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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6〉 예술 지원

네덜란드 정부 무분별한 지원 ‘가짜 예술가’ 양산

“작품이 팔리지 않는 화가, 조각가는 그걸 나라에다 팝니다. 그렇게들 먹고사는 거죠.” 2004년 네덜란드에서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를 이슬람계 청년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네덜란드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오푸스데이의 사제 프란츠 다고스티노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분별한 국가적 지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에서 40년째 살고 있다는 그는 넉넉한 국가의 지원이 그것을 악용하는 예술가들을 무더기로 쏟아냈고, 그 예술가들에게 목표란 어떤 종류의 금기나 규칙이든 무너뜨리고 공격하는 것밖엔 없다고 했다.

‘J B 터너 트레인’(제프 쿤스, 1986년 작). 제프 쿤스는 당시 플래시 아트지의 디렉터 잔 카를로 폴리티에게 이 작품을 원가대로 사갈 것을 제의하며 제작 영수증까지 보여주었다.

테오 반 고흐 감독은 이슬람인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1000유로의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신부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예술가 지원 시스템이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한 예로 십여 년 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조각 작업장에는 국가 지원금을 받아 작업하러 찾아온 네덜란드 작가가 다른 나라 출신에 비해 현저히 많았다. 그중 상당수가 작품을 여러 점 제작해 제일 못한 것은 국가기관에 보내고, 남은 작품은 다른 상업적인 루트로 판매해 수익을 올리곤 했다고 한다. 결국 가치 없는 작품으로 보관창고가 넘쳐났을 네덜란드의 해당 기관은 몇 년 후 대대적으로 작품을 선별해 폐기처분하기에 이르렀다. 그 소식은 멀리 이탈리아의 여러 신문을 장식하며 무분별한 국가적 지원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가 되어 주었다.

‘No. 5’(잭슨 폴록, 1948년 작). 구겐하임을 만나기 전 폴록은 난방 파이프에 그림을 감아놓고 살 정도로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지원 받을 자격을 가리는 문제는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복지 지원이 잘 되어 있는 나라를 비롯하여 어느 나라나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일 수 있다. ‘예술가’가 되는 면허도 존재하지 않고 실력을 검증해 지원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의 기준도 모호할 때가 많다. 결국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사람, 그 작품으로 전시를 하는 사람을 예술가로 간주할 때 누구나 쉽게 예술가가 되어 예술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허점이 생기는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장애인 친인척의 이름으로 등록해 그 혜택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가짜 예술가의 숫자 역시 지원 금액이 넉넉할수록, 기준이 느슨할수록 함께 늘어난다.

결국 네덜란드 정부는 대대적으로 문화예술분야 지원금을 삭감했다. 이탈리아의 열악한 상황을 피해 네덜란드로 가 미들버그 아트센터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로렌초 베네데티는 이탈리아가 그랬듯이 네덜란드에서도 예술문화계 인재들의 피난이 시작될 거라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예술인을 나약하고 경쟁력 없이 만든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대두하고 있다. 문화강국으로 일컬어지며 세계의 여러 나라에 문화사업의 본보기가 되어온 프랑스는 몇 년 전,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에 더욱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출신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현대미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1억 유로를 지출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작 지원의 대상인 예술계에서는 예상치 않은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계속되어온 비효율적인 지원이 무능한 예술인의 숫자를 키우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와 정치적인 이유로 문화행사를 급조해 결국은 예산낭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2008년 예산 삭감안을 발표했다 반대에 부딪혀 다시 추가 예산을 발표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나라에서도 역시 규모는 크지만 단발적인 문화정책이 요란하게 시작되었다가 지방정부의 예산 부족으로 불발로 끝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어 왔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은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행정적인 절차상의 문제에 부딪히거나 문화예술계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정책에 휘말려 실패로 끝이 나기 일쑤다. 소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대형 미술관들이 화려하게 들어선 후 볼품 없는 컬렉션과 엉뚱한 기획전을 쏟아내는 경우처럼 말이다.

구겐하임미술관(프랭크 게리 건축, 빌바오).

