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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신의 손, 로댕>전

<신의 손, 로댕>전
현대의 미켈란젤로, 조각의 거장 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랐던 천재 조각가 로댕

기간 : 2010년 4월 30일(금) ~ 8월 22일(일)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문의 : 1577-8968
주최 : 서울시립미술관, 한국일보,KBS한국방송
협력미술관 : MUSEE RODIN PARIS

http://www.rodinseoul.com/

전시 안내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전시.
매주 월요일 휴관.
화~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요일 및 공휴일 오후 8시까지.
유치원 단체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사전 예약 필수).
작품해설 화~금요일 오전 10시30분(어린이 도슨트), 11시, 오후 1시, 3시, 5시, 7시. 오디오 가이드 대여 중.
관람요금 성인기준 12,000원, 화~토요일 오후 6시 이후 2,000원 할인.

예매 및 문의 ARS 1577-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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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사랑과 예술


전강옥 조각가   

파리 로댕 미술관의 전시실 하나는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조각 전시실에도 그녀의 작품은 로댕의 대작들 사이에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로댕 작품을 보러 갔던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클로델이라는 조각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동선이 만들어져 있다. 두 사람 작품의 유사성을 통해 관람자들은 로댕의 명성에 가려져 빛을 볼 수 없었던 클로델의 비운에 동정심을 갖는다. 다음 순간 결코 의심해 본적이 없던 로댕 작품의 위대함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으며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묘사되는 클로델. 19살의 클로델을 처음 만난 로댕은 미모와 재능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두 연인은 예술적 영감을 나누며 서로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무렵 로댕은 <입맞춤>, <영원한 우상>처럼 사랑에 빠진 연인상을 만들었다. 사랑과 영감의 교차 속에 만들어진 이 시기 두 사람의 몇 작품은 누구의 것인지 쉽게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클로델 또한 로댕의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 성향의 작품을 만들었다. 로댕에게 클로델은 작품의 영감을 주는 뮤즈였지만 클로델에게 로댕은 인생의 전부였다. 그것이 그녀의 비극이자 클로델 예술의 정점이기도 하다.

조강지처와 다름없는 로즈 뵈레를 떠나지 못하는 로댕에게 클로델은 사랑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결국 심한 언쟁 끝에 로댕을 떠난다. 하지만 로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왈츠> <중년> <운명> <애원> 같은 작품은 모두 로댕과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당신 두상을 만들 거예요 / 흙으로 빚고 석고를 떠서 내 방에 놔두겠어요 / 사랑이 식을 때 쉽게 깨뜨려 버리게요"라고 했던 한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그녀의 예술은 언제든 깨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한 사랑을 노래한다.

그녀의 대표작은 모두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사선 구조로 되어있다. 한 쌍의 남녀가 껴안고 춤을 추는 <왈츠>처럼 작품을 지배하는 기울어진 형태야 말로 로댕을 벗어나 온전하게 홀로 설 수 없었던 자신의 불완전한 일생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장 잘 설명하는 극적 구조이다.

자신의 예술적 성공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어떻게든 로댕을 극복해야 했으나 클로델은 이미 사랑하기 때문에 연약해져 버린 여인이다. 그녀가 로댕에게 보이는 애증은 자신의 이름대신 남편의 이름으로 살아온 보통의 아내들이 갖는 상실감과 비슷하다. 열렬히 로댕을 사랑했고 젊음과 재능, 모든 것을 헌신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자의식의 허탈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랑과 예술이라는 이름의 욕망을 포기하고서야 클로델은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였다. 소나기 같은 젊음의 격정이 지나고 나서 비로소 로댕을 극복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동생 폴 클로델에게 편지를 보낸다.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가 너무 깊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클로델을 영원히 떠날 수 없었던 사람은 로댕이었다. 그는 죽기 직전 건립되고 있는 로댕 미술관에 클로델의 작품을 소장해 줄 것을 부탁한다. 거장의 요청으로 두 사람의 작품은 영원히 한자리에 놓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두 사람의 예술적 교류와 사랑은 그들의 작품에서처럼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난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입력시간 : 201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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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파리 로댕전'으로의 시간여행

로댕전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로댕
외부 빛 활용·아치형 유리창… 당시 로댕이 만든 분위기 재현
이사도라 던컨과 각별한 관계… 춤에서 인체의 움직임 영감 얻어

김지원기자 eddie@hk.co.kr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의 손-로댕' 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1900년에 파리에서 개최된 로댕의 개인전을 재현한 전시실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현대 무용의 선구자 이사도라 던컨(왼쪽)과 로댕의 청동 조각 '춤동작 A' .

