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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fn논단]해외로 눈을 돌리자/김현태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지난해 이맘 때 영국 디자인계는 한국 출신의 청년 디자이너 얘기로 들썩였다. 대학원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영국 최고 권위의 디자인상인 '올해의 디자인상'에서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가디언과 인디펜턴트,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국의 유력지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올해의 디자인상 후보자 가운데는 시상식 한 달 전 세상을 등진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도 있어 더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영국의 BBC 방송은 '폴딩 플러그가 매퀸을 이겼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접히는(folding) 플러그는 영국에서 60년 넘게 같은 모습을 고수했던 발이 세 개 달린 투박한 전기플러그를 날렵하게 바꾼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았다. 이 디자인은 디자인런던인큐베이터가 운영하는 창업 장려 프로그램 대상으로 선정돼 1억원이 넘는 사업화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망고패션 어워즈'는 패션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일컫는 최고 권위의 공모전이다. 2009년 대상 수상자는 역시 30대 초반의 한국 디자이너였다. 그는 1등 상금으로 30만유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디자인한 10종의 옷과 구두, 가방 등이 자신의 브랜드를 내걸고 세계 각지의 망고 유통망을 통해 팔려 나가는 성과를 거뒀다.

개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디자인 기업도 늘고 있다. 지난 2004년 중국 시장에 처음 문을 두드린 한 디자인 전문회사는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의 80%를 중국에서 거뒀다. 150만달러에 이른다. 지식경제부가 시범적으로 '닝보 디자인센터'를 설치해 중국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가있는 디자인 전문회사 30여개 중 하나이다. 이들은 주로 닝보를 중심으로 가전, 정보기술(IT), 자동차, 문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디자인이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하면서 이처럼 해외로 무대를 옮기는 디자이너와 디자인기업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창의적인 사고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디자인 분야이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창조적인 국가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내 디자인 시장을 감안하면 더욱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디자인 분야에서 지난 10년간 성장을 거듭해왔다. 2007년 디자인 경쟁력은 세계 9위까지 올라섰고 디자인산업 규모도 5조9000억원 수준으로 꾸준히 늘었다. 디자인기업도 10여년 전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었다. 연간 디자인 인력 배출은 영국의 2배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초래해 디자인 전공자의 취업률이 낮아지고 시장도 포화 상태로 만들었다. 여기에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디자인산업의 성장세까지 둔화되고 있다.

이에 비해 해외시장의 디자인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요사이 세계의 생산기지가 되고 있는 중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생산설비와 생산량은 넘쳐나지만 이에 비해 아직 디자인 공급이 부족하고 수준 또한 낮아 우리 디자인 기업들의 진출 가능성이 상당히 큰 편이다.

실례로 중국 닝보에 소재한 제조업체 수는 현재 10만개에 이르며 연간 디자인개발 외주 비용만 약 2조원으로 추정된다. 베이징시는 매년 5억위안을 디자인에 쏟아붓고 있다. 상하이에 있는 디자인클러스터에 입주해 있는 중국 디자인 기업의 평균 매출은 400만위안을 넘어 서고 있다. 상하이에만 이런 디자인 클러스터가 97개가 있다. 여타 동남아 개발도상국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제 우리 디자인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이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와 디자인 기업이 늘고 있다지만 우리 디자인산업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좁은 국내 시장에 안주할 이유가 없다. 해외시장 진출을 서둘러야 할 때다.

기사입력2011-03-23 16:55기사수정 2011-03-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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