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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디자인 TALK] 저작권? 난 몰라… 디자인 베낀 제품 막 쓰는 공중파TV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속 세트의 역할이 중요하게 인식되면서 독특한 형태의 디자인 가구나 장식물을 무대 장식에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들 장식물 중에 디자이너가 창작한 작품을 불법복제한 짝퉁 제품이 상당수 있다. 그만큼 공적 책임이 강한 방송사들이 창작권·저작권에 대해 둔감하다는 얘기다.

"드라마에 작품 나온 것 봤어요. TV에서 보니 반가워서…." 디자이너 박진우씨는 얼마 전 아는 디자이너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깜짝 놀랐다. 몇 달 전 방영된 MBC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자신의 작품인 '캔디트리'를 봤다는 얘기였다. 부랴부랴 동영상 다시보기로 드라마를 보던 박씨는 주인공이 아침 방송에 출연하는 장면의 무대 세트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대 장식용으로 한가득 세워 놓은 설치물을 가만히 봤더니 자신의 작품을 카피한 '짝퉁'이었던 것이다.

박씨는 이전에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KBS 2TV 토크쇼 '승승장구'에선 빨간 전선을 늘어뜨려 만든 박씨의 작품 '스파게티 조명'의 카피제품을 무대 장식으로 썼다. 그는 "공중파에서 엄연히 작가가 창작한 디자인 작품의 카피품을 대놓고 쓰다니 이해할 수 없다"며 "드라마에서 배우가 짝퉁 명품백을 들고 나온다면 그 브랜드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고 했다.

한 가구 디자이너는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와 거의 똑같은 의자가 얼마 전 드라마에 등장한 것을 봤다. 이 디자이너는 "무대세트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미안한 기색이 별로 없이 카피제품인 줄 모르고 샀다고 하더라"며 카피 가구 사용에 대한 도덕 불감증을 꼬집었다.

▲ 드라마‘로열패밀리’세트 장식으로 등장한 박진우씨 작품‘캔디 트리’의 복제품. 알록달록한 막대기가 여러 개 꽂혀 있는 모양의 설치물이다. /박진우씨 제공

MBC 오락프로그램 '놀러와'는 현재 가장 인기있는 스타 디자이너로 꼽히는 스페인 출신 제이미 헤이욘의 피노키오 모양 설치 작품을 흉내 낸 장식을 써 디자인계에서 논란이 됐었다. 한 디자이너는 "헤이욘이 이 프로그램을 봤다면 고소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라고 했다.

공중파에서 짝퉁 제품을 쓰는 것은 유럽의 디자인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오히려 방송 세트를 디자인의 실험 무대로 활용한다. 영국 BBC가 토크쇼 진행자의 의자를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RCA) 등 디자인 명문대학의 학생들에게 의뢰해 만들어 신진 디자이너를 키우는 식이다.

"짝퉁 디자인 가구 사용을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방송사들이 별 죄의식 없이 카피품들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리사 이승훈(패튼월트 대표)씨는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가구나 조명 등 제품 디자인은 이 범주에 거의 속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작다"고 했다. 기술특허나 디자인특허 등 산업재산권 보호는 받을 수 있지만, 이마저도 진품과 약간만 다르게 만들면 불법이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7.06 03:09 / 수정 : 2011.07.0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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