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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야하지만 야하지 않은

아티스트 홍일화
야하지만 야하지 않은

이 그림, 참 야하다. 여성의 엉덩이 부위만 클로즈업해 치마 밑단, 팬티와 엉덩이 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그려놓은 이 그림. 형형색색의 팬티들도 신기하지만 그와 함께 시각을 자극하는 엉덩이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날 음흉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이렇게 정면으로 응시하기 어려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여성의 엉덩이 부위를 치밀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작가 홍일화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여성의 엉덩이를 관찰해온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색안경을 끼기 십상이다. 이상한 작가라고, 에로 작가라는 말도 들어보았을 법하다. 하지만 그가 여성들 본인도 보기 어려운 뒷모습, 엉덩이 부분을 그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성에 대해 금기시해 왔습니다. 입 밖으로 그러한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불순한 것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그렇게 터부시한 것들이 오히려 여러 성적인 문제들을 야기 시킨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적인 것들과 연관된 폭력 등의 문제들이 그래서 더 문제가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오히려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보수적인 성과 맞서기라도 하자는 것일까’라는 의문도 생기지만 그의 작업은 그런 일차원적인 내용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 짧은 치마를 입고 핸드백으로 뒤를 가리는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위 자체가 더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파인 옷을 입고 가슴을 손으로 가리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지요.” 감추기 위한 행위가 오히려 시선을 끈다는 것은 아마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그가 세줄갤러리에서 오는 7월 30일까지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주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노이즈 마케팅’.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시켜 단기간에 최대한의 인지도를 높이는 이 마케팅 방법에는 긍정적인 방식이외에 부정적인 방식도 존재한다. 부정적이라 해도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것이 구매율 상승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루머를 퍼트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노이즈 마케팅은 성에 대해 감추는 행위 자체가 성에 대한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치마아래를, 가슴을 감추는 행위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의 그림도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따로따로 존재하는 엉덩이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관음증적이고 변태적인 시선을 갖게 하지만 여러 이미지가 조합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신체의 일부분이 아닌 추상적 패턴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꾸 보다보면 야한 엉덩이들은 그저 셀룰라이트가 뭉친 살덩어리에 불과해진다. 

그는 초기에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었다. 성형수술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통해 아름다워지기 위해 그녀들이 마다하지 않는 수고들의 결과로 ‘과한 미(beauty)’를 선보였었다. 요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 같지만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모습을 연출하는 수많은 얼굴들을 통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었다.

파파라치에 의해 기록된 수많은 헐리우드 스타들의 모습도 담았다. 얼굴 성형 다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몸 성형이라는 사실과 스타들의 노출 대부분이 이런 몸 성형 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파파라치에 의해 드러나는 그들의 노출이 어쩌면 사전에 계획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것들은 계단에서 발견한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치마를 백으로 가리는 것은 제가 생활하는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매우 큰 문화적 차이라 할 수 있죠.” 성, 관음증, 노이즈마케팅 등 그의 이번 작품과 관련된 모든 현상들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그가 체감하는 '문화'에는 우리 대부분이 생각하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결정적 단서가 담겨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마저도 대량생산되는 현대사회에서 좀 더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고의 대량생산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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