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환경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26> 바르셀로나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기능적이고, 단순하고, 우아하게…
도시디자인 '편안한 삶'에 초점

바르셀로나= 글ㆍ사진 남경욱기자 kwnam@hk.co.kr 

[사진]바르셀로나의 해변 바르셀로네타는 1992년 올림픽 유치 후 조성된 인공 해변이다. 시민들이 바다를 즐기기에 편하도록 넓은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한 변 113m인 정사각형 '만싸나'
600여개가 모여 도시 이뤄
그 안에 가우디 건축물 곳곳에

인공 해변 바르셀로네타엔
산책로·백사장 등 조성
외곽도로 만들어 차량도 줄여

스페인 북동부에 있는 바르셀로나는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독특한 건축물로 이름이 높다. 그러나 최근 바르셀로나가 세계적으로 도시디자인의 모범으로 새삼 주목받게 된 것은 가우디 이전에 일데폰스 세르다(1815~1876)라는 토목기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859년 세르다가 세운 바르셀로나 도시계획은 가우디의 천재성을 능가한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버스로 도시의 한가운데인 카탈루냐 광장에 도착해, 1882년 시작된 건축공사가 아직도 진행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와 카사 바요트 등 가우디의 건축물을 찾아가다 보면 사방에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반듯반듯하다.


차도와 그보다 폭이 3배는 되는 듯한 넓은 인도가 시원스럽다. 서울의 광화문광장처럼 도로 한가운데에 넓은 인도가 있고 그 양 옆에 차도, 그 바깥으로 다시 인도가 있는 거리가 많다. 건물 대부분의 높이가 6층을 넘지 않아 스카이라인이 말끔하다. 건물의 앞면은 일직선으로 맞춰져 있어 들쑥날쑥하지 않다.

'에이샴플라(Eixampleㆍ확장)'이다. 세르다의 도시계획안에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하게 정사각형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는 바로셀로나 시가지를 이렇게 부른다. 바르셀로나는 1800년대 후반 도시를 확장하면서 아래쪽의 고딕지구(대성당, 시청 등 중세 때의 건물이 몰려 있는 올드시티)와 위쪽의 그라시아 사이의 빈 공간에 도시계획을 했다.

에이샴플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디아고날(대각)이라는 이름의 대로가 직선으로 도시를 관통한다. 격자형의 넓은 도로로 구획된 만싸나(Manzanaㆍ구획)는 한 변이 113m인 정사각형 모양이다. 바르셀로나에는 이런 만싸나가 600여개가 된다. "가우디는 세르다가 마련한 공간에 몇 개의 점을 찍었을 뿐"이라는 바르셀로나 건축가들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거리에 있는 바르셀로네타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즐기는 인공 해변이다. 백사장과 나무를 깐 넓은 산책로, 자전거도로가 사람들이 다니기에 편하다. 그 옆으로 2차선 도로가 있지만 주차할 수는 없다.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온다. 한국의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횟집이 죽 늘어선 풍경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곳곳에 로이 리힌텐슈타인의 사람 얼굴 모양 조각, 프랭크 게리의 집채만한 물고기 조형물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놓여있다. 이 부근의 아파트는 요즘 북유럽 사람들에게 인기다.

[사진]토목기사 알데폰스 세르다가 계획한 바르셀로나의 '에이샴플라'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가운데 도로가 도시를 관통하는 디아고날이다. 에이샴플라는 정사각형의 '만싸나'로 구획돼 있다(아래 사진). 바르셀로나 시 제공 

1992년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전에 바르셀로네타는 어촌이었고 그 옆으로 철도가 지나고 있어 바르셀로나 중심부와는 격리된 지역이었다. 바르셀로나 시는 올림픽을 유치한 후 철로를 걷어내고 에이샴플라를 확장해 도로를 연결했으며, 어촌의 가옥들을 매입해 산책로를 만들고, 5~6km의 백사장을 조성했다.

