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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경제 view &] ‘디자인 서울’ 자동차는 왜 온통 무채색인가

나이토 겐지

한국닛산 대표서울이 세계 유명 도시들을 제치고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와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 도시’에 잇따라 선정됐다. ‘디자인 서울’의 전성기다. 경복궁·비원 같은 고궁에서 현대적 디자인의 높은 빌딩숲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서울의 매력이 공감을 얻은 것이다. 이런 서울의 색깔로는 도시의 다양한 매력과는 달리 단조로운 무채색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엔 아파트와 고층 빌딩의 색상 때문이라고 느꼈지만 오히려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 색상 탓 아닐까 싶다.

2009년 글로벌 화학기업 듀폰이 발표한 세계 차량 색상 인기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차량 색깔은 은색·검은색·흰색·회색 순이다. 무채색의 합이 전체 차량 색상의 87%를 차지했다. 유럽은 75.2%, 북미 64.5%, 인도 60.4%, 러시아 51%였다. 한국은 조사 대상 9개 지역 중 무채색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차량 색상은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서울시에 등록된 차량 300만 대 중 87%인 261만 대가 무채색이라고 생각해보자. 무채색 차량이 서울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는 계속 이동하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그래서 차량 색상과 도시 디자인의 상관관계는 더욱 높다.

백화점에 진열된 가전제품과 생활용품에서는 최근 유채색이 인기다. 그런데 유독 자동차에만 무채색 계열이 선호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튀지 않으려는 심리, 중고차 가격, 안정성 등 다양한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꼽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한국이 중·대형차 중심으로 자동차 시장이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유채색의 다양한 색상은 소형차에 더욱 많이 쓰인다. 그래서 중·대형차 판매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는 무채색 선호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구입할 만큼 매력적이고, 차량과 어울리는 유채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판매기록을 보면 무채색이 90%를 차지하는 차량이 상당히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조사에서도 색상 개발에 큰 힘을 쏟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색상이 디자인의 주요 영역이다. ‘컬러 디자이너’가 별도로 있다. 닛산의 컬러 디자이너들은 신차 개발을 위한 컨셉트 회의 때부터 참여한다. 이후 소비자의 나이, 성별, 취미 등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 차량 디자이너와 함께 총체적인 디자인 컨셉트를 정한다. 마케팅 전략에도 컬러 디자이너가 참여한다. 이들은 컬러 마케팅 전략을 종종 축구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선 새로운 차량에 11가지 색상을 적용한다고 가정한다. 가장 선호하는 색상을 ‘수비수’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컬러를 ‘공격수’로 선정한다. 이들을 균형 있게 배치해 차별화한 색상을 원하는 소비자층까지 만족할 수 있도록 컬러 마케팅을 펼친다. 차량을 수출할 때도 색상을 고려한다. 계절은 물론 지형 특색에 따라 자연광의 조도가 다르다. 그래서 색상 샘플을 수출 대상국에 보내 실제 색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조사할 정도다. 색상에 대한 문화적 차이점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예전엔 보기 힘들었던 톡톡 튀는 색상의 차량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소형차와 박스카 등 유채색이 어울리는 차량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친환경 차량의 대중화로 녹색과 하늘색처럼 자연의 색상을 주력 색상으로 내세우는 차량도 등장하고 있다.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소비하는 시대에서 색상은 중요한 요소다. 참신한 디자인이 꿈틀대는 서울에서 자동차만이 개성 없는 무채색의 거리를 만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 거리를 주행하는 차량의 색깔이 조금만 더 다양해진다면 도시의 이미지는 역동적인 사람들과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룰 것이다.

나이토 겐지 한국닛산 대표

[중앙일보] 입력 2011.05.16 00:22 / 수정 2011.05.16 0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