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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젊어지고 화려해진 부엌 살림살이 … 시카고 가정용품 박람회 가봤더니

오렌지색 프라이팬 써볼까, 연두색 주전자에 차 끓일까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2012 국제 가정용품 박람회(International Home&Housewares show)’가 열렸다. 1939년 시작된 이 행사는 요리와 청소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전자제품을 총망라해 전시하는 자리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암비엔테 소비재 박람회’와 함께 가정용품 업계의 양대 행사로 꼽힌다. 올해는 125개국 2100개 주방업체가 참여했고, 6만여 명의 관련 업계 종사자가 참관했다. 행사를 주관한 국제가정용품협회(International Housewares Association·이하 IHA)의 데렉 밀러 부회장은 “올해는 디자인과 편의성 면에서 ‘혁신’이 큰 주제였다”고 말했다. 2012년 전 세계 주방용품 업체들은 어떤 제품들을 선보였는지 f가 직접 박람회장을 다녀왔다.

1, 5 프라이팬과 모카포트로 구성된 페드리니의 ‘패션 라인’ 세트. 2 비아레티의 파스타 냄비. 3 샹탈의 법랑 주전자. 4 조셉조셉의 자동 후추통. 6 보덤의 야외용 바비큐 그릴. 7 조카리의 U자형 비닐백 집게.

  미시간 호수 바로 옆 매코믹 빌딩에 마련된 박람회장은 마치 장난감 가게라도 온 듯 강렬한 ‘네온 색(형광에 가까운 원색)’ 물결로 가득했다. 온통 연두색·오렌지색·보라색·물빛색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주철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프라이팬과 냄비에도 겉으로 보이는 면엔 모두 화려한 색을 입혔다. 전통적으로 흰색 또는 무색을 즐겨 쓰는 물병이나 채칼 등의 도구들은 손잡이·빨대·뚜껑 등에 이들 색을 사용했다.

 세계적인 컬러연구소 펜톤사는 ‘2012년의 색’으로 오렌지색을 선정했다. 펜톤사의 컬러 컨설턴트인 레아트리스 아이스맨은 “경제가 우울할수록 사람들은 밝은 이미지를 찾는다”며 “오렌지는 빨강의 에너지와 노랑의 친근함을 동시에 반영하는 색”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보라색과 연두색·물빛색은 오렌지색과 잘 어울리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80년대풍 복고 트렌드를 반영하는 색이라 주방업체들이 주목한 것 같다”고 했다.

 주방용품들이 알록달록한 네온색으로 물들여진 데에는 색깔 감각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감성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도 한몫한다. 주방용품 브랜드 ‘조셉조셉’의 공동창립자 안토니 조셉은 “색 트렌드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제품 개발 시 디자인보다 색 선택에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요즘의 젊은 세대는 하루 종일 입는 옷과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하나의 톤으로 꾸미는 것을 선호한다”며 “밋밋한 일상에 화려한 네온 색상으로 포인트를 주는 일이 이제 패션뿐 아니라 가정용품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브랜드는 이탈리아 브랜드 ‘페드리니’였다. 이 브랜드는 ‘패션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색깔별 세트 제품을 선보였다. 프라이팬, 부침 뒤집개, 모카포트(가정용 에스프레소 추출 기계) 등에 연두색·오렌지·보라색을 입혀 시리즈로 내놓은 것이다. 세일즈 담당자인 알레산드로 자히는 “2012년 밀라노 봄·여름 패션 컬렉션에서 연두색·오렌지·보라색이 주요 유행색으로 떠오른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펜톤사의 컬러 컨설턴트 레아트리스 아이스맨은 이 점에 대해 “현대는 패션과 가정용품, 두 산업 사이에서 많은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동시에 같은 트렌드가 전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 옥소의 청소용 쓰레받기와 빗자루. 쓰레받기 윗부분에 달린 빗살로 빗자루 솔에 들러붙은 먼지 뭉치를 쉽게 떨어낼 수 있다. 9 클린 큐브의 쓰레기 봉투. 몸체가 종이로 돼 있어서 세우기 쉽다.
 
 주방용품의 색깔 표현이 이렇게 다양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인체에 해롭지 않은 세라믹과 실리콘 소재의 사용이 증가한 것도 있다. 이들 소재의 특징은 친환경적이면서 색깔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고전적인 모카포트 브랜드로 유명한 ‘비아레티’는 네온 색상의 세라믹 파스타 냄비와 연분홍색 세라믹 프라이팬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이 분홍 팬은 판매 수익금의 10%를 유방암 예방 캠페인인 ‘핑크 리본 캠페인’에 기부하기 위해 기획된 상품이다. 비아레티 홍보 담당자인 노마 켈리는 “세라믹은 다른 금속에 부딪치면 색이 긁히고 벗겨진다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요즘은 코팅 기술도 발전했고 약간의 그을음 자국과 긁힘은 오히려 빈티지 스타일을 선호하는 요즘의 추세에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 국제 주방용품 박람회는 올해 처음 ‘혁신적인 제품 ’ 수상작을 발표하고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각 브랜드에서 응모한 올해의 신제품 중 IHA가 60개의 ‘혁신적인 제품’을 가려 뽑은 것이다. IHA 홍보 담당자인 데비 테시크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발명품이라기보다 기존의 제품을 얼마나 더 편리하고 감각적으로 만들었는가가 선정의 기준이었다”며 “주부들의 바쁜 일손을 덜어주고 집안일이 즐거운 놀이처럼 여겨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을 선정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조카리’의 U자형 집게는 지퍼백 등의 비닐봉지에 내용물을 쉽게 넣을 수 있도록 입구를 벌려주고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제품이다. ‘브라우니’의 실리콘 냄비 뚜껑은 기존의 뚜껑들과 다르게 표면이 오목하다. 냄비 안에서 끓어 넘친 물이 다시 냄비 안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다. ‘에비홀더 프로덕트’의 플라스틱 소스 병은 납작한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어 소스를 원하는 만큼 손쉽게 짤 수 있다. ‘클린 큐브’의 쓰레기봉투는 종이 봉투 윗부분에 비닐을 덧붙인 다음 끈을 달았다. 입구를 조일 수 있어 쓰러져도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고 냄새도 방지할 수 있다. 종이와 비닐은 모두 자연분해가 가능한 친환경 소재다.

 ‘혁신적인 제품’으로 선정되지 않은 제품 중에서도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해 내놓은 신제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비욘드’는 냄비 안에 회전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바구니를 달아 스파게티 면이나 채소 등을 끓인 뒤 쉽게 물기를 빼낼 수 있게 했다. ‘조셉조셉’은 대나무를 세로로 잘라낸 듯한 디자인의 후추 통을 선보였는데 갈라진 양쪽 부분을 손으로 움켜쥐면 후추가 자동으로 갈아진다. 또 ‘옥소’는 뚜껑을 돌리면 빨대가 물통 안으로 들어가는 물병을 선보였다. 가방 안에 물통을 넣고 이동할 때 빨대를 따라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만든 제품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2.03.22 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