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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조약돌에 담긴 한 끼, 디자인을 맛보다

▲ 멜빵을 한 듯한 형태의 도시락. 열면 단마다 개인용 접시와 매트가 들어 있다.

디자이너·작가 18인 '도시락展'
탈 만들 때 쓰는 종이죽 등 다양한 소재·모양 선보여
요리 연구가도 함께 참여해 도시락 식단 담은 사진 전시도

정성스레 싼 도시락은 속도의 사회에서 현대인이 잊고 사는 추억 한 토막이다. 고슬고슬 갓 지은 아침밥을 담아 보자기로 꽁꽁 싸매 완성되던 '엄마표 도시락'은 학교 급식에 자리를 내준 지 한참이다. 직장인들 역시 도란도란 도시락 까먹으며 점심의 망중한(忙中閑)을 즐길 여유를 잊고 산 지 오래다.

여기, 느릿한 우리네 기억 속 도시락을 디자인의 눈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주최로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인사동 KCDF 갤러리에서 열리는 '도시락(樂)' 전이다. 산업 디자이너, 한지 공예가, 섬유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영역의 작가와 요리 연구가 18명이 도시락을 재해석해 만든 작품 40점이 관람객을 찾아간다. 도시락을 공통분모로 한 종합예술전이다.

디자인을 엮는 테마로 도시락이라는 소박하고 정감 있는 소재를 활용한 시도가 이채롭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김선희씨는 "TV 속 한 스타의 '하얀 비닐봉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방송에서 건강식으로 도시락을 싸다니며 '몸짱'에 도전하는 스타 이야기가 나왔어요. 도시락이라며 내민 게 하얀 비닐봉지에 담긴 플라스틱 통이었어요. 이 비닐봉지가 바로 휴지통이 되더군요." 순간, 김씨의 머릿속엔 어머니가 어린 시절 싸주던 도시락 보가 떠올랐다. 자연스레 도시락을 재조명해 잊고 사는 일상의 행복을 반추하기로 했다. 전시 경험이 많지 않은 작가들 위주로 행사를 기획했다.

작가들은 '마음에 점을 찍는 정도의 끼니'를 뜻하는 점심(點心), 그리고 그 점심을 담는 도구인 '도시락'을 저마다의 감성으로 풀어내 먼지 뽀얀 추억을 달그락거린다.

디자이너 최정유(29)씨의 작품 '따뜻한 도시락'은 투박하지만 손맛이 느껴지는 도시락을 시각화했다. 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종이 죽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거친 질감을 살렸다. 갓 구워낸 빵처럼 살짝 부푼 형태로 기계로는 도저히 빚을 수 없는 풍성함을 담았다. 최씨는 "도시락은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만을 위해 만든 엄마의 도시락을 표현했다"고 했다. 최씨의 또 다른 작품 '한 상'은 일회용 도시락의 변신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 종이 상자처럼 생긴 포장을 풀면 개인용 테이블 매트처럼 변신한다. 멜빵을 한 듯한 형상의 '올 도시락'은 단마다 개인용 접시와 매트가 들어 있어 "따로 또 같이 먹는 기쁨"을 담았다.

▲ 강희정씨가 만든 미니 도시락. 사각 도시락의 틀을 깨고 조약돌처럼 만들었다. 오른쪽 아래 작은 사진은 음식을 담은 모습.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도시락을 음식을 담는 수단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 자연과 합일하는 매개로 표현한 작품도 눈에 띈다. 정광희(40)씨의 정갈한 대나무 도시락 작품 '대나무였어!'와 찻잔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든 정은(45)씨의 '차 도시락 합'이 대표적인 작품. 옻칠 작가 강희정(30)씨는 조약돌 모양의 미니 도시락으로 동심(童心)을 자극한다.
 
▲ 종이죽으로 부푼 빵처럼 만든 도시락. 최정유씨가 투박하면서도 넉넉한‘엄마표 도시락’을 표현한 작품.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김누리(38)씨는 도시락 식단을 제안하는 사진 작품을 선보였다. 2006년부터 사람들에게 평소에 먹는 점심 식단을 설문하고 그들의 식생활에 맞는 맞춤형 도시락을 만들어 주는 작업을 차곡차곡 담았다. '인연'을 작업의 주 소재로 삼아온 김씨는 "사람들의 점심에 침투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늑함에 걸맞게 거창한 규모의 전시는 아니다. 각박한 일상 속 '마음의 점을 찍는다'는 기분으로 찬찬히 둘러볼 만하다. 관람료 무료. 문의 (02)732-9383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9.1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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