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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문제의식 없는 그림은 그리지 않아요

입가에 미소 띠지만 눈은 울고 있다…가면 쓴 현대인을 표현하는 김지희 작가 
 

▲ (사진 = 김성호 기자) ⓒ2010 CNBNEWS  
 
때론 드러낸 슬픔보다는 감춰진 슬픔이 더욱 슬프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섹시함보다는 보일 듯 말 듯한 속살에 더욱 매료되는 것처럼 그림은 보이지 않는 이면의 환상과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바라볼수록 더욱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사람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나면서도 정작 그 진심이 감춰진 얼굴. 그중 눈과 미소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는 김지희 작가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인물은 항상 그려온 소재였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메시지가 인물에 있었고 밝은 얼굴 속 내면은 고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실 다른 사물도 그려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녀가 그리는 얼굴은 보통 얼굴과는 다른 몇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환하게 웃는 미소 속 한눈에 띄는 치아교정기,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것 같은 오드아이(양쪽 눈 색깔이 다를 때 쓰이는 표현), 양의 탈을 쓴 머리 등이다. 처음 작품을 대할시 에는 밝고 경쾌한 팝아트의 느낌이 강렬하지만 그 속에는 외로움과 슬픔, 아픔과 고독 등 외적인 억압이 담겨있다. 전체적으로 얼핏 본다면 작품 속 얼굴은 분명 웃고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입은 웃지만 눈은 울고 있다. 또한 작품 속 얼굴은 왠지 소녀와 같은 귀여운 인상으로 여성이 아닐까 판단하기 쉽지만 실제 성별은 없다고 한다.

김 작가는 “그림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섬뜩하고 무섭다고 느끼는 분들이 더 많았다. 눈도 양쪽이 서로 다른 짝눈이기에…. 짝눈은 일반인들과 다른 모습이면서 슬픔이다. 가장 많은 의문을 갖게 되는 치아교정기는 억압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을 위한 고통이다. 얼굴을 나타낼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김 작가는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은 작업은 하지 않는다. “작가라면 사회적 문제 또는 현대의 문제 등을 꼬집어내고 담아내야 한다는데 중점을 둔다. 걸어서 예쁜 그림도 좋지만 느끼고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작품 속 얼굴은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 Sealed Smile. 장지에 채색. 60x100cm. 2007  
 
▲ Sealed smile. 2010. 장지에 채색. 72x60cm 
 
그녀가 그리는 밝고 화사하지만 내면의 슬픔을 말하는 얼굴은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고독과 슬픔 등 마치 가면을 쓰고 의사소통을 하는 현대인의 불편한 웃음을 이야기한다. 눈의 표정을 감춘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얼굴, 날카로운 가시로 둘러싸인 선인장 등도 자신을 지키려는 표현으로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양면성을 일깨우는 듯 하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그녀는 예고를 가면서 동양화를 처음 접했는데 너무 잘 맞아 재밌고 매력을 느꼈다. 작가를 꿈꿔왔고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도 변함없다는 그녀는 그림에 대한 열정 또한 어느 누구 못지않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일례로 예고시절 “너는 국화가 부족하다”는 실기선생님의 지적에 다음날 새벽부터 자정까지 종일 식사도 하지 않은 채 국화 2000송이를 그려 하루 만에 “국화를 가장 잘 그린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그림밖에 모르는 악바리였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껏 단 하루, 아니 10분이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잘 만큼 집념이 강했으며 현재도 잠자는 시간인 4~5시간 이외에는 그림에만 몰두하는 등 작업량이 많은 작가다.

▲ Sealed Smile. 장지에 채색. 163x130cm. 2008   
 
▲ Sealed smile. 30x30. 장지에채색. 2007 
 
이처럼 그림과 함께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평생 그림과 함께 살고자 하는 그녀는 글 쓰는데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그림 그리기와 함께 글 쓰는 것 또한 꾸준히 병행해 왔는데 그림-작업과 관련한 글을 좋아했다. 대학 시절에는 글을 써서 상도 탔고, 대학교 4학년 초에 책 ‘예술가에게 길을 묻다’(2006·미술문화)를 공저 출판하기도 했다.”

대학원에 다니며 직장에 들어간 그녀는 그곳에서 그림과 관련된 글을 쓰며 일을 하지만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여전히 그림만 그리며 지내고 있다. 그림과 글은 그녀에게서 뗄 수 없는 표현의 수단으로 자신만의 에세이집도 내고 싶다는 바람을 들었다.

준비된 그림이 아닌 스케치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바로 붓으로 그려나가는 김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아직 공부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캐릭터 같은 모습보다 좀 더 세밀하고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물론 기존 작업도 병행하며 큰 틀 안에서 문제의식 속 다양한 조형적 표현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올해 9월 15일 인사동 갤러리 더 케이에서 네 번째 개인전을 가질 예정인 그녀는 이미 그 준비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말처럼 앞으로 작품 속 어떤 얼굴 그리고 어떤 표현을 보일지 사뭇 기대된다. 그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말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해주기 때문이다. 
 

▲ Sealed smile. 40x30cm. 2009   

김대희 기자  [CNB저널 제177호]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