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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아시아 팝아트의 정체를 보다

한·중·일 작가 42명 작품 전시
과천 현대미술관 ‘메이드인…’  
  
 

» 우쥔융의 영상 작업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의 현대미술 시장을 휩쓰는 최고 트렌드는 단연 팝아트다. 광고, 티브이 드라마, 영화, 상품 이미지 등을 짜깁기하거나 과장한 그림과 조형물, 영상물이 활개친다. 팝아트는 원래 앤디 워홀의 유명인사 그림처럼 서구 대량 소비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붕어빵식 작품 생산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압축성장과 정치 사회적 모순을 겪은 동아시아 작가들은 정치적 냉소나 핍진한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팝아트를 끌어쓰면서 인기를 얻게 된다. 대개 수작업과 원본성(오리지널리티)에 기대며, 제작 배경도 서구와 달라 평론가들은 아시아 팝아트를 ‘무늬만 팝아트’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특별전 ‘메이드 인 팝랜드’(Made in Popland)는 최근 시장의 괴물로 떠오른 한·중·일 3국의 팝아트의 전개 과정과 특징들을 정리해 보여준다. 기획자인 기혜경 학예사는 1990~2000년대 한·중·일 작가 42명의 팝아트 작품들을 통해 “대중매체나 자본의 속성 등 다양한 정치 경제적 맥락을 내포한 아시아 팝아트를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려 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출품작들의 면면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중국 공산당 발전의 역사를 르네상스 천장화의 형식으로 그린 류다훙 같은 중국의 정치적 팝아트 계열 작업들이 한켠에 있다면, 다른 편에는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접붙인 ‘아토마우스’ 연작의 이동기씨나 야한 일본 ‘망가’ 이미지들을 차용해 네오팝 스타로 군림해온 무라카미 다카시 등의 ‘팬시’한 캐릭터들이 있다. 돈다발을 설사처럼 배설하는 알몸 군상들을 랩송을 배경으로 부각시키는 중국의 차세대 작가 우쥔융의 영상 작업(사진)들은 뮤직비디오처럼 발랄하면서도 문명비판적인 메시지 또한 끄집어낸다. 박윤영씨의 ‘픽톤의 호수’ 같은 잔혹 이미지들도 등장한다. 기획자가 설정한 ‘대중의 영웅’ ‘스펙터클의 사회’ 등과 같은 세부 주제들의 구분 자체가 명쾌한 감상의 잣대가 되는 건 아니다. 최근 정치·경제적 격변을 거듭하는 동아시아권 작가들은 팝 이미지에서 소비의 황홀경 대신 혼란스러운 시대적 감수성과 강박증을 다기하게 드러내는 정도가 아닐까.

아시아 팝아트의 정체를 비교적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전시다. 내년 2월20일까지. (02)2188-6000.

노형석 기자
기사등록 : 2010-12-17 오전 09: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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