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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2010 i saloni 디자인 마이애미와 펜디의 만남 design vertigo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신선한 감각과 샘솟는 영감을 뒷받침하는 ‘큰손’들의 지지와 격려는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다. ‘예술로서의 디자인’을 외치면서 해마다 스위스 바젤(6월), 미국 마이애미(12월)를 오가며 세계적인 전시회를 개최해온 디자인 마이애미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와 함께 ‘젊은 피’를 양성하는 데 뜻을 모은 협력 프로젝트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패션, 미술, 디자인, 건축… 다채로운 예술의 영역이 융합되면서 ‘창조적 파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21세기 초에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펜디와 디자인 마이애미의 후원 아래 만나본다. 

1 펜디의 액세서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 왼쪽)와 디자인 마이애미의 공동 설립자이자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한 큐레이터 암브라 메다 (Ambra Medda). 20대 후반의 암브라는 디자인 아트페어 업계의 ‘젊은 여성 파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2 펠리체 바리니.
3.4 스위스 출신의 저명한 예술가 펠리체 바리니(Felice Varini)가 변형 투사법이라는 페인팅 기법을 동원해 내놓은 작품 ‘사다리꼴 모형 안의 타원(Elisse nel Trapezio)’.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칠해진 것 같지만 특정 시점에서 보면 완전한 기하학적 형태를 띤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시대의 혼돈은 새로운 창조의 모태
‘지상 최대의 디자인 축제’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매년 4월 열리는 이 박람회의 명성을 드높인 주요 요소 중 하나로 시내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채롭고 푸짐한 볼거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축제를 겨냥해 정성껏 준비한 작품을 저마다의 개성이 어린 방식으로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행사는 바쁜 행인들의 발걸음을 절로 멈추게 하고 도시 전체에 신선한 영감과 생생한 활기를 가득 불어넣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밀라노 시내의 비아 시에사(Via Sciesa) 3에 자리 잡은 스파지오 펜디(Spazio Fendi) 역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장소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는 이곳에서 세계적인 디자인 그룹인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와 손잡고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주최한 공동 프로젝트 ‘디자인 버티고(Design Vertigo)’를 선보였다. 작년의 주제인 ‘크래프트 펑크(Craft Punk)’가 전통 수공예 기술과 자유롭고 도전적인 실험 정신의 접목을 추구했다면 올해의 프로젝트는 ‘현기증(vertigo)’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 시대의 혼돈을 다룬 것이다.

4월 14일부터 18일까지 ‘디자인 극장’으로 탈바꿈한 펜디의 쇼룸 스파지오 펜디는 스위스 출신의 저명한 예술가 펠리체 바리니(Felice Varini)의 작품으로 일단 전시장 입구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끌었다. 건축적 공간을 무대 삼아 선과 원등 도형을 칠하는 입체 페인팅 기법으로 유명한 바리니는 이번에 펜디 특유의 노란색을 활용한 작품 ‘사다리꼴 모형 안의 타원(Elisse nel Trapezio)’을 내놓았다. 언뜻 보면 여기저기 선이나 도형이 아무렇게나 배치돼 있는 듯하지만 특정 지점에서 감상하면 실제로 ‘네모 안의 동그라미’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는 게 특징이다.


창조적 혁신을 꾀하는 신진 디자이너 세 팀
이윽고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푸릇푸릇한 젊은 기운과 역동적인 창조성이 꿈틀거리는 근사한 무대가 펼쳐진다. 창의적인 젊은 디자이너를 육성한다는 프로젝트의 취지를 반영하듯 펜디와 디자인 마이애미는 떠오르는 신진 디자이너 세 팀에 ‘디자인 버티고’를 주제로 자유롭게 스파지오 펜디를 꾸미도록 했다. 인간의 인지 기능과 상호작용을 모티브로 삼고 흥미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베타 탱크(Beta Tank), 조각, 가구, 건축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 그레이엄 허드슨(Graham Hudson), 그리고 디지털 기술과 아트의 만남을 추구하는 3인조팀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 등이다. 3개 팀은 공통적으로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출신이다.

“우리는 이번에 혼돈(chaos)를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패션, 디자인, 건축,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융합되고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전환점에서 해답은 혼돈에 있다는 생각에 ‘현기증’이라는 주제를 정한 것이죠. 물론 우리도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고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정통성은 고수하지만 기존의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는 바로 펜디의 정신과도 부합하지요.” 펜디의 CEO 마이클 버크는 이렇게 설명했다.

펜디는 실제로 프로젝트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자유를 부여했다. 참가자 중 하나인 그레이엄 허드슨은 “패션 브랜드와 일한 건 두 번째인데 주제의 테두리만 있을 뿐 상당히 자유롭고 흥미로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디자인 마이애미의 공동 설립자로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한 ‘젊은 피’ 암브라 메다는 “펜디는 단지 후원자로 머무는 걸 원하지 않았다. 디자인 영역에 직접 참여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사의 성격을 정립했다”라고 했다. 이제 스파지오 펜디를 현기증 나도록 색다르게 변모시킨 세 팀의 작품을 차례로 만나보자.

5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LED 조명을 활용한 벽 ‘앰플리튜드(Amplitude)’.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해 빛의 명암이 바뀐다. 6 RCA 동창생들로 구성된 3인조 랜덤 인터내셔널의 한네스 코흐(Hannes Koch), 스튜어트 우드(Stuart Wood), 플로 오르트크라스(Flo Ortkrass).
7.8 영국 출신의 조각가 그레이엄 허드슨이 제작한 구조물 ‘공간에서의 미비한 확장과 시간에서의 무한한 확장(AnInsignificant Extension In Space and aConsiderable Extension In Time)’. 관객들이 직접 올라가 전시장을 다른 시각에서 감상할 수도 있는 이 설치물에는 모피 코트, 가방 등 펜디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제품들이 활용됐다.