빌라 올림픽카(올림픽선수촌)와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도시계획을 총괄했던 건축사무소 MBN 아키텍트의 대표 프란세스크 구알 씨는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제일의 경제도시이면서 휴양도시, 문화도시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면서 "이런 도시의 기능을 재배치해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도시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르셀로나 도시디자인의 특징에 대해 "기능적이고, 합리적이고, 단순하고, 우아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심사숙고해서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르셀로나의 도시디자인은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올림픽 유치 후 바르셀로나 시가 처음으로 한 일은 외곽순환도로를 완성해 외부의 차량이 시내를 통과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한 것이다. 도시 내의 차량 운행이 줄어들자 차도를 좁히고 인도를 차도의 3~4배로 넓힐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올림픽 관련시설을 모두 바르셀로나 시내에 4군데로 나눠 지어 여러 지역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했다. 황영조의 마라톤 우승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몬주익 산은 메인 스타디움과 체조장, 수영장 등과 함께 시민들이 숲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개발됐다. 바르셀로네타에 인접해 있는 올림픽선수촌은 낙후됐던 공장지대를 재개발한 곳이다. 지금은 해변에 가까운 고급 아파트촌이 됐다.

바르셀로나 시는 당시 건축디자인협회(FAD) 공모전에 당선된 건축가라면 학교를 갓 졸업한 20대부터 50대까지 누구든 올림픽과 관련한 공공디자인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바르셀로나의 도시디자인이 젊어지게 된 것이다.

[사진]바르셀로네타의 공원에 설치된 로이 리힌텐슈타인의 조각.

19세기말 모더니즘 시대에 세르다와 가우디를 낳은 바르셀로나는 한동안 빛을 발하지 못했다.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이라 프랑코 독재정권 하에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프랑코 정권이 몰락하고 카탈루냐 지역이 자치권을 회복한 1980년대 이후 서서히 바르셀로나의 도시디자인 정신이 되살아났다. '80년대 세대'로 불리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정치인들이 도시 재생에 나선 것이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구시가지 라발 지구. 오래된 낡은 건물에 북아프리카, 동유럽 등 출신 이민자들이 많아 어둡고 침침했던 이곳이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첫 번째 대상이었다. 바르셀로나 시는 이 낙후된 지역에 1990년대 중반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 바르셀로나시립미술관(CCCB), 디자인협회(FAD) 등 문화시설을 유치했고, 지금 이곳은 젊은이들로 붐비는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사람을 위하는 바르셀로나의 공공디자인 정신은 도시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건물 안은 주인 마음대로 꾸밀 수 있지만 건물 외벽에는 광고를 내걸 수도 없고 칠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건물 밖은 그것을 보는 시민들의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조명이 사람들의 눈을 괴롭히지 않도록 네온사인은 광장과 쇼핑가에만 일부 허용된다. 전철과 버스 안에는 광고가 없고, 노선도와 위급시 행동요령만 붙어있다. 동네의 풍광에 맞춰 가로등의 모양이 다양하고 나무 밑에서 불이 켜지도록 해 높이도 제각각인 점도 이채롭다.

[사진]40대 건축가 엔릭 루이스 겔리가 설계한 '미디어TIC' 건물. 외벽의 공기주머니를 태양열로 데워 냉난방을 한다. 

'사람들이 살고 일하기 좋으며, 여행 오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 바르셀로나 시의 꿈이다. 시 도시계획국장 라몬 마사게르 씨는 "100년 전 가우디가 건물을 짓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이렇게 관광상품으로 세계인의 인기를 끌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가우디의 그 이상한 건물을 이해하고 지을 수 있도록 한 바르셀로나의 열린 정신과 문화가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만든 힘"이라고 말했다.

'공공공간 30%' 계획… 실험적 건물도 많아

[사진]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의 아그바 타워. 

미래 프로젝트 '22@바르셀로나' 추진

바르셀로나의 미래 도시디자인을 미리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22@바르셀로나'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 22아로바(22@) 지역이다.

