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왜 디자인 싸움닭이 됐나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번질 기세다. 올 4월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낼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흔하디흔한 특허분쟁’의 하나로 여겼다. 원래 정보기술(IT) 분야는 내로라 하는 업체들이 뒤엉켜 서로에게 소송을 걸어대는 아수라장이다. 게다가 애플은 스마트폰 분야에서 삼성의 경쟁자이지만 아이폰 부품을 대량 구입하는 고객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한동안 다투다가 적당히 타협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다. 그런데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삼성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에 “이동통신 핵심 특허를 도용한 아이폰·아이패드의 수입을 금지해 달라”고 제소했다. 애플은 미국 회사지만 제품은 중국의 폭스콘에서 만든다. 이에 맞서 애플은 미국 법원에 삼성 제품의 수입금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신청했다. 부품을 삼성 대신 대만 TSMC와 일본 도시바에서 사려 한다는 소문도 나돈다. 일부에서는 “오랜 파트너가 추한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미국의 특허 전문가 플로리언 뮐러)”는 분석까지 나온다.
“특허보다 트레이드 드레스가 핵심”
디자인 분야에서 애플은 대단한 싸움꾼이다. 특히 사과 로고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이다. 비틀스의 음반사인 영국 애플코프와는 30년 전쟁을 벌인 끝에 2007년 아예 상표권을 사들였다. 얼마나 들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사이로 추정한다.
애플코프와의 협상이 마무리되자 애플은 공세에 나섰다. 그런데 대부분 헛손질이었다. 애플은 2008년 뉴욕시의 환경 캠페인 ‘녹색 뉴욕(GreeNYC)’의 로고가 자사의 것과 비슷하다고 상표심판위원회에 제소했다. 결과는 대망신. “뭐하자는 거냐”는 뉴요커들의 비아냥을 들었을 뿐이다. 애플은 캐나다 빅토리아경영기술학교(VSBT)에도 사과 모양 로고를 빼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호주 수퍼마켓 체인 ‘울워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울워스는 “W자를 형상화한 우리 로고는 아무리 봐도 양배추나 호박에 가깝다”며 “(설사 사과라고 쳐도) 모든 사과가 애플 소유냐”는 성명을 냈다. 당연히 애플의 상표권 요구는 기각됐다.
애플이 시비를 건 로고들. 윗줄 왼쪽부터 울워스, 빅토리아기술경영학교, 그린뉴욕.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전자계산기앱(왼쪽)은 원조 격인 독일 브라운 제품과 주황색 등호(=) 버튼까지 닮았다.올 들어 애플은 상표권이 아닌 ‘트레이드 드레스’(제품 특유의 색깔·크기·모양)까지 소송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첫 타깃은 삼성이 됐다. 애플은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기술 특허뿐 아니라 외형 디자인과 유저인터페이스(UI), 심지어는 포장 방식까지 아이폰을 도용했다고 비난했다. 고소장에서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한 검정 사각형 기기에 은색 테두리를 두른 디자인 ▶통화·메시지·설정 등의 아이콘 ▶제품 사진과 은색 글씨가 새겨진 포장박스 등을 예로 들었다. 모두 15가지 항목에 달한다. 애플은 “삼성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전방위로 베끼는 비열한 모방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소위 ‘룩앤필(look & feel)’을 문제 삼은 것이다. 소비자들이 아이폰 상표뿐 아니라 디자인과 포장방식까지 애플만의 독특한 것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IT 전문 온라인매체인 엔가젯의 편집장을 지낸 특허 전문가 닐레이 파텔은 “특허나 상표권이 아니라 트레이드 드레스가 소송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자사 제품이 애플과 유사하지 않다고 주장해야 하고, 소비자들이 애플과 삼성을 헷갈려하지 않는다고 반박해야 한다”며 “간단하게 들리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아이폰의 전자계산기앱은 50년 전 나온 독일 브라운 제품에 대한 오마주다. 브라운의 디자인팀장이던 디터 람스는 애플의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일컬어진다. 장식을 배제한 극도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산업디자인 분야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그는 “사람들은 ‘애플이 당신 디자인을 베꼈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고 말했다. 람스는 “애플의 디자인과 내 디자인이 연결돼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덜할수록 좋다(Less and More)’는 내 디자인 철학에 따른 것”이라며 “나에 대한 찬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애플 역시 디자인 부분에서 삼성에 대한 배타권을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3대륙 6개국에서 삼성과 난타전
삼성은 디자인 분야에서 힘겨운 방어를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특허에 관해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최첨단 이미지와는 달리 애플은 특허 부문에서 그다지 강력한 회사가 아니다. 삼성은 지난해 미국에서 4551건의 특허를 등록하며 IBM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애플은 563건으로 46위다. 삼성은 전 세계에서 10만여 건에 달하는 촘촘한 특허 그물을 짰다. 통신 분야에서 삼성과 노키아·모토로라 등은 수십 년간 특허를 쌓아 ‘올드보이’라고 불린다. 다양한 기술이 얽혀 있어 올드보이들끼리는 소송을 걸지 않는다. 아이폰을 만든 지 4년밖에 안 되는 ‘신참’ 애플이 특허 공세를 피해 가기 쉽지 않다. 삼성이 북미(미국)·아시아(한국·일본)·유럽(독일·영국·이탈리아) 세 개 대륙 6개국에서 자신 있게 소송에 나서는 이유다.
애플은 삼성 외에도 노키아·HTC·모토로라 등과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실제로 노키아는 최근 애플과 특허 라이선스 협정을 체결하고 모든 특허분쟁을 마무리했다. 애플은 노키아에 로열티를 지불할 예정이다. 정확한 규모는 비밀에 부쳤지만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카이 코르셸트는 “일시불로 6억 달러를 지급하고 분기당 1억4000만 달러를 추가로 주는 조건”이라고 추정했다.
애플이 법정 공방의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부족한 특허기술을 디자인으로 상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본다. UC어바인 댄 버크(법학) 교수는 “애플의 소송 전쟁은 과거부터 반복되는 데자뷰 같다”며 “상대적으로 적은 특허 포트폴리오가 애플을 소송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송을 통해 트레이드 드레스가 기술 특허와 맞먹는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애플로서는 최선이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손해 날 것은 없다. 특허소송에는 통상 3~4년이 걸린다. 애플은 소송으로 시간을 벌면서 600억 달러에 달하는 보유 자금으로 삼성에 대항할 만한 특허 방패를 만들려 한다. 실제로 1일 애플은 림·에릭슨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파산한 캐나다 통신 장비업체 노텔의 특허 6000여 개를 45억 달러에 사들였다.
김창우 기자 kcwsssk@joongang.co.kr | 제225호 | 20110703 입력 |중앙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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