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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책, 디자인을 만나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미디어 학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MIT 미디어랩 교수 같은 이는 종이책의 종언(終焉)을 말하지만, 또 한편에선 정보의 과잉 속에서도 종이책이 지닌 정제된 가치는 유효할 거라 장담한다.

종이책을 향한 복잡한 시선이 디자인 작품으로 승화돼 관객을 만난다. 14일부터 18일까지 '디자인하우스' 주최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1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기획전 '디자이너스 랩: 책을 주제로 한 아트오브제'에서다. 캘리그래퍼(손글씨 전문가), 유리 공예가, 패션 디자이너 등 빛깔이 다른 디자이너 35명이 모여 '책'을 공통분모로 작품을 만들었다.

  김홍용씨가 만든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팡이 모양의 책 거치대(사진 위), '책벌레'라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책을 갉아먹는 벌레 모양으로 만든 책 지지대. 위형우씨 작품. /디자인하우스 제공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직육면체의 책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박재문씨는 책장을 찢어 조명을 만들었다. '책은 무지(無知)를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를 담았다. 공예 디자이너 김홍용씨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지팡이 모양의 책 거치대를 선보인다. '책은 생각의 균형을 꽉 잡아주는 도구'라는 관점을 반영했다. 캘리그래퍼 강병인씨는 류시화의 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자신만의 글씨체로 쓴 다음 다시 쇠로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강씨는 '참이슬', '산사춘' 등의 손글씨를 쓴 국내 대표 캘리그래퍼이다.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습관을 포착한 작품도 눈에 띈다. 그래픽 디자이너 박경식씨의 작품 '책 접기'는 소설가인 장모가 책을 읽을 때 책장을 접는 습관에서 착안해 책을 접어 입체적으로 만든 작품이다. 설치미술가 고우석씨의 작품 '균형(均衡)'은 장식장의 한쪽 다리를 책을 괴어 만들었다. 어릴 적 낡고 기울어진 장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책을 괴던 추억을 떠올렸다.

  체크 표시인‘V’자 형태의 책꽂이. 가구 디자이너 박종호씨의 작품. 책 한 권이 인생에서 체크할만한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책을 수납하는 도구도 디자인을 만나 사뭇 달라졌다. 가구 디자이너 박종호씨의 '책(check)'은 체크할 때 흔히 쓰는 표시인 'V'자 형태로 만든 책꽂이다. "한 권의 책이 우리 인생에서 '체크'할 만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위형우씨는 '책벌레'라는 단어를 작품에 녹여 책을 갉아먹는 벌레 형상의 북 엔드(책이 안 쓰러지게 지탱해주는 도구)를 디자인했다.

전시기획을 맡은 디자인하우스 신승원 디렉터는 "소셜네트워크 등 인터넷 미디어가 판치고 있지만 책의 힘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관람료 7000원. (02)2261-7191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12.1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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