빌라 올림픽카에 인접해 있는 이 지역은 유럽에서도 일찍 산업화가 진행돼 19세기 중엽에 방직과 기계산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쳐 '카탈루냐의 맨체스터'로 불린 산업단지였다. 1950년대 이후 공장들이 낙후돼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침체됐다. 바르셀로나시는 200헥타르에 달하는 이 지역을 정보통신, 바이오 등 지식기반 산업의 중심지로 키우기로 하고 2001년부터 프로젝트에 착수해 현재 70%가량 완성된 상태다.

장차 바르셀로나의 경제 중심이 될 이 곳에서도 사람을 위하고 문화를 생각하는 도시디자인 정신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세르다의 도시계획에서는 한 개의 만싸나(구획) 안에 공원, 학교 등 공공공간을 두도록 했다. 그러나 에이샴플라 대부분에서 공공공간의 사유화가 진행돼 이런 구상은 실패했다. 그래서 22@ 지역에서는 모든 만싸나의 30%가량을 공공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의 건물에 입주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시민들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곳의 공원들에서는 엔릭 미라예스의 조각 등 바르셀로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실험적인 건물도 많이 세워지고 있다. 지금 짓는 건물들이 100년 뒤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서다.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장 누벨이 만든 아그바 타워는 미사일 탄두처럼 생겨 건축계획안이 공개됐을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미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건물 외벽에 있는 공기주머니를 태양열로 덥혀 냉난방을 하는 등 첨단 기능을 갖춘 건물도 많다. 바르셀로나는 중국 상하이와 함께 세계의 건축가들이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세우고 싶어하는 도시로 꼽힌다.

과거 벽돌로 된 공장 건물이 많았던 지역의 역사를 살려 벽돌 건물을 많이 짓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바르셀로나는 옛 산업단지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공장 건물과 창고, 굴뚝 등 114개의 관련 시설을 산업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

"오래된 기념물로 먹고 사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사진]미켈 에스피넷 바르셀로나 건축디자인협회 대표

[인터뷰] 미켈 에스피넷 바르셀로나 건축디자인협회 대표
"바르셀로나 도시 확장에 성공… 현대는 모든 것이 새로워져야"
'

"현대는 모든 것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오래된 기념물로 먹고 사는 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미켈 에스피넷 바르셀로나 건축디자인협회(FAD) 대표는 바르셀로나가 도시디자인의 모범 도시가 된 이유로 우선 세르다에 의해 잘 구축된 도시계획과 카탈루냐 주와 바르셀로나 시 정부의 막대한 투자를 꼽았다.

FAD는 유럽에 디자인이란 개념이 등장했을 무렵인 103년 전, 1907년에 결성됐다. 현재 건축가, 디자이너 등 2,500여 명의 회원이 있다. 시나 주 정부의 건축ㆍ공공디자인에 자문을 해주고 여러 가지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같이 한다.

"지난 20년간 바르셀로나가 도시 디자인에 투자한 규모를 보면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질 좋은 삶을 제공할 수 있는가, 도시 안의 시스템이 현대적이고 편리하고 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이어 100년도 더 전에 세르다의 제안을 수용할 정도로 도시계획 마인드가 있었고, 도시의 규모가 도쿄나 로스앤젤레스처럼 크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바르셀로나는 산과 바다로 막혀 있어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서울의 10분의 1 정도라고 보면 될 겁니다. 그러니 질적으로 좋은 도시를 만들기에 좋습니다."

유럽의 유명 도시들은 대개 성당, 행정기관 등이 있는 올드시티는 아름답지만 도시를 확장하면서 망가졌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도시 확장에 성공했다. "어떤 도시든 옛날 것이 좋지만 바르셀로나는 옛날 것보다 19세기, 20세기에 만든 것이 더 좋습니다. 사람들이 고딕지구보다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을 더 많이 찾습니다."

그는 또 바르셀로나가 역사적인 도시이면서 바다를 향해 열려 있고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도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30년 전만 해도 도시에 차도가 엉켜 지나는 것을 현대적이라고 생각했고, 바르셀로나도 그런 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도시입니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12/01 22:2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