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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한국미술 거장 ‘백남준의 눈물’

홍콩국제아트페어 유례없는 성황
中 천이페이 93억 낙찰 기염 속
백남준 대작은 겨우 4억원
전담딜러 없고 후원재단 유명무실
국가차원 입체적 관리 절실

“백남준을 살려라!”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아이콘인데 작품값이 처참(?)할 정도로 낮다. 중국 일본의 40대 작가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대로 둘 순 없다.”

지난 주말(5월27~31일) 홍콩은 미술 열기로 엄청 뜨거웠다. 가고시안, 화이트큐브, 페이스, 리슨 등 전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홍콩의 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 대표화랑들과 ‘홍콩국제아트페어(Art HK)’라는 이름으로 초대형 판을 벌이자 홍콩섬은 ‘화려한 아트열풍’에 휩싸였다. 게다가 크리스티 홍콩이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대규모 마라톤 경매를 펼치는 바람에 열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에 아트페어에 나온 인기 작품은 대부분 개막 초 솔드아웃됐고, 크리스티의 ‘아시아 근현대미술경매’도 첫날 이브닝 세일은 100% 낙찰되는 진기록을 연출했다. 이 같은 100% 낙찰은 크리스티 홍콩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어서 관계자들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인에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한국 미술품을 리드해야 할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이 낮은 추정가를 맴돌면서 가까스로 낙찰되었다는 점이다. 크리스티 홍콩의 이브닝 세일에 ‘한국 작품의 간판’으로 출품된 백남준의 ‘로켓십 투 버추얼 비너스(Rocketship to Virtual Venus)’는 높이가 5m에 육박하는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290만홍콩달러(약 4억4000만원, 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 또 백남준의 또다른 작품인 ‘watch dog’도 큰 경합 없이 추정가 범위에서 판매되는 데 그쳤다. 중국의 40대 작가인 장샤오강, 쩡판즈, 위에민준의 그림값이 점당 10억~30억원을 육박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 낮은 가격이다. 


<4억4000만원 VS 30억원>백남준의 기념비적 작품 ‘로켓십 투 버추얼 비너스’. 높이가 5m에 육박하는 대작임에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고작 4억4000만원(수수료 포함)에 낙찰돼 ‘월드스타’라는 이름값에 현저히 못 미쳤다. 같은 날 중국 작가 쩡판즈의 인물화‘( Mask시리즈’)가 30억원을 넘어선 것에 비할 때 너무 낮은 가격이다.

더구나 같은 날 중국의 작고작가 천이페이(陳逸飛ㆍ1946~2005)의 평범한 유화 ‘스트링 콰르텟(String Quartet)’은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6100만홍콩달러(약 93억원)에 낙찰돼 큰 대조를 이뤘다. 작가의 지명도라든가 작품 수준은 백남준이 월등히 높고, 유명세도 비교가 안되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중국이라는 국가가 뒷받침하고 있어 기염을 토한 것. 반면에 백남준 작품은 한국 컬렉터나 기업의 뒷받침이 없어 외국 컬렉터에게 낮은 가격에 간신히 낙찰됐다. 지난 2007년 경매에서 500만홍콩달러에 팔렸던 쩡판즈(46)의 회화 ‘마스크’는 3년 만에 다섯배 오른 1970만홍콩달러(약 30억원)에 판매됐다.

홍콩아트페어와 크리스티 홍콩 경매를 모두 참관한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강남대 경제학부 교수)은 “매년 빠짐없이 홍콩을 찾고 있는데 올해는 정말 깜짝 놀랐다. 마치 지하철 신도림역 환승장을 방불케 했다. 가는 곳마다 인파로 뒤덮여 중국 미술의 성장세를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 미술품을 리드해야 할 백남준 작품은 무관심 속에 너무 낮은 가격에 팔려나가 아쉽기 그지 없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홍콩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미술품 경매 최고가가 연달아 경신되고 있다며 “특히 홍콩은 중국을 등에 업고 아시아 아트마켓의 허브로 완전히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한국 미술이 성장하려면 백남준 작품부터 과학적인 전략하에 가격대를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술품의 가격은 곧 그 나라 국력의 바로미터기 때문이라는 것.

정준모 국민대 초빙교수도 “쩡판즈, 장샤오강, 무라카미 다카시는 작품값이 점당 수십억원을 호가하는데 세계미술사를 뒤바꾼 월드스타 백남준은 대작이 고작 3억~4억원대에 불과하다. 이는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라며 “앞으로 백남준 작품에 대해 한국의 미술관과 기업, 정부와 국민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에 진입한 만큼 백남준 작가의 작가 관리와 작품값 관리가 좀 더 입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백남준 작품이 치고 나가야 다른 작가도 제 대접을 받는다”고 밝혔다.

백남준 작품의 가격이 이처럼 낮은 것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취급하는 전담딜러(화랑)가 없고, 유족이 서로 갈등을 빚는 등 재단이 제 구실을 못하는 데다 작품의 특성상 유지보수가 힘들다는 편견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책이 있는 만큼 정부와 미술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더 늦기 전에 한국이 나은 스타를 제대로 대접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것. 특히 백남준 작품을 20여년 넘게 거래해온 화랑을 주축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헤럴드경제 2010-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