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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심심한 컬러ㆍ밋밋한 디자인… 거품 꺼진 일본에 `無브랜드 돌풍`

[Best Practice]
심심한 컬러ㆍ밋밋한 디자인… 거품 꺼진 일본에 `無브랜드 돌풍`

1990년 일본에선 거품이 꺼지고 극심한 불황이 시작됐다. 값 비싼 디자이너 브랜드로 돈을 긁어모으던 대형 백화점들의 매출은 뚝 떨어졌다. 그러나 유독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있었다. 1980년 세이유백화점에서 식품과 가정용품을 파는 영업매장으로 시작해 1989년 독립한 중저가 의류 · 생활용품 업체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 · 무인양품)이었다. 말 뜻 그대로 '브랜드가 없는 질 좋은 제품'을 파는 곳이었다.

제품 색깔은 흰색 베이지색 등 '심심한' 색뿐이고,모양은 '디자인'이라는 말을 붙이기 어색할 정도로 단순했다. 심지어 옷에는 안과 밖 어디에도 로고가 없었다. 물론 가격도 저렴했다. 브랜드의 홍수에 빠져 있던 일본 소비자들에게 시대에 역행하는 무지루시료힌의 '노(No) 브랜드' 전략은 신선한 바람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이 제품을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세속주의를 초탈하고 한 차원 높은 소비를 하는 세련된 소비자'라고 여겼다. 허리띠를 졸라매던 일본 소비자들도 무지루시료힌으로 몰렸다. 이 회사는 닛케이비즈니스가 매년 발표하는 브랜드재팬 소비자부문 랭킹에서 올해 16위로 작년보다 10계단 상승했다. 작년(2010년 3월~2011년 2월) 매출은 1697억4800만엔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브랜드 없는 브랜드'를 지향

무지루시료힌은 제품에 소재와 기능만 남겨둔다. 필요한 기능을 제외한 디자인은 없앤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포장도 간소하게 한다. '산업 디자인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샘 헥트를 비롯해 재스퍼 모리슨,후카사와 나오토 등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제품을 출시하지만 일부러 나서 홍보하지도 않는다.

대신 제품은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 실용성을 극대하는 데 초점을 둔다. 체코의 한 할머니의 손뜨개 양말이 직각 모양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직각양말은 무지루시료힌의 대표 상품이다. 사람이 서있을 때 발목과 발등의 각도가 90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발에 가장 잘 맞는 디자인이다.

무지루시료힌은 절제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자기표현 욕구를 만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이비드 아커 UC버클리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일본 소비자들은 소득 이상의 지출을 조장하는 지나친 물질 만능주의를 경험했다"며 "무지루시료힌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이 유명 브랜드 이상의 더 만족스러운 가치를 추구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1999년 무지루시료힌에 어려움이 닥쳤다. 매출이 증가하자 점포 수를 늘리고 매장 면적도 넓혔지만,매장을 채울 상품이 없었다. 안 팔리는 재고를 소진하는 데 집중하느라 신제품도 개발하지 못했다. 2001년 경상이익은 56억엔으로 2년 사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당기순이익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그때 이 회사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승리에 취해 브랜드 본질에 어긋나는 빨간색 분홍색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점을.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무지루시료힌은 상품을 개발하는 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생활 속에서 느꼈던 불만을 털어놓으면 이를 아이디어로 삼아 상품을 만들자는 전략이었다. 이에 따라 2001년 9월 공식 웹사이트에는 '물건 만들기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은 이렇다. 소비자가 생활에서 불편했던 점을 게시판에 올린다. 무지루시료힌은 여기서 주제어를 도출해 게시한다. 고객은 주제에 맞는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면 무지루시료힌은 고객 아이디어에서 제품화가 가능한 몇 가지 안을 만들어 공개한다. 고객들은 사고 싶은 제품에 투표를 한다. 이후 무지루시료힌은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샘플로 만들고 주문 예약을 받은 뒤,일정 수량을 넘어서면 실제 상품으로 제작한다. 출시가 된 뒤엔 소비자 반응을 듣고 제품을 개선한다. 만약 이런 과정을 거친 제품이 상품화되지 못하면 그 이유를 게시판을 통해 설명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커뮤니티에서 놀고 즐기는 사이 원하던 제품이 출시됐다. 회사 입장에선 매출과 소비자 충성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여기서 개발된 대표적인 상품이 '몸에 맞는 소파'다. 겉으로 보기엔 대형 쿠션 같이 생겼지만 사람이 앉는 자세에 따라 모양이 변하면서 몸을 푹신하게 감싸준다. 이 제품은 출시 후 1년6개월 만에 6만3000여개가 팔려 나갔고,지금까지도 스테디 셀러다. 이런 시도 덕분에 무지루시료힌은 2007년 경상이익이 186억엔으로 오르면서 5년 만에 'V'자형 회복에 성공했다.

◆종합생활기업으로 발돋움

이제 무지루시료힌은 처음 콘셉트인 중저가 의류 · 생활용품 업체라고 부르기 어색할 만큼 종합생활기업으로 성장했다. 무지루시료힌이 다루는 품목은 7000여가지에 달한다. 일본 내 매장 359개(이하 2월 말 기준)에 더해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등 해외에 134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해외에만 40개 매장을 추가로 선보이고,그 중 18개를 중국에서 열 계획이다.

사업도 다각화했다. '단순한 음식'을 컨셉트로 일본에 14개 레스토랑을 냈다. 또 친환경 회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일본에서 캠프장 3곳을 운영한다. 이곳의 슬로건은 '추가 서비스 없이 자연 그 자체면 충분하다'이다. 이제껏 무지루시료힌 캠프장에 묵은 사람은 12만명에 이른다.

무지루시료힌식 생활방식을 전파하는 데도 나섰다. 이 회사는 '무지 하우스'란 사업부를 만들어 주택을 팔고 있다. 이 주택엔 물론 무지루시료힌의 가구와 생활용품이 들어간다. 지난해 이 사업부문에서만 영업이익이 56.3% 급증했다.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만을 파는 '이데'란 매장도 5곳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
기사입력: 2011-07-07 15:31 / 수정: 2011-07-07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