김이 만약 요즈음에 활동을 시작하셨으면 분명 IT제품을 비롯한 산업디자인에도 도전하셨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때도 흰색을 고집하셨을 것은 분명하지만...

P.S. : 앙드레 김 선생님은 전혀 모르시겠지만 개인적인 추억이 하나 있다. 몇 해 전 캐나다 출장길에 우연히 가족여행을 가시는 고인을 뵌 적이 있다. 항공사의 배려로 이코노믹석에서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하신 앙드레 김 선생은, 이코노믹석에 남은 손자를 위해 손수 냅킨에 일등석에만 나오는 맛난 과자며 간식거리를 정성스럽게 싸서 가져다 주셨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정으로 손자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화려한 디자이너로서의 모습보다는 정말 순수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베타뉴스 | 2010-08-23 15:08:25 / 김영로(bear@beta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