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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3〉 베니스 비엔날레, 누구를 위한 예술?

스가르비 이탈리아관 커미셔너 비엔날레 진행 논란
비평가·큐레이터 대신 문화계 인사 작품 선정토록
‘예술은 우리 것이 아니다’ 마피아적 요소 배제키로

“아니 예술계가 무슨 마피아 조직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올해 6월에 열릴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관의 커미셔너로 선정된 비토리오 스가르비는 전시 준비과정에서 반대 의견에 부딪혀 그만두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 지난 5월 5일 드디어 전시의 구체적인 안을 발표했다. 2010년 커미셔너로 선정된 후로 지금껏 이탈리아관에 대한 이렇다 할 계획안을 내놓지 않고 비밀스럽게 꽁꽁 싸두기를 거듭해 자신만의 독선적인 비엔날레를 진행한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터였다.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퍼포먼스 장면. 몸에 흰색 칠을 한 모델들이 시칠리아 바로크시대 조각가 자코모 세르포타의 조각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비크로프트는 모델의 몸을 캐스팅해 희귀한 대리석으로 제작한 조각 10점을 비엔날레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예술은 이제 병원처럼 변해 버렸어요. 의사나 출입허가를 받은 가족만 병실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스가르비는 큐레이터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고 결정되는 예술 경향을 꼬집으며 “독립 큐레이터들은 날개 아래 보호하고 있던 자기들의 선호 작가들을 관람객에게 지정해 줘요. 의사나 간호사가 자기들의 환자를 구분해서 데리고 있듯이 말이죠. 그들과 같은 병을 얻지 않으면 들어갈 이유가 없는 공간을 만든 거죠.”

스가르비는 그런 이유로 자신의 지휘 아래 놓인 제54회 비엔날레 이탈리아관에 참여하는 작가를 비평가와 큐레이터를 통해서 뽑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예술, 문화계 전반에 걸쳐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뽑히는 인물들에게 예술가를 추천받는 독특한 방법을 택했다. 200명의 인사들이 200개의 다른 관점에서 보고 뽑은 예술가로 전시를 기획해 큐레이터나 갤러리가 결탁해 만들어낸 그들만의 예술이 아닌 모두를 위한 예술을 보여주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가 택한 슬로건은 ‘예술은 우리 것이 아니다’이다.

“예술은 예술계에 몸담고 예술계의 녹을 먹고사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니죠.” 그는 큐레이터와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선호작가와 작업팀을 위주로 채우는 현상이 반복되고 비엔날레 작가가 되는 루트가 존재하고 있는 실정을 마피아적이라고 비판했다.

‘세 개의 십자가 중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다’(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화, 1460년경). 발투스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을 직접 보기 위해 토스카나를 방문하기도 했다.

작품의 질이나 예술성이 아니라 작가의 ‘연줄’ 여부가 비엔날레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를 결정하는 부패한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서 문학가·철학가·영화감독 등 현대미술 시스템 밖의 인사들에게 최근 10년간 가장 주목받을 만한 작품활동을 한 예술가를 뽑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스가르비는 이탈리아관 전시 선언문 발표장에서 ‘예술은 우리 것이 아니다’는 예술이 특정 그룹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길 기원하는 뜻에서 붙인 타이틀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전시 기획의 전반적인 그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피아박물관을 비엔날레 전시공간 중 하나인 테제 데이 소팔키에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스가르비는 자신이 시장을 역임하고 있는 시칠리아의 살레미시에 이미 2년 전 마피아박물관을 개관한 바 있다.

‘예술은 우리 것이 아니다’에서 ‘우리의 것’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는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 보스의 이름이기도 해서 예술은 마피아가 아니라는 이중 의미를 가지는 슬로건이 되었다.

모두의 예술을 주창하는 민주적인 스가르비의 접근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의 비판의 대상이 된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의 반응은 냉담하거나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길’(발투스, 1933∼1934년 작).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지내고 최근에 휘트니 비엔날레의 큐레이터를 역임한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현대미술을 혐오하는 이탈리아를 스가르비가 지휘하는 게 마땅하다며 “스가르비에게 현대미술은 빈 라덴에게 미국과 같은 의미일 거예요. 그에게 비엔날레와 막시미술관을 맡긴 건 이탈리아 예술의 위엄에 자살폭탄을 안겨준 셈이 된 거죠”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스가르비와 보나미는 오랜 기간을 앙숙으로 지내오고 있다. 보나미는 스가르비를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배척하고 과거를 끌어안고 산다고 비꼬았다. 그는 실험적인 예술을 하지 않는 예술가는 현대적일 수 없다고 주장했고, 스가르비는 그에 새로운 것만 찾고 누가 먼저 시도한 것인지 등수를 매기는 것만 중요시하는 보나미는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애꾸눈이라고 응수했다.

