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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디자인 TALK] 책은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 책도 장식용 시대

얼마 전 집을 리모델링한 중견기업 회장 A씨는 거실 한 벽을 서재로 만들고 모 대학 교수를 조용히 불렀다. "요즘 잘나가는 책하고 예술 서적을 골고루 선별해서 책장을 채워줘요." A씨는 "되도록이면 문화적인 취향이 느껴질 수 있도록"이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최근 서재가 집 안 구석의 닫힌 공간에서 탈피해 집의 인상을 결정짓는 주요 공간으로 격상됐다. 서재 인테리어를 할 때도 그저 특이한 형태의 책꽂이를 배치하는 단계를 넘어서 책 표지의 색깔, 디자인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책을 배치하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독서용'이 아닌 '장식용'으로 책을 컬렉션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커피 테이블 북(coffee table book)'에서도 이런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커피 테이블 북은 말 그대로 '커피를 마실 때 쓰는 탁자 위에 놓는 책'을 뜻한다. 두꺼운 하드커버로 돼 있고 글은 거의 없이 질 좋은 고급 종이에 이미지를 넣은 화보 같은 책이다. 손님들이 왔을 때 자연스럽게 펴보면서 문화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집주인의 고급 취향을 넌지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199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아트북' '컬처북' 등으로도 불린다. 샤넬·루이비통·고야드·까르띠에 등 명품 업체의 브랜드북을 주로 만드는 미국의 '애술린(Assouline)'이나 예술·건축 서적을 주로 만드는 독일의 '타셴(Taschen)'이 이 분야의 명성 높은 출판사이다.

톱스타 여배우 B씨는 신간 아트북이 해외에서 발매되자마자 공수해올 정도로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패션 디자이너 C씨는 인테리어 컨설팅을 받아 이런 책들을 집 안 곳곳에 비치해둔다고 한다.

한영아 애술린 아시아 대표는 "한국인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져 그냥 명품 옷을 걸치는 걸로 만족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이런 소품으로 문화적인 소양을 갖췄다는 걸 은연중에 상대에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8.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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