20세기 초 페기 구겐하임은 당시 미술계에서 외면받다시피 하던 아방가르드 미술을 발굴해 후원했다. 그녀가 평생 맹목적으로 사들인 작품 컬렉션은 지금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탄생시켰다. 세계적으로 많은 미술관이 구겐하임을 벤치마킹하며 유명 건축가의 힘을 빌려 건물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미술관을 만들어냈지만, 구겐하임미술관의 진짜 힘은 어마어마한 컬렉션에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녀의 후원을 받은 작가 중에는 잭슨 폴록과 로스코도 포함되어 있다. 훗날 이들의 작품 가격은 미술시장을 요란하게 했지만 당시 페기 구겐하임은 소장품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보지는 못했다. 그의 높은 안목은 많은 컬렉터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수익성을 중요시하는 대부분의 현대 미술후원자와 투자자들이 쉽게 따르고 있는 모델은 아닐 것이다.

로마 막시 미술관 내부(자하 하디드 건축, 이탈리아 로마). 큰 예산을 들여 지었지만 아직 그 안을 채울 컬렉션을 구입 중에 있다.

지금도 수많은 예술대학에서 엄청난 숫자의 ‘예술가’가 배출되고 있고 그들은 엄청난 양의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어떤 작품이 가치가 있고 앞으로 살아남을지는 누가 알아볼 수 있나. 안타깝게도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은 예술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가질 수 있지만 어떤 작품이 주목을 받을지는 예상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뛰어난 안목을 갖추었다고 해도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는 없다. 현재 예술계 내외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팝아트를 당시 페기 구겐하임은 천박하다고 외면했지 않았나.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성을 자랑하는 미술잡지 ‘플래시 아트’의 디렉터는 한 경제학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장품 중 한 점인 존 커린의 작품을 10만 달러에 팔면서 생애 최고의 횡재를 했노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불과 몇 년 사이 지금 커린의 작품은 그 열 배를 쉽게 뛰어넘었다.

그는 제프 쿤스의 ‘기차’를 살 기회도 있었지만 당시 제프 쿤스를 부도를 여러 번 맞고 몰락해 가는 왕년의 스타라고 생각했지 4만 달러나 주고 그 작품을 사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 믿으며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예술작품의 미술사적 가치와 금전적인 가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예술계의 중심에는 그 흐름을 제어하려는 부류도 존재한다.

“현대미술관은 자기들끼리 시스템을 구축해 녹을 먹고사는 컬렉터들과 대형 갤러리들이 지원해야죠. 왜 그걸 이해도 못 하고 관심도 없는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합니까? 미술관에서 전시를 해서 작품가격을 천문학적으로 부풀리잖아요.”

볼로냐의 한 전시 오픈 식에 참여한 비토리오 스가르비(비평가)의 말이다.

“사실, 문화는 공공자금으로 지원하는 게 맞아요. 미술관과 박물관은 세금을 내는 시민들에겐 입장료도 받아서는 안 되죠.”

그는 미술시장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비평가와 컬렉터, 갤러리스트 집단이 시민의 몫으로 남아야 할 미술관을 작품가격에 거품을 부풀리는 데 이용하기만 하고 그 이익은 환원하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술 시스템이라는 톱니에 물려 돌아가는 현대미술관은 다른 미술관과 구분되어 운영되어야 한다는 거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린 이탈리아 로마의 발레(Valle) 극장. 이탈리아에서는 나라의 지원금으로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해 오고 있던 수많은 크고 작은 극장, 박물관 등이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적인 불황, 경제위기를 맞아 문화예술계에도 민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생리를 이해 못 하는 이들의 탁상공론으로 예산낭비를 하는 문화예술사업을 전환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운영방침이 돈이 되지 않는 종류의 예술에는 얼마나 관대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외국의 지원 시스템을 구체적인 연구와 준비과정 없이 껍데기만 수입하는 것을 삼가고 예술계 내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효율성을 예술계 밖의 그것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

조각·미술설치가(밀라노) hojin00@gmail.com
 
입력 2011.07.10 (일)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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