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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젤리 슈즈

젤리 슈즈의 '9회 말 역전타'
장마철 '뜨내기 손님'에서 가죽 구두 라이벌로…

젤리 슈즈(jelly shoes)는 요즘 9회 말에서 역전타를 날린 야구선수와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합성 비닐(PVC)로 만들어 가볍고 말랑말랑한 이 신발은 한동안 장마철에만 잠깐 여자들에게 환영받는 '뜨내기손님' 같은 존재였다. 1980년대 미국에서 한 켤레에 1달러도 안 하는 저렴한 가격 덕분에 잠시 붐을 일으켰으나 이내 기억 속에 사라졌고, 1990년대 말 새삼 부활했지만 여전히 싼 맛에 여름 한 철 신고 버리는 신발로 기억될 뿐이었다.

안타를 날리기 시작한 건 2003년. 페라가모·샤넬 같은 하이패션 브랜드가 젤리 슈즈를 만들어 내놓기 시작했고, 올해 여름엔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 가죽 신발보다 뜨겁게 경쟁하는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하이힐부터 글래디에이터 샌들까지…, 이젠 가격도 그리 만만치 않다.

▲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글래디에이터 슈즈(지마켓), 남자들을 위한 덧신‘오버슈즈(스윔스)’, 금색 스트랩 하이힐(비비안웨스트우드), 꽃이 달린 검정 끈 샌들(나인웨스트), 주홍·터키석 빛깔 플랫슈즈(토리버치), 쥐모양의 진홍색 플랫(마크제이콥스), 빨강 웨지힐 샌들(지마켓), 남색 플랫(아르마니), 쥐모양 남색(마크제이콥스). 같은 PVC 소재로 만든 하얀 젤리 시계는 테크노마린, 초록색 고무 밴드 시계는‘투레이트’.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실험' 끝에 나온 젤리 슈즈의 '역전 타'

브라질의 젤리 슈즈 브랜드 '멜리사(Mel-issa)'. 이들은 요즘 젤리 슈즈로 아예 '실험'을 한다. 세계적인 브라질 출신 가구 디자이너 캄파냐(Campana) 형제와 손잡고 동글동글 철사를 구부려 만든 이들의 유명한 철제 의자를 본뜬 신발 '멜리사+캄파냐'를 만든 게 시작. 올해 동대문 일대를 휩쓰는 새둥지처럼 생긴 '짝퉁 신발'은 모두 이들의 예술 정신을 베낀 것이다.

2009년엔 건축가 자하 하디드(Hadid)와 함께 외계인 얼굴처럼 보이는 젤리 신발을 내놓더니, 이젠 영국 브랜드 '비비안웨스트우드'와 손을 잡고 하이힐까지 내놨다. 발목부터 세 개의 줄이 달린 이 하이힐 젤리 슈즈는 작년부터 계속 다른 색깔로 나오는 게 특징. 올해는 금색, 검정 같은 색깔로 젤리신 특유의 알록달록함보다 무게감 있는 펌프스 느낌을 더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선 6월 중순부터 매장에서 판매한다.

'지방시'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등은 고대 그리스 무사들이 신던 신발을 연상시키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신발을 고무로 만들었다. 달콤하고 깜찍한 신발로만 여겨졌던 젤리 슈즈에 무뚝뚝한 매력을 더해, 정장 바지에 신어도 어색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구두 밑창과 굽을 연결한 '웨지힐(wedge heel)' 형태도 인기다. 구본승 패션잡화팀장은 "작년에는 휴가·장마철에만 반짝 팔렸는데, 올해는 초봄부터 지금까지 작년 대비 23%나 판매가 급증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색채는 점점 더 다양… 남색, 검정, 초록, 주홍이 강세

하얀색, 분홍색에만 머물러 있던 젤리 슈즈 색깔이 올해는 세기도 힘들만큼 다채로워졌다. 올해 가장 많이 나온 색깔은 남색과 검정. 초록과 주홍도 많다. '토리 버치'는 핑크, 주홍, 터키 블루, 남색 등 네 가지 컬러로 만든 '젤리 리바'를 내놨고, '마크 제이콥스'는 쥐 모양을 본떠 만든 '젤리 마우스 슈즈'를 분홍, 남색 두 가지 색깔로 내놨다. 이브 생로랑의 주홍색 끈 샌들, 아르마니의 남색 젤리 슈즈, 나인웨스트의 검은색 꽃장식 샌들, '씨바이 끌로에'의 밝은 녹색 샌들, '버버리'의 회색과 분홍이 섞인 샌들, 미국 브랜드 '차이니즈 론드리'의 빨간 리본 샌들 등도 잘 팔린다.

◆남자들은 '오버슈즈'

여자들이야 철 따라 신발을 갈아신으니 젤리 슈즈도 거리낌 없이 잘 신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는 게 사실. 정장을 주로 입는 회사원들은 장마철에 샌들도 잘 못 신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위해 노르웨이 브랜드 '스윔스(Swims)'가 내놓은 게 '오버슈즈'.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발이지만 우리나라엔 최근에야 상륙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발 위에 덧신는 커다란 고무신. 색깔은 검정, 회색, 노랑, 보라, 주홍 등이다. 여름에도 예의나 멋 때문에 가죽이나 스웨이드 신발을 신어야 하지만, 비 오는 날 신발이 망가질까 걱정하는 남자들을 위해 나온 제품이다. 고무신 젤리 슈즈는 이제 양복 입는 남자들의 발도 바꿔놓을 만큼 컸다.

송혜진 기자 enav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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