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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신발·호텔·음식을 하나로 잇는 언어 … 디자인

서울에 플래그쉽 매장 문 연 ‘캠퍼’ 로렌조 오르티 부회장
디자인 시대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신발 브랜드인 ‘캠퍼(CAMPER·스페인어로 농부)’는 디자인 경영의 결집체다. 신발·호텔·레스토랑 등 사업영역에서 건축가·인테리어 디자이너·푸드 스타일리스트·요리사 등 각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끌어들이고 있다. 상품이 아닌 문화를 팔고 있다.
 

 ‘캠퍼’의 4대 경영자인 로렌조 플룩사 오르티 부회장(37). 오른쪽 그림은 한국의 플래그쉬 스토어 디자인을 맡은 알프레도 하베를리의 드로잉이다. 캠퍼는 하베를리에게 폭넓은 자율권을 줘 조명·테이블 등 작은 소품까지 자유롭게 디자인하도록 했다. [캠퍼 제공]  
 
예컨대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독일 베를린에 있는 ‘카사 캠퍼(CASA CAMPER)’. 객실 수 25개(바르셀로나)와 51개(베를린)의 미니호텔이지만 실내는 파격적이다. 빨강 벽지에 카펫 없는 마루바닥, 구식 전화기에 최첨단 오디오, 햇볕 드는 샤워룸 등 호텔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24시간 무료 개방 스낵 라운지와 자전거 대여소도 인기가 높다. 베를린 호텔의 레스토랑 ‘도스 팔리오스’는 어떤가. 극도로 절제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이른바 캠퍼 스타일이다. 소박하면서도 새로운 감각과 작은 차이를 내세우고 있다. 호텔에는 건축가 요르디 티오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페르난도 아마트가, 레스토랑에는 프랑스 디자이너 로난·에르완 부를렉 형제가 참여했다. 신발 디자인도 비슷하다. 숱한 아티스트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협업한다. 매장에 진열된 신발에는 미술 작품처럼 작가소개가 달려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5일 문을 연 캠퍼의 플래그쉽 스토어. [캠퍼 제공]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3층 규모의 캠퍼 플래그쉽 스토어(브랜드의 디자인 컨셉트와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매장)가 5일 문을 열었다. 개점을 기념해 방한한 로렌조 플룩사 오르티 캠퍼 부회장(37)을 만났다.

-매장을 스토어·라운지·갤러리로 꾸민 게 독특하다.

“80개국에 160개(백화점 매장은 제외)의 매장이 있지만 그 어디도 똑같이 디자인된 곳은 없다. (그는 이 말을 두 번 반복했다)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는 곳,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을 한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러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은 갑자기 시작한 일이 아니다. 예전부터 변함없이 해온 일이다. 신발 회사라고 신발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지 않는다. 포장박스부터 로고와 포스터, 매장 인테리어까지 모든 과정에서 창의적 디자이너들과 함께 하는 것, 그게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디자이너를 고르는 기준은.
  

 캠퍼가 운영하는 베를린 ‘캠퍼 카사’ 호텔. 방 번호가 크게 쓰여 있는 커튼으로 작은 유머를 구사했다. 독특한 디자인의 1층 식당도 캠퍼의 작품이다. [캠퍼 제공]
 
“디자이너들은 모두 다르다(웃음). 바르셀로나·파리·런던 등에 이어 한국 매장을 디자인한 알프레도 하베를리는 유머 감각이 뛰어나면서도 섬세하다. 진열대의 디테일부터 소품·조명까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디자이너 중에는 과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것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소중하다.”

-예술가들은 어떻게 찾아내나.

“우리는 수퍼 스타를 찾지 않는다. 세상에는 덜 알려져 있더라도 개성이 있고, 양질의 작품을 내놓는 디자이너들이 많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들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

-신발 회사가 호텔·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유는.

“신발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는 게 목표다. 우리가 추구하는 ‘소박함의 미학’이 하나의 문화가 되길 바란다. 문화는 돈만으로는 안 된다. 정작 중요한 건 삶의 질이다. 진짜 럭셔리한 것은 소박하면서도 풍요롭게 삶을 즐기는 것이다.”

로렌조 부회장은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장수 비결은.

“아버지는 타인(디자이너와 고객)에 대한 존중을 늘 강조해왔다. 회사를 꾸려가는 영감을 여행과 사람들에게서 얻고 있다.”

-그게 경영철학의 핵심인가.

“그렇다. 현재의 캠퍼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쌓아온 역사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중앙일보] 2010.10.13 00:17 입력 / 2010.10.13 00:38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