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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ET단상]디자인 R&D 시대

요즘 우리는 ‘디자인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각종 언론매체들도 디자인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1970~80년대를 ‘생산의 시대’, 1990년대를 ‘기술의 시대’라고 한다면 2000년대는 바야흐로 ‘디자인의 시대’다. 이제 연구개발(R&D) 과정에서도 디자인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일부 특수한 분야를 제외하면 디자인이 기업과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가 된 지 오래다. 국가 및 기업 간 기술 수준이 거의 평준화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기술의 첨단성이나 사용의 편리성만이 아니라 디자인의 우수성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조사 결과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더욱이 디자인산업은 부가가치가 큰 사회적 자본인데다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디자인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디자인 R&D 투자는 위축일로다. 기업들의 투자 축소로 국내 디자인산업 규모는 2006년 6조8000억원에서 2008년 5조2000억원으로 무려 23.5%나 줄었다.

그나마 대기업은 자체 디자인센터를 중심으로 글로벌 명품 디자인을 속속 내놓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여전히 디자인 R&D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투자 확대를 꺼리는 게 사실이다.

정부의 디자인 R&D 투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디자인 R&D 부문 정부 투자액은 전체 R&D 예산 13조7000억원의 0.08%인 115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초라하다. 이는 모 대기업 한 곳이 투자하는 금액의 17분의 1 수준에 머무는 액수다. 설상가상으로 이마저도 갈수록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노력으로 R&D 사업비 계상 시 디자인 개발을 위한 정보조사나 컨설팅 등에 들어간 비용이 인정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디자인 R&D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제품을 개발할 때 디자인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 디자이너가 주축이 돼 먼저 제품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결정하고 그 다음에 후속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가령 덴마크의 세계적인 명품 오디오 제조업체인 뱅앤올룹슨(B&O)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보면 언제나 디자인이 처음이다. 기술 개발이나 생산, 마케팅 등은 디자인 다음에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이런 ‘디자인 우선주의’가 고객을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민관의 투자를 늘리는 일도 필수적이다. 기술과 품질 면에서 세계적 수준인 우리 기업들이 디자인 R&D에 조금만 더 투자한다면 한국 제품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디자인을 위해 쓰는 돈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정부는 디자인 R&D 예산을 전체 정부 R&D 투자의 1% 수준(1370억원)까지 증액해 민간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술력과 가격·성능·기능 면에서 소니와 경쟁사의 제품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장에서 우리 제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유일한 요소는 디자인이다.”

이미 지난 2003년, 오가 노리오 소니 명예회장이 제품 차별화 전략으로서 디자인이 갖는 가치를 역설하면서 한 얘기다. 21세기는 디자인 R&D의 시대다. 노(老) 회장의 선견지명을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우창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산업기술평가본부장 woo@keit.re.kr

지면일자 201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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