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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디자인 문구 시장 쑥쑥 크네!

無用之用

제조업체만 2000여개… 시장규모 연 1000억대 추정
온라인 소품점도 인기 회원 110만명 넘는 곳도 


▲ 2600㎡ 규모의 디자인 소품매장인 코즈니 명동점. photo 코즈니
 
지난 1월 초 이성락(23)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내 핫트랙스에 갔다. 다이어리를 사기 위해 디자인문구 코너에 갔더니 사람이 너무 많아 상품을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다이어리 하면 날짜만 적혀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이씨 눈에 1200여종의 다양한 디자인을 요모조모 살피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는 “내 눈엔 저걸 누가 쓸까 싶은 물건들인데 여자친구는 한번 구경을 시작하면 나갈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쓸모없는 줄 알았는데 쓸모 있음을 뜻하는 고사성어)의 철학이 딱 맞는 분야가 ‘디자인 문구’다. 값이 얼마 나가지 않는 소소한 물건들이지만 다이어리 하나, 볼펜 하나도 남들과 다른 나만의 제품을 찾는다. 덕분에 지난 10년간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 문구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모닝글로리 독주 체제였던 디자인 문구 시장은 현재 제조업체만 2000여개로 늘었다. 디자인 문구를 판매하는 소품점도 작은 것들을 팔아 몸집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디자인 소품점은 온라인 기반의 1300K(1300k.com), 텐바이텐(10×10.co.kr), 오프라인 기반의 핫트랙스, 코즈니가 있다. 2001년 3월 문을 연 최초의 온라인 디자인 소품 사이트 ‘1300K’의 경우 초창기 연매출 5억원에서 지난해 300억원 규모로 약 60배 성장했다. 2005년 이전만 해도 매년 성장률이 두 배씩 증가했다. 현재 판매하는 제품 수도 20만종이 넘는다.
   
요즘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대표적인 디자인 소품은 태양열로 움직이는 인형 ‘노호혼’이다. 일본 장난감 회사인 ‘타카라토미’ 제품으로 웃고 있는 캐릭터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거리는 게 전부다. 개당 2만~3만원대로 결코 싼 가격이 아님에도 온라인 디자인소품 사이트에서 큰 인기다. 2003년 국내에 첫 판매된 이후 지금까지 약 60만개(동종상품 ‘플립플랩’ 포함)가 팔렸다.
   
책이나 서류에서 특정 쪽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테두리 부분에 붙이는 견출지(見出紙) 역할을 대신한 벨기에 다이모사의 ‘라벨기’도 히트상품이다. 과거 학생들은 흰색 바탕에 빨간 사각형 테두리가 둘러진 견출지에 펜으로 이름을 써 이름표를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젊은층은 색깔 테이프를 다이모 라벨기에 넣어 자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 새겨 개성있는 이름표를 만든다. 이전에 없던 용도와 쓰임을 갖춘 디자인 소품은 상품 자체가 새로운 수요를 만든다. 주요 소비층인 젊은 여성들은 ‘예쁘고 특이하다’면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해외수출도 늘어

지난 10년 소비에 익숙한 젊은 세대 덕분에 디자인 소품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디자인문구 시장 규모를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 1위로 평가받는 온라인 디자인 소품점 ‘텐바이텐’의 경우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92학번 동기 다섯 명이 2001년 10월 회사를 설립해 지난 1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설립 초기에 비해 직원 수(80명)가 16배로 늘었고 ‘텐바이텐’ 사이트 회원 수만 110만명에 이른다. 현재 12만여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경쟁업체인 ‘1300K’는 15군데, ‘텐바이텐’은 8군데의 오프라인 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국내 디자인문구 생산업체는 ‘밀리미터밀리그램(mmmg)’을 포함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는 2000여개의 제작 업체가 있다. 과거 수입제품 일색이던 것과 비교해 최근에는 국내 제품 비중이 50~60%로 늘었다.
   
국내 디자인소품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해외 수출도 늘고 있다. 12년차 디자인 소품 제작업체 ‘mmmg’은 2005년부터 팬시와 캐릭터 강국인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일본 외에도 미국, 호주, 영국 등 총 9개 국가에 토종 디자인문구 제품이 진출하고 있다.
   
디자인 소품점의 핵심은 ‘감성 마케팅’이다. 상품판매에 그치지 않고 그 상품을 통한 즐거움을 소비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오프라인 디자인 소품점은 어른들의 놀이터다. 1999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문을 연 ‘코즈니’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공주님 방처럼 꾸며졌다. 하얀 침대와 캐노피(침대 위로 드리워진 커튼)가 여심을 자극한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다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난다. 디자인 소품점들은 매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되더라도 취미·문화강좌, 카페, 온라인 커뮤니티에 투자한다. 소비자들이 즐겁게 노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주기 위해서다. 코즈니 상품기획팀 박완주씨는 “쇼핑 그 자체가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구·완구 넘어 생활소품으로
   
디자인 소품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도 클 전망이다. 디자인 상품이 문구와 완구를 넘어 생활용품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디자인 문구에 열광했던 10~20대 소녀들이 성장해 이제는 회사에 들어가고 가정을 꾸린다. 자연스레 디자인 소품은 문구에서 사무용품, 리빙용품, 패션용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30cm자와 철 파일이 전부였던 사무용품은 커피잔 모양의 1인 가습기와 마우스 손목 받침대 등으로 종류가 다양해졌다.
   
리빙용품도 디자인 문구의 세례를 받아 기존 브랜드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디자인 상품으로 개발된다. 최근 각광받는 벽장식 제품들이 대표적. 흰 벽에 스티커 형태로 붙일 수 있는 작은 그림들과 벽면을 사진으로 채울 수 있게 나온 액자 세트 등이 인기다. 가구의 경우 북유럽 스타일로 디자인을 차별화했더니 브랜드가 안 알려진 제품이더라도 중저가 브랜드 이상의 가격에 팔린다. 침구류는 20만원대, 가구는 30만~40만원대 수요가 가장 많지만 10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도 있다.
  
▶ 계산기, 볼펜 겸 열쇠고리, 태양열로 움직이는 인형 ‘노호혼’. (왼쪽부터) photo 1300K

성장 가능성은 높지만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도쿄 기프트쇼’에 참가한 국내 디자인소품 업체 사람들은 ‘소비의 피로누적’ 현상을 걱정했다. 워낙 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오다보면 소비자들이 상품을 선택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1300K 모정연 기획팀장은 “종류가 무한대로 많아지면서 더 이상 예쁜 디자인만으로는 주목받기 어렵게 됐다”며 “물건을 소비하는 행위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이나 친환경 트렌드가 디자인 소품업계에도 불고 있는 이유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디자인소품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은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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