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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델피르와 친구들 아! 이 사진] 수수께끼 같은 풍경을 거닐 듯

» <언덕에서 뛰어내려오는 소년과 소녀, 네덜란드>(2005)

사진이라기보다는 초현실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강렬한 빛덩어리가 화면 한 가운데 박혀 있고, 그 주위 풀 언덕을 뛰어 내려오는 소년과 소녀들은 마치 몽유병에 걸려 꿈결 속을 거니는 듯하다.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풍경 속에 쓸쓸하고 황량한 기운조차 감도는 이 사진을 보노라면 사진가의 내면 속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언덕에서…>는 이번 ‘델피르와 친구들’ 전의 유일한 한국인 작가이면서 가장 많은 13점을 출품한 박재성(44)씨의 대표작이다. 심리학과 영화에 심취한 작가는 상징적이며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넘실거리는 사진을 찍는다. 작가는 전북 익산에서 올챙이를 잡고, 메뚜기와 나비를 쫓아다니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10대 초반 아메리카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가족과 이민을 떠난 그는 고교 시절 학보사 기자로 처음 사진과 만났고, 20대는 뉴욕에서, 30대는 파리로 활동 무대를 바꾸며 유목 작가의 험로를 걸어왔다. 사진을 영화처럼 찍는 작가 특유의 앵글은 숱한 시선의 곡절이 연속됐던 그의 유목적 삶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기획자 델피르는 1998년 파리에서 그를 처음 만난 뒤 “계속 사진을 찍으라”며 필름 100롤을 주어 격려했고, 2006년 자신이 직접 편집하고 타이틀을 만든 사진집 <여기 또 그 어딘가>도 만들 정도로 열렬한 후원자가 됐다. “생소한 그만의 이방인 같은 시선이 좋다”는 델피르의 말처럼 작가는 언어와 문화가 낯선 세계 곳곳의 이방 지대를 자기만의 눈길로 집요하게 탐험하는 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델피르와 친구들’ 전(2월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02-710-0765)

기사등록 : 2011-01-06 오전 08: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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