3.5m 높이의 청동 조각 '기둥 위의 걷는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는 관람객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의 손_로댕'전은 현대 조각의 선구자 오귀스트 로댕(1840~1917)과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로댕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생각하는 사람' '입맞춤' 등 잘 알려진 로댕의 유명 작품,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로댕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다.

살아 움직일 듯한 드로잉

이번 전시는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공수해온 113점의 조각 외에 로댕이 연필이나 수채물감으로 그린 42점의 드로잉을 함께 소개한다. 주로 여체의 움직임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드로잉들로, 조각의 밑그림으로서뿐 아니라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들이다.

실제 모델의 움직임과 포즈를 바탕으로 작업했던 로댕은 무려 1만여 점의 드로잉을 남겼다. 그는 "생명이란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고 신성함이며 꼭 잡아야 할 순간"이라고 말할 만큼 인체의 역동적 순간을 포착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모델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한 뒤 종이를 보지 않고 오직 모델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림을 그렸으며, 수정도 하지 않았다.

간결한 형태와 대범한 표현이 특징인 드로잉은 로댕의 에로틱하면서도 역동적인 조각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데생을 빼놓고 로댕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로댕미술관 큐레이터 마리 피에르 델클로의 설명이다.

이사도라 던컨, 니진스키과 로댕

로댕은 춤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조각가이기도 했다. 인체의 움직임의 가능성이 극대화되는 무용을 통해 신체 표현 작업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춤, 생동하는 인체' 섹션 등 '신의 손_로댕'전 곳곳에서 춤에 대한 로댕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누드의 여성 무용수가 한쪽 다리를 들어올린 채 점프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신들의 전령, 아이리스'나 '춤동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청동 조각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로댕은 전통적인 고전 발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춤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미국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 '목신의 오후'에서 대담하고 관능적인 연기를 선보인 러시아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 등에게 매료돼 그들을 모델로 삼았다. 로댕과 각별한 관계였던 이사도라 던컨은 여러 차례 로댕의 작업실에서 춤을 췄고, 로댕의 훈장 수여 축하연에서 공연한 모습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당시 유럽에 소개된 동양의 이국적인 춤도 로댕의 작품에 자주 나타난다. 로댕은 1906년 캄보디아 무용단을 따라 마르세유까지 가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 작품들은 거의 판매하지 않고 간직했을 만큼 강한 애착을 보였다.

전시 연출가 로댕

3층 전시실로 들어가면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환한 빛이 하얀 조각상들을 비추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실제 창문이 아니라 창문 형태로 만들어진 조명이다. 로댕이 직접 연출했던 자신의 개인전을 연상시키는 장치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시하는 능력을 가진 연출가이기도 했다. 1900년 파리에서 국제박람회가 열리자 그는 박람회장 인근 알마 광장에 별도의 전시장을 짓고 168점의 조각과 데생, 사진 등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로댕은 이 전시장의 건축 콘셉트부터 작품의 구성과 배치, 조명, 작품이 놓이는 받침대의 형태까지 모두 직접 결정했다.

로댕은 외부의 빛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에 따라 우아한 아치형 유리창으로 전시장을 감쌌고, 다양한 높이의 원기둥 위에 작품을 올려 작품들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또 빽빽하게 작품을 전시하던 당시 관례에서 벗어나 관람객들이 여러 각도에서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의 조화에도 신경썼다.

'신의 손_로댕'전 중 '1900년 로댕, 알마관 개인전' 섹션에는 3m에 이르는 기둥 위에 올려진 '걷는 사람'을 비롯해 '기둥 위의 스핑크스' 등 당시의 전시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모여있고, 벽에 걸린 사진들 역시 당시 로댕의 배열 방식을 따랐다.

오전 10시30분엔 어린이들 위해 해설

'신의 손_로댕'전은 8월 22일까지 계속된다. 관람시간은 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 토ㆍ일ㆍ공휴일 오전 10시~오후 8시(월요일은 휴관). 입장료는 어린이 8,000원, 청소년 1만원, 성인 1만2,000원. 화~토요일 오후 6시 이후 현장 구매 관람객이나 20인 이상 단체 관람객은 2,000원 할인해준다.

깊이있는 전시 관람을 원한다면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게 좋다. 도슨트 해설은 평일 하루 6회(오전 10시30분, 11시, 오후 1시, 3시, 5시, 7시), 토요일 5회(오전 10시30분, 오후 1시, 3시, 5시, 7시), 일ㆍ공휴일 4회(오전 10시30분, 오후 1시, 3시, 5시) 열린다. 오전 10시30분에는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눈높이 해설로 진행된다. 문의 1577-8968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입력시간 : 2010/05/30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5/h20100530214143843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