보나미는 스가르비와는 다른 방법으로 현대미술의 접근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큐레이터나 미술관 스타의 독재의 그늘에 묶여 있는 예술계를 관람객의 독재로 전복시키는 방법이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제49회 비엔날레를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채운 하랄트 제만을 경계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는데, 지나치게 분산된 전시공간과 통일감이 부족한 시각연출로 산만한 기획이었다는 혹평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보나미는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문화적 시도든지 관람객이 있고 없음으로 성공 여부가 결정 나기 때문에” 관람객이 베니스 곳곳에 설치된 미술작품을 발견해 나가는 탐험 방식을 선택했지만, 그해 유독 더웠던 날씨 탓이었는지 준비된 동선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는 관람객의 원성을 사기만 했다. 그리고 ‘관람객의 독재’라는 좋은 취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으로 존재해 온 엘리트 집단과 VIP 관람객의 독재영역을 풀어놓기에는 결국 역부족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Bidibidobidiboo’(마우리치오 카텔란, 1996). 자살한 듯 설정된 다람쥐 박제.

스가르비는 현대미술이 특정 집단이 주장하는 하나의 예술언어만을 편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패션 유행처럼 시즌마다 대표 작가 순서가 바뀌고 그 흐름을 조종하는 집단과 추종하는 집단으로 이루어진 미술시스템은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비엔날레에 발투스의 그림이 스무 점이나 걸렸을 때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루치안 프로이트가 현대적이지 못한 이류작가로 밀려 비엔날레에 초대받지도 못하고 외부공간에 전시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스페인 큐레이터는 죽은 지 15년이 지난 프랜시스 베이컨을 ‘현대적’인 작가로 선보였어요. 이건 베니스 영화제에서 빔 벤더스 대신 히치콕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실수죠. 현대적이라는 것은 지금 현재에 우리의 현주소를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껏 이탈리아의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유명 미술관과 재단이 하나만을 보고 하나는 놓쳐 왔었다고 진단한 그는 카텔란과 쿠넬리스 같은 스타 작가의 명성에 눌려 무명에 가깝게 남아 있는 작가들의 현대성을 부각시키는 시도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스가르비는 현대에 살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모두 현대적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새로운 미적 개념을 끌어낸 작가만큼 붓질의 중요성을 재발견해 내는 작가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감성으로 즐길 수 있다면 전통적인 미술이라도 현대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참여하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시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비엔날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바네사 비크로프트는 모델을 캐스팅해 대리석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카라라의 한 작업장으로 스가르비를 초대해 아르세날레 전시관에 작품을 넣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전시에 초대받은 로셀라 비스코티와 루이지 세라피니는 베를루스코니적인 비엔날레라고 주장하며 불참 의사를 전달하며 다른 동료 작가들에게 보이콧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스가르비는 비엔날레의 전통적인 개최지인 베니스시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내 주요 공관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89개 이탈리아 문화원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는데, 암스테르담의 이탈리아 문화원에 전시하도록 선정된 로셀라 비스코티는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포퓰리즘적인 작업”에 참여를 거부하며 페이스북을 통해 불참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비스코티는 최근 작품이 로마의 막시미술관에 소장품으로 선정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돈을 받은 그의 불참 결정이 결국은 시선을 끌기 위한 쇼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제 6월 첫 주면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막해 미술계 인사와 관람객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작년에 커미셔너로 선정되었을 당시 이탈리아관에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체 게바라의 작품을 걸든지 작가 주소록만 덩그러니 남긴 빈 공간을 보여주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스가르비는 1500장에 달하는 카탈로그를 채울 전례에 없는 긴 작가 리스트를 가지고 돌아왔다. 스가르비가 베니스를 비롯한 주 공관과 문화원에 나열하게 될 작가 목록이 모여 새롭고 현대적인 파노라마를 열어줄지, 지루한 예술가 모음집으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조각·미술설치가(밀라노) hojin00@gmail.com

입력 2011.02.13 (일) 11:12, 수정 2011.02.13 (일)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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