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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신간안내]명품가방만 디자인이냐, 때수건도 디자인이다

»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한 프루스트 의자 

이탈리아·프랑스 등 상품들
멋보다 품질과 기능성 강조
기업 생산·마케팅과 일치해야
현실 속의 좋은 디자인 완성돼

» 〈고마워 디자인-김신 디자인 잡문집〉
〈고마워 디자인-김신 디자인 잡문집〉김신 지음/디자인하우스·1만5000원

이태리타월은 왜 은밀한 임무에 걸맞지 않게 이국적인 이름을 갖게 됐을까? 1960년대 부산에서 직물 공장을 하던 중소기업인이 이탈리아 염료와 실 꼬는 기계를 수입해 국산 원단으로 때수건을 만들면서 ‘이태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때수건에서 고급 명품 디자인의 왕국인 이탈리아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싸구려 생필품의 대명사로만 여겨지는 이 때수건은 한국 디자인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싸구려 제품이 오히려 디자인의 본질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친숙한 제품을 개선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목적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평범한 때수건에 독특한 색채 감각을 집어넣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이태리타월은 이런 디자인의 본질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한국적 사례가 된다.

전 월간 <디자인> 편집장으로 10여년 넘게 디자인에 대한 글을 써온 국내 대표적 디자인 저널리스트 김신씨의 새 책 <고마워, 디자인>은 디자인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바로잡아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디자인은 명품에만 적용되는 튀고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우리의 삶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란 본질적 진리다. 바로 이태리타월처럼.

실제로 지은이는 이탈리아에 가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환상이 깨질 것이라고 꼬집는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이탈리아 가구들은 색채나 디자인보다 품질과 기능성을 최우선한다. 1963년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의자를 생산한 이탈리아 가구회사 카르텔의 클라우디오 루티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모방해도 품질은 모방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카르텔의 플라스틱 의자는 산뜻한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 이탈리아가 이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산업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품질과 디자인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을 우선시하지 무조건 감각적이라는 이유로만 디자이너를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 독일의 라이카 카메라   
 
지은이는 이른바 ‘명품’들에 대해 비전문가들은 독창적이며 고급스러운 아이디어와 스타일에만 감탄하지만 전문가는 그런 아이디어를 실제 물건으로 생산했다는 점을 주목한다고 설명한다. 현실 속의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이 아니라 기업경영자의 안목, 기업의 기획력, 생산력, 마케팅 능력 등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이 떨어지는데 디자인이 좋은 예는 없으며 디자인만 좋으면 그 제품은 반드시 망한다고 단언한다. 우리나라가 학생 콘셉트 디자인 세계경연대회에서는 늘 우수한 성적을 내지만 실제 명품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자인 강국이 되려면 디자인 이전의 시스템과 환경이 문제라는 당연한 진리를 잊고 디자인 하나로만 해결한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책은 이런 중요한 핵심들을 일상과 역사, 과거와 현재의 디자인 사례를 오가며 짧고 간결한 구체적 사례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한국적 디자인의 현실에 대한 비판도 매섭다. 정부가 발주하는 용역에서 디자인료라는 항목 자체가 없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운운하는 것은 디자인을 본질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시용으로 쓰는 것일 뿐이며, 가전사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아트 가전’ 역시 디자인의 핵심을 벗어난 이벤트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 자체로 이미 형식미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디자인인 냉장고에 꽃을 그리거나 보석을 박아 넣는 것이 지나친 형식 추구일 뿐이란 것이다.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이라고 떠드는 정책은 어떤가? 멀쩡한 벽면에 화려한 고가의 마감재를 덕지덕지 붙인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설 뿐이다. 프랑스 파리가 아름다운 것은 초일류 건물 때문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통일감,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에펠탑 같은 기념비적 건물의 조화 덕분이다. 서울이 아름답고 매력적이기 위해서는 근사한 초일류 디자인의 건물을 세우는 게 우선이 아니라 초일류 디자인을 빛나게 할 배경과 환경을 마련하는 게 더 필요하다는 기본을 인식하라고 충고한다. 
 

» (왼쪽부터) MSD의 하이엔드 스피커 문 2, 레몬즙짜개 주시 살리프.   
 
사람들은 디자인이라고 하면 이태리타월이 아니라 이탈리아 슈퍼카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99.9%는 일상의 디자인을 위해 자기의 창의력을 바친다. 그리고 이런 작은 디자인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지은이는 생경과 경이를 추구하는 현대예술과 달리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디자이너야말로 미켈란젤로와 렘브란트의 진정한 후예라고 평가한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사진 디자인하우스 제공  

[한겨레] 권은중 기자 | 등록 : 2011061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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