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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패션 한국 세계에 수놓은 '국민 디자이너'

앙드레 김 별세
파리패션쇼 첫 진출… "그의 무대서야 진짜 스타" 명성

앙드레 김 패션 인생 화보보기

앙드레 김이 1970년대 한국 최초의 할리우드 스타인 필립 안을 환영하는 리셉션에서 영화배우 최은희(왼쪽), 윤정희(오른쪽)씨 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앙드레 김이 199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초청을 받아 열었던 바르셀로나 패션쇼를 마친 뒤 열린 리셉션에서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의 부인 비비스(가운데) 여사와 담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앙선생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한국 패션계의 큰 별이 졌다. 12일 타계한 앙드레 김은 ‘남성 패션디자이너 1호’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한국 패션계의 거장이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그는 연간 20회가 넘는 국내외 패션쇼를 하면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공로를 인정해 정부는 1977년 패션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수여했으며, 2000년 프랑스 정부는 예술문학훈장을 주었다. 사업가로서도 성공의 길을 걸었다. ‘앙드레 김’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앙드레 김은 어릴 시절에 일찌감치 패션디자이너 자질을 드러냈다. 한국전쟁이 발발해 피란갔던 부산에서 외국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가 입은 옷을 보면서 디자이너 꿈을 키웠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마이 판타지>에서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퍼니 페이스>를 보고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 한영고를 졸업한 뒤 홀로 서울로 올라와 디자이너 최경자가 운영하는 양장점에서 일하면서 패션디자이너 꿈을 키워나갔다. 1961년 최경자가 국제복장학원을 세우자 1기생으로 입학했다. 이듬해 학원을 졸업한 후 서울 소공동에 ‘살롱 드 앙드레’라는 의상실을 내고 패션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앙드레라는 이름은 당시 주한 프랑스 외교관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부르기 쉬운 외국이름이 있어야 한다며 붙여준 것이다.

1966년에는 프랑스의상협회 초청으로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열어 ‘선경(仙境)의 마술’(르 피가로)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1968년에는 미국 뉴욕에서 패션쇼를 여는 등 세계무대로 진출했다. 특히 이집트 카이로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등에서도 패션쇼를 열면서 한국 최고의 패션디자이너로 자리잡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식 초청을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그가 연 패션쇼에는 당대 최고 연예인이 출연해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앙드레 김 무대에 서야 최고의 스타’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심은하와 이영애, 배용준, 장동건, 김희선, 최지우, 김태희, 이병헌 등 당대 최고 스타가 그의 무대에 올랐다. 이밖에 프로골프선수 박세리와 격투기스타 추성훈, 개그우먼 조혜련도 무대를 거쳐갔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 배우 나스타샤 킨스키, 브룩 실즈 등 해외 유명스타도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옷을 입을 정도였다.

앙드레 김은 패션뿐만 아니라 보석과 도자기, 속옷, 안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앙드레 김’브랜드를 잇따라 론칭하면서 사업영역을 넓혔다. 특허청에 등록된 앙드레 김 상표만도 아파트와 냉장고, 에어컨, 신용카드, 침구, 속옷, 자전거 등 17가지나 된다.

그는 1999년 정ㆍ관계를 뒤흔든 ‘옷로비 청문회’를 계기로 폐션계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의 옷 매장에서 당시 검찰총장 부인, 장관 부인 등이 구입한 것으로 지목돼 국회청문회에 참고인으로 불려 나와 ‘김봉남’이란 본명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흰옷과 독특한 화장법, “판타스틱하다”는 말을 특유의 억양과 어투로 자주 쓰면서 개그소재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앙드레 김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많은 연예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성대묘사하는 것에 대해 “순간 민망하기도 했지만 나를 희화화한 게 내 이미지에 전혀 마이너스가 안 됐다”며 대인의 면모를 보였다. 흰옷을 입고 새까맣게 머리 염색하고 이마 윗부분까지 까맣게 칠한 독특한 헤어스타일, 거의 흰색이 될 정도로 진하게 메이크업한 얼굴은 국민 가슴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08/12 23:47:36  수정시간 : 2010/08/13 10: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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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환상' 추구했던 앙드레 김 패션
트렌드 배제… 잘 짜여진 공연같은 패션쇼 추구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관련기사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극단적 노출을 피하고 여성의 지성미와 우아함을 강조하는 독창적인 패션 세계로 주목받았다.

흔히 '일곱 겹 드레스'로 대변되는 그의 패션 키워드는 '꿈과 환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생전 즐겨썼던 '로맨틱'(romantic. 낭만적인)이나 '판타스틱'(fantastic.환상적인) 같은 단어에서 그가 추구했던 패션의 이상이 드러난다.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담겨져야 한다"고 했던 그의 패션 철학은 무엇보다 패션쇼에서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다른 패션디자이너들이 패션쇼에서 다음 시즌에 유행할 의상을 선보이는 것과는 달리 앙드레 김의 패션쇼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앙드레 김 자신도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한편의 잘 짜여진 공연처럼 패션쇼를 연출했다. 모든 패션쇼를 직접 기획하고 콘티를 짜며 배경음악까지 본인이 편집해 구성하는 것 역시 자신의 패션철학을 패션쇼에서 응집해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저는 패션쇼를 종합예술의 스테이지로 생각하죠.(중략) 일반적인 패션쇼에서는 앞으로 나타날 트렌드를 알려주고 또 상품을 홍보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저는 달라요. 그 어떤 종합예술적인 감동, 가슴을 파고드는 애틋함,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독감과 그리움, 슬픔, 숭고한 사랑, 가슴을 파고드는 아름다움, 그것들이 혼합된 세계가 이루는 분위기가 저는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회고록 '마이 판타지'중)

그의 의상은 또 '품위'를 강조하며 노출을 자제한 것이 특징이다.

"의상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패션 철학은 인텔렉추얼한, 지성적이면서도 교양미 있는 품위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배꼽이나 가슴을 노출해야만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옷을 입었을 때 정신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의상에서는 시대적인 변화와 함께 가장 지적인, 영원한 아름다움이 풍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005년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

앙드레 김은 또 동양적 신비감을 표현하는데도 신경을 썼다. 중국이나 태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패션쇼를 열 때마다 각국의 전통 문양을 사용해 의상을 디자인함으로써 해당 국가의 느낌을 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특히 일류 디자이너의 조건으로 특이하게 '국가관'과 '사명감'을 꼽기도 했다. 한국인이며 아시아인이며, 동양인이라는 자부심이 패션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작권자 (C )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입력시간 : 2010/08/12 22:36:39  수정시간 : 2010/08/12 22:3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