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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고목나무에서… 빌딩이 나왔다

광화문 새 랜드마크… '트윈 트리' 만든 조병수 건축가
"경복궁 앞 역사적 장소에 古木의 정통성 살려 건축… 땅이 지닌 의미 고려해야"

며칠 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초입의 동십자각 앞. 미국인 관광객 서너명이 목을 뒤로 젖힌 채 키 높은 건물을 디카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이들의 뷰파인더를 꽉 채운 건물은 올 초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한국일보 사옥 자리에 들어선 두 동짜리 신축 빌딩이었다.

매끈한 상자형의 여느 고층 건물과는 뭔가 다르다. 삼각자와 컴퍼스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비정형화된 형태. 그마저도 군데군데 움푹 팼다. 요즘 광화문 일대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주목받는 사무용 건물 '트윈 트리(Twin tree)'다.

트윈 트리는 건축가 조병수(54)씨의 작품이다. 조씨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 있는 작가 이외수의 집(2005),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있는 황인용의 음악카페 카메라타(2004) 등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로 지난해 '김수근 문화상'을 받았다.

◆건물 감상 키워드…사잇길

최근 만난 조씨는 건물을 설명하기에 앞서 작은 이미지를 내밀었다. 틈새가 쩍 벌어진 고목나무 밑둥치 사진이었다. 그는 "경복궁, 광화문이 바라다보이는 중요한 역사적 장소에 들어서는 건물이라 역사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여러 형태를 생각하다 오랜 세월 동안 대지에 뿌리 박혀 있는 나무를 형상화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래서 옆선은 날카롭고 차가운 직선 대신 풍만하고 여유로운 느낌의 곡선으로 디자인했다. 움푹 팬 홈은 갈라진 나무 틈새를 표현한 것이다. 두 동이 비슷한 나무 모양을 하고 있어 건물 이름을 트윈 트리(쌍둥이 나무)라고 붙였다. 두 동이 똑같지는 않아 엄밀한 의미에선 '이란성 쌍둥이'이다.

건물을 감상하는 키워드는 '사잇길'이다. 동십자각 앞에 선 조씨가 트윈 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빌딩을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두 건물 사이에 있는 사잇길이었어요. 건물 뒤쪽은 과거 피맛골이 있던 곳이고 동십자각 건너편 쪽에는 경복궁이 있어요. 전통이 숨 쉬는 곳이죠." 역사가 깃든 두 장소를 가로막지 않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길을 냈다. 두 건물의 옆면을 단절된 느낌의 직선 대신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한 또 다른 이유다. '현대와 과거의 소통'이 이 길에 숨은 의미다.
 

▲ 트윈 트리를 설계한 건축가 조병수씨. 그는“환경친화적인 건물만큼이나 사회₩문화 친화적인 건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신문사 사옥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었다. 조씨는 "역사적인 건물을 허무는 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구단위개발계획에 의해 불가피하게 기존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그렇다면 차선은 부지의 성격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는 "요즘 건축에서 자연친화적인 건물이 화두인데 사회·문화 친화적인 건물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했다. 땅이 지닌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형태적인 특이함만을 고려하는 건축 세태에 대한 경고였다.

◆첨단기술의 산물, 유리 곡면

건물이 들어선 자리는 역사 보존 지구여서 한계가 많았다. 우선 기존 건물의 높이 68m보다 높게 지을 수 없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유리 곡면을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현실적인 한계를 덜어낸 건 첨단 기술이었다. 그는 "컴퓨터로 곡률을 계산해서 동일한 굴곡으로 유리를 모듈화하고, 첨단 공법을 도입해 건물의 보를 없앤 결과 17층짜리 건물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 경복궁 쪽에서 바라본 트윈 트리. 두 빌딩 사이의 사잇길은 전통과 현대의 소통을 의미한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상자형 건물을 포기하는 건 건축주의 입장에선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임대할 수 있는 면적이 줄어들어 수익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조씨는 "설계를 의뢰한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이 땅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좋은 건축을 해달라고 했다"며 "약 10억원 이상의 임대 수익을 포기한 과감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궁합을 얘기했다. "이외수씨의 집을 만들 때는 작가의 재치있는 품성을 담아 상자 3개를 이은 실험적인 형태를 제안했어요. 못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단번에 좋다고 하더군요." 동네 사람들은 이씨의 집이 집처럼 안 보인다며 '옥수수 벙커(창고)'라고 부른다. 음악카페를 겸하는 황인용씨의 집은 미국 농가의 창고를 본떴다. "음악을 최대한 잘 감상할 수 있도록 텅 빈 공간을 만들었는데 황씨가 어렸을 때 본 동네 염전의 창고와 비슷하다며 흡족해했다"고 했다. 조씨는 "건축가의 창작 의지를 이해해 주는 건축주가 많아야 우리 사회의 건축 문화 수준이 올라간다"고 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3.09 03:01 / 수정 : 2011.03.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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