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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IT가 짜준다, 내 몸에 착 맞는 옷

정부 지원 건국대 ‘아이패션’ 기술
 
주말 골퍼 윤순구(55·사업)씨는 골프 장갑을 자주 바꾸는 편이다. 손가락이 가늘고 짧은 편이라 시중에 나온 골프 장갑을 착용하면 장갑 끝 부분이 조금씩 남는다. 스윙을 하다 보면 장갑과 손의 밀착도가 낮아 그립이 미끄러지는 느낌도 든다. “스코어가 나쁘면 실력 탓이겠거니 하지만 어떨 땐 장갑 원망도 한다”며 웃었다.

골프 장갑부터 청바지 같은 옷에 이르기까지 기성 제품이 몸에 잘 맞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웬만한 옷을 다 맞춰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싸고 번거로워 이미 나온 제품에 몸을 맞추는 게 상책이다.

손을 먼저 스캐닝한다. 프로골퍼 서희경이 자신의 손을 스캐닝하고 있다. [건국대 i-fashion 기술센터 제공]

‘아이패션(i-fashion)’이라는 기술이 이의 해결사로 등장했다. 아이패션은 맞춤 의류·패션에 정보기술(IT)이 녹아 들어간 것이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기업이 IT를 활용해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맞춤 의류가 줄자를 쓰는 수공 소량생산이라면 아이패션은 신체 치수 측정과 재단·제작 등 전체 공정에 IT가 들어간다. 덕분에 다품종·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정부가 이런 융합 기술을 키우기 위해 건국대 아이패션 의류기술센터에 수년 전부터 50억원을 지원한 것이 이제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융합 기술을 개발해 기업에서 상용화할 만한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의류·패션 업계엔 ‘왜 우리나라에선 나이키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하지 못할까’하는 오랜 자괴감이 있다. 그래서 맞춤형 브랜드를 육성해 해외시장을 공략하자는 것이다. ‘IT 강국’답게 맞춤의류의 IT 융합기술은 우리나라가 선도적이라고 한다.

핸드스캐닝한 결과가 컴퓨터를 통해 나타난다(가장 위). 스캐닝한 결과로 재단작업을 위한 리포트를 작성한다(가운데). 스캐닝이 끝난 뒤 7일 이내에 맞춤 장갑이 제작배달된다. [건국대 i-fashion 기술센터 제공]

◆맞춤 장갑=아이패션 기술이 우선 가장 잘 먹히는 분야는 장갑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리그에서 활약 중인 김하늘(22) 선수는 최근 건국대 아이패션 기술센터에서 정확한 왼손 치수를 쟀다. 손에 맞는 골프 장갑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핸드 스캐너에 손을 넣었더니 왼손이 컴퓨터 화면에 뜨고 손가락 길이가 정밀하게 측정됐다. 스캐너가 읽은 정보는 장갑 제조업체인 디앤앰에프를 통해 제품화돼 1주일 만에 그에게 배달됐다. 김 선수는 “손과 장갑·그립이 일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립감이 좋다”고 말했다. 이 회사 전형중 대표는 “아직 제품광고조차 하지 않은 단계인데 입소문을 타고 프로골퍼나 아마추어 고수들한테서 매달 200~300켤레의 주문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맞춤형이 이미 기성 제품을 압도한 분야는 전투기 조종사용 장갑이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올해부터 핸드 스캐너로 자신의 손 치수를 정밀측정해 맞춤형 장갑을 지급받고 있다. 박창규 건국대 아이패션 의류기술센터장(섬유공학과 교수)은 “전투기 조종처럼 손의 미세한 감각이 중요한 일에는 고도의 맞춤형 장갑이 필수품”이라고 설명했다.

◆기술의 확장=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은 9월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와 공동으로 여성들을 위한 맞춤형 의류 체험행사를 했다. 건국대 아이패션 의류기술센터의 기술지원을 받았다. 직장인 전모(24·여)씨는 당시 백화점에 들렀다 호기심이 발동해 매장에 설치된 원통에 들어갔다. 돌면서 신체 치수를 재는 전신 스캐너였다. 스캐너가 읽은 그의 신체 치수 정보는 원통 바로 옆 대형 모니터로 전달됐다. 모니터에서는 전씨와 동일한 체형을 지닌 아바타가 나타났다. 그런 다음 아바타에게 다양한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혀보는 가상체험이 이어졌다.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아바타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청바지 스타일을 고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전씨는 “피팅룸에 들어가 몸소 옷을 입어보지 않아도 여러 스타일의 옷을 입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IT의 매력은 원격 서비스다. 고객은 매장에 들르지 않아도 자신의 신체 정보만 정확히 측정해 놓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www.icordi.co.kr)에 접속해 아바타에게 대신 옷을 입혀보고 몸에 맞는 의류를 고를 수 있다.

아이패션 기술의 의류업계 도입 정도는 아직 지지부진하다. 새로운 기술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업체는 많지만 기존의 기성복 시장을 버리고 맞춤형으로 과감히 전환하는 데는 주저하는 편이다. 박 센터장은 “관련 인프라가 아직 미흡하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전신 스캐너 같은 장비를 활용해 자신의 신체정보를 측정하고, 그 정보를 신용카드 같은 데 입력해 들고 다니면 모를까 아직 아이패션 서비스를 주고받을 여건이 덜 갖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전신 스캐너 같은 고가 장비를 도입하는 데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고, 소비자들이 자신의 신체정보를 들고 쇼핑을 하게 되면 맞춤형 패션시장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의류 중에서는 야구·축구 동호회 등 유니폼 시장의 문이 가장 빨리 열리고 있다. 최근 ‘천하무적 야구단’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야구 동호회가 8000개로 급증했다. 스포츠 동호회원들은 유니폼은 물론 점퍼·혁대·양말 등 의류까지 아이패션 기술로 장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강홍준 기자 [kanghj@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1.03 00:07 / 수정 2011.01.03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