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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동아광장/석지영]패션 디자인의 지식재산권 보호

석지영 하버드대 법대 교수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패션디자인 역시 문화 속 작품과 주제의 영향을 받는다. 독창적인 예술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선배의 창작물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저작권법은 예술작품 간 유사성의 경우 대체로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고 있다. 영화나 책, 음악같이 패션도 유행이 있으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과거와 현재 작품에 영향을 받은 유사한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이런 차용이라는 흔한 형태가 타인의 작품을 노골적으로 복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복제는 창작자의 이익을 가로채 저작권법이 목표로 하는 창작의 장려를 위축시킨다.

미국 의회는 ‘혁신적 디자인 보호와 저작권 침해 방지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 법안은 디자이너가 창의를 발휘할 수 있는 더 넓은 영역을 활용하게 하고 패션 트렌드에 동참할 수 있게 하며 창작의 인센티브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일반적인 저작권 침해 기준은 특정 작품이 다른 작품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경우 원작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본다. 반면 미 의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좀 더 폭을 좁혀 ‘상당히 동일하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법안은 패션디자이너가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받는 것에 대해 서적과 음악, 영화 제작자보다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한다. 그러나 원작과 거의 같은 복제품의 판매는 불허한다. 요약하면 독창적인 디자인 창작의 장려라는 공익과 디자인의 자유로운 활용이라는 공익 간 균형을 맞춘 것이다.

젊은 디자이너들 피해 크게 입어

디자이너가 다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상품과 무작정 베낀 상품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두 디자인 간 차이를 잘 모르겠다면 그건 당신이 복제품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중대한 차이다. 왜냐하면 무작정 베낀 상품은,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과는 달리 혁신적인 형태를 갖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복제품은 독창적 디자인 시장의 기반을 허물고, 디자이너가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게 장려하는 유인책들을 위축시킨다.

이 법안은 중립적이다. 독창적 디자인을 복제한 상품을 파는 업체만 타깃이다. 복제품을 팔지 않는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설령 그런 상품을 팔았더라도 베낀 디자인이 독창적이지 않든지 판매자가 복제품인지 알지 못했다든지 하면 법적 책임은 없다. 복제한 디자인이 독창적일 경우 판매자는 저작권이 끝날 때까지 팔지 않으면 된다. 복제품 판매자는 다른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상품의 판매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소비자가 유명 디자이너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낮은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하려고 대규모 소매업체인 ‘타깃’이나 ‘H&M’, ‘콜’ 등과 손잡았다. 새 법안은 이런 파트너십을 권장한다. 디자이너가 독창적 디자인에 투자한 창의적 노동으로 수익을 얻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오리지널 디자인을 변형하지 않고 판매할 경우 디자이너와 합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현행 지식재산권 체제는 유명 디자이너에게 유리하고, 잠재력이 뛰어나지만 경력이 짧은 디자이너에게 불리한 게 사실이다. 루이뷔통 같은 유명 회사는 상표 및 외장 보호 조치의 수혜를 받고 있다. 이런 회사는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보호한다. 싼값으로는 모방하기 어려운 장인의 기술력과 최고급 재료도 한몫한다. 이들의 고객층은 할인점 고객과 겹치지 않는다. 따라서 명품업체는 상대적으로 디자인 무단 복제로 인한 어려움을 덜 겪는다.

젊고 경력이 짧은 디자이너들은 이런 혜택을 볼 수 없다. 이들의 상품은 상표 및 외장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광고를 할 돈도 없다. 이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은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이들은 명품업체와 같은 가격을 소비자에게 요구할 수 없다. 따라서 고객층이 겹치는 복제꾼들과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수천 명이 아닌 수백 명을 고객으로 하는 디자인은, 더 값싼 복제품을 선택할지 모르는 많은 소비자가 주 고객이다. 업계의 높은 진입장벽과 생존 투쟁에 직면해 있는 신진 디자이너에게 복제품은 큰 상처가 된다. 이번 법안은 디자인 혁신보다는 기존 명품 보호에 치우친 업계를 바꾸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베끼기보다 디자인 혁신 힘써야

새 법안은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작하게 장려하는 것과 디자이너들이 다른 작품에서 받는 영향, 영감, 유행을 자유롭게 끌어오도록 하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법안이 제정된다면 패션산업이 복제가 아닌 혁신을 지향하도록 지원하는 본래 목표를 다하게 될 것이다. 이는 패션이라는 독특한 산업이 처한 문제에 균형 있고 사려 깊게 맞춰진 해답의 전형이다.

석지영 하버드대 법대 교수

기사입력 2011-07-26 03:00:00 기사수정 2011-07-26 03:00:00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