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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부가티 ‘100년 만의 굴욕’

20억 넘는 스포츠카 대표 브랜드
25% 값 낮춘 4도어 세단 내놔
카 매니어들 “개성 사라져” 불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모터쇼에 출품됐던 16기통 2006년형 부가티 베이런 16.4 자동차.

최고급 스포츠카, 베이런으로 유명한 부가티(Bugatti)가 4도어 패밀리 세단을 내놓았다. 100년도 넘는 부가티 역사상 처음이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은 5일(한국시간) 웹사이트에 이 소식을 전하며 “만우절 농담이 아니다”라고 썼을 정도다.

그런데 문짝 개수가 두 개에서 네 개로 많아졌는데도 가격은 140만 달러(약 15억원)로 내렸다. 부가티가 만드는 2도어 스포츠카는 보통 20억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새 모델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1000마력짜리 엔진을 달았고, 속도는 352㎞까지 낼 수 있다.

부가티의 변화에 대해 “대중성을 강화한 포르셰나 애스턴 마틴의 전략을 따라 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2도어 정통 스포츠카를 만들던 이들 브랜드는 앞서 4도어 모델을 내놓으며 가격을 낮춰 시장을 확장했다. 포르셰는 2009년 파나메라를, 애스턴 마틴은 지난해 라피드를 각각 출시하며 가격을 20% 정도 깎았다.

파나메라는 포르셰의 간판인 911 판매량을 넘어섰고, 라피드는 지난해 2000대를 파는 등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부가티의 굴욕’이란 반응도 있다. “그럼 롤스로이스가 전기차를 기다려야 하느냐”는 식으로 자동차의 개성이 사라지는 데 따른 불만이라고 포춘은 전했다. BMW도 고성능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M5의 대중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축을 울리는 파워가 자랑인 M5의 새 모델에는 연료 절감을 위해 쓰이는 ‘스톱앤드고(Stop&Go)’ 기능이 달린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했다. M5 엔진도 기존 10기통에서 8기통으로 줄인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로 인해 연비가 20% 좋아진다는 것이 BMW의 설명이다.

기름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부자들의 차인데도 연비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의외다. BMW는 이달 21~28일 중국 상하이 모터쇼에 컨셉트카로 신형 M5를 출품한다.

이처럼 소수의 특별한 부자를 위한 차의 잇따른 변신은 그동안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며 최상류층 시장에 안주하던 생산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여파가 이들 고가 브랜드에 타격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장진택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친환경, 가족이란 대중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전문직 고소득의 젊은 부자를 새로운 수요층으로 붙들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4.06 00:12 / 수정 2011.04.06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