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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의 왜?]애니메이션 수작 ‘소중한 날의 꿈’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던 근대 초기의 회화와 사진술에 빚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화의 출현을 예비했던 중요한 장르이다. 초기 영화가 일종의 ‘마술’로 통용됐던 것에 비해서 애니메이션은 인간 본연의 기교를 보여주는 인내와 노력의 산물로 받아들여졌다.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했던 노력은 기계에 대한 인간의 관심으로 발전했다. 영국의 작가 게비 우드가 쓴 <에디슨의 이브>에 보면 어떻게 자동장치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이 애니메이션과 맞닿아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우드에 따르면 인간을 기계에 비유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근대철학의 창시자 데카르트였다. 인간에 대한 철학적 상상력이 기계의 개념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결국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첨단 로봇 기술의 원천이고,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집요한 관찰과 반복적 노동을 요구하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가 기원적으로 회화적 전통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화석 같은 것이 애니메이션이다. 최근 서양의 애니메이션이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첨단의 기술을 도입하면서 실사 영화의 논리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동양의 애니메이션은 회화적 전통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일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것은 근대성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화가 소멸시키거나 그 과정에서 초래된 문제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밀고 가는 힘이다. 이처럼 회화성을 포기하지 않는 애니메이션은 실사로 구현하기 어려운 상상력을 현실화한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회화라는 장르에 고유한 아름다움을 통해 현실에 대한 낯선 감각을 제시하는 효과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실사로 찍을 수 없는 대상을 적절하게 그려낼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사라져버린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서 보여주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최근 개봉한 안재훈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도 이런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떻게 애니메이션 고유의 장점에 기대어서 감독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작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봐줘야 한다는 수준을 넘어 애니메이션 자체의 논리를 구현한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찰력과 인내심이 결합해서 빚어낸 작화의 세련성뿐만 아니라, 주제와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이야기 구조가 왜 지금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봐야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중한 날의 꿈>은 사라진 것들을 부단하게 발굴해서 끈질기게 복원해낸다는 점에서 고고학자의 탐구심을 닮아 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쓸모없다고 여기면서 한국 사회가 버려온 낡은 것들을 소중하게 찾아내어서 전시해놓은 박물관 같다.

빨간 밍크 담요나 남루한 수건의 이미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노스탤지어를 넘어선 복고에 대한 염원이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 아래 지층처럼 남아 있을 ‘버려진 것들’을 되살려내는 작업은 복고취향을 벗어난 정당한 과거의 귀환을 가능케 한다. 침수와 산사태로 신음하는 ‘디자인’ 서울의 참상을 목도하는 지금, 대체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바삐 여기까지 왔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입력 : 2011-07-29 21:54:38ㅣ수정 : 2011-07-29 21: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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