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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비슷한 디자인만 써도 상표권 침해로 판정

확대되는 상표권 분쟁

라코스테가 크로커다일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근 한국 법원이 라코스테의 손을 들어줬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라코스테의 악어 로고가 널리 알려져 있어 혼동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1985년 한국에 진출한 프랑스 라코스테는 입이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악어 로고를 등록했다. 형지어패럴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크로커다일은 영문 ‘Crocodile’과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악어 그림이 결합된 상표를 쓴다. 라코스테는 1933년 프랑스 테니스 선수인 르네 라코스테가 만든 브랜드다. 그는 자신의 별명인 악어를 셔츠에 새겼다. 크로커다일은 중국 출신의 창업자가 47년 싱가포르에서 만들었다. 두 회사는 전 세계에서 ‘악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라코스테가 이겼지만 몇 년 전 중국 상하이 법원은 한국 법원과 똑같은 이유를 들어 크로커다일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에서는 더 잘 알려진 크로커다일이 악어의 원조라는 공인을 받은 셈이다.

이처럼 글로벌 업체들이 상표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상표권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어 전쟁에서 보듯이 한쪽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말을 탄 기수를 로고로 삼고 있는 폴로랄프로렌은 93년 미국폴로협회가 한국에 ‘US폴로’라는 상표를 등록하자 등록무효 소송을 걸어 승리했다. 폴로랄프로렌은 여세를 몰아 2000년 미국폴로협회와 조다쉬를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해 뉴욕연방법원은 2005년 “말 탄 기수의 모습은 폴로라는 스포츠를 묘사하는 일반적인 그림”이라고 주장한 미국폴로협회의 손을 들어줬다. 이처럼 상표권 분쟁은 ▶독자성이 있는가 ▶소비자들이 혼동할 가능성이 있나 등을 기준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판정이 날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상표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한걸음 더 나아가 ‘트레이드 드레스’(제품 특유의 색깔·크기·모양)까지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코카콜라 병처럼 상품의 외관 자체가 독특해 다른 제품과 구별된다면 지적재산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 법원은 버번 위스키업체 메이커스 마크가 테킬라 제조사인 카사 쿠에르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5년 만인 2010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병 뚜껑을 붉은색 밀랍으로 봉한 듯한 디자인은 독창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에서도 페라가모가 금강제화를 상대로 ‘구두 장식에서 오메가(Ω) 모양의 상표를 침해했다’고 낸 소송에서 1심 법원은 “금강 제품의 장식은 약간 변형됐지만 전체적으로 유사하다”며 2억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아디다스의 3선 마크와 비슷한 장식을 단 슬리퍼를 판 국내 한 인터넷 쇼핑몰을 상대로 독일 아디다스 본사에서 낸 소송에서도 아디다스의 손을 들어줬다. 상표 자체를 베끼지 않아도 비슷한 디자인을 쓰는 것만으로도 상표권 침해가 된다고 본 것이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김영환 변호사는 “미국은 디자인 컨셉트 자체를 ‘트레이드 드레스’로 보호할 만큼 지적재산권 확보에 적극적”이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이 분야 분쟁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우<kcwsssk@joongang.co.kr> | 제225호 | 20110703 입력 |중앙 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