랜덤 인터내셔널 - LED 벽 펜디 전시장 문턱을 넘어 처음 마주친 작품은 랜덤 인터내셔널이 구축한,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활용한 벽이다. ‘앰플리튜드(Amplitude)’라는 제목을 단 이 작품은 특별한 프로그래밍 기술을 적용해 방문객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이 반응한다.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LED 막대 조명의 빛이 바뀌면서 마치 ‘춤추는 벽’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추후 펜디의 본사가 위치한 로마의 매장에 실제로 설치될 예정이다.

랜덤 인터내셔널은 이처럼 예술과 디자인, 첨단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창조물을 제작하는 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랜덤은 2002년 RCA에서 만난 스튜어트 우드(Stuart Wood), 플로 오르트크라스(Flo Ortkrass), 그리고 한네스 코흐(Hannes Koch) 등 동창생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런던에 미술과 디자인, 과학을 아우르는 실험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추구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랜덤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랜덤의 멤버인 한네스 코흐는 “LED 벽을 지나치는 관객들이 지각에 약간의 혼란을 겪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그 경험 자체를 직접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이처럼 디지털에 기초를 두면서도 인간적인 손길이 느껴지는 실험적인 동시에 미학적인 작품을 하는 데 기쁨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그레이엄 허드슨 -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건축물 세련된 디자인의 LED 막대 조명으로 이뤄진 벽을 지나면 영국 출신의 조각가 그레이엄 허드슨이 제작한 구조물이 나온다. 마치 공사장 인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의 미비한 확장과 시간에서의 무한한 확장(An Insignificant Extension In Space and a Considerable Extension In Time)’이라는 긴 제목의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예술적 요소를 갖춘 건축물이면서도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행사장을 방문한 관객들이 직접 올라가 전체 전시 광경을 다른 시야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장소로 기획된 것이다.

공사장을 연상시키지만 조명이 빛을 발하면 노란색과 연두색의 조화가 은근히 우아한 이 구조물에는 빈티지 모피를 걸치고 있는 여인을 연상시키는 마네킹, 구두, 가방 등 펜디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이 군데군데 배치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허드슨은 “이 작품을 위해 실제로 공사장에서 모아온 재료를 사용했는데, 우연히 장인의 손길과 세월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는 펜디의 제품을 함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라고 설명했다. 

RCA에서 조형미술로 석사 학위를 받고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레이엄 허드슨은 조각, 건축, 디자인 등의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적’인 작품 세계를 표현해왔다. 펜디 프로젝트처럼 파이프, 마분지 등 일상의 소재를 활용한 구조물은 런던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활발하게 각종 프로젝트와 전시회를 거쳐왔으며 2011년에는 미국 텍사스의 아트 하우스(Art House)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9 베타탱크의 유머와 동심이 깃든 공간 ‘베타 스페이스’. 벽과 바닥 등을 온통 장식한 블랙 앤 화이트의 현란한 무늬가 환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10실비아 벤추리니 펜디가 디자인 마이애미와의 협력 프로젝트 ‘디자인 버티고’ 를 기념하기 위해 1백 개 한정판으로 제작한 셀러리아 리넨 백.
11 베타탱크 ‘듀오’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암브라 메다,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
12 베타 스페이스에 서서 포즈를 취한 펜디의 마이클 버크 CEO(오른쪽)와 디자인 마이애미의 크레이그 로빈스 이사(왼쪽)

베타 탱크 - 동심과 유머가 깃든 환상적인 공간 스파지오 펜디의 여정이 마지막으로 선사하는 ‘베타 스페이스(Beta Space)’는 가장 튀는 시각적 효과를 뿜어내는 곳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이키델릭(psychedelic)’. 단순한 디자인의 종이 가면을 착용한 채 바닥, 벽 등이 온통 흰색과 검은색의 각종 무늬로 도배되다시피 한 탁 트인 공간을 바라보노라면 세상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환상적으로 보인다. 디자인과 과학, 퍼포먼스 아트의 경계를 허물면서 시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일종의 환각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베타 스페이스는 베타 탱크가 선보인 대표작 중 하나인 ‘아이 캔디(Eye Candy)’의 콘셉트를 공간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아이 캔디는 뇌를 자극하면 눈뿐만 아니라 혀로도 시각적인 효과를 맛볼 수 있다는 데 착안해 만들어낸 독특한 막대 사탕. 특수 전자 장치로 달콤한 사탕을 빨면 시각적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베타 스페이스도 ‘사탕 나라’를 연상케 하는 상상력과 동심을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매력을 지녔다. 미셸 가울(Michele Gauler)과 이알 버스타인(Eyal Burstein) 등 역시 RCA 출신으로 이루어진  ‘디자인 듀오’ 베타 탱크는 이처럼 신경과학을 비롯한 실험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주로 선보여왔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둬왔고 IBM에서 사용자 체험을 담당하기도 했던 미셸에게 창작 동기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사람들이 첨단 기술을 일상에서 어떻게 인지하고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게 재미있어요. 보다 쉽고 흥미롭게 접하도록 해주고 싶고요.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엔 관객들이 즐겁게 놀면서 생동감이 깃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답니다.”     
   
2010년 6월 vol.44 / 글 고성연 기자 (밀라노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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