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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럭셔리 브랜드 이야기 2. 루이뷔통

트렁크로 건설한 ‘럭셔리 제국’ … 100여 년 전에도 짝퉁 판쳤죠
 

루이뷔통은 우리나라에선 ‘3초백’ ‘지영이백’이란 별명으로 불립니다. 거리에서 그만큼 흔하게 볼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 브랜드는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그룹’을 지탱하는 세계 최고·최대의 럭셔리 브랜드입니다. 루이뷔통은 가방뿐 아니라 의류·구두·주얼리 등 패션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루이뷔통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진주 기자

루이뷔통은 여행용 트렁크에서 출발했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 럭셔리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몇 년째 1위를 고수하는 명품 브랜드다. 1987년 모에 헤네시 그룹과 합병해 크리스찬 디올과 지방시·셀린느까지 거느린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그룹으로 거듭났다. 세계 300여 곳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엔 1991년 호텔신라 서울에 첫 부티크를 연 뒤, 지난 3월 리뉴얼해 오픈한 강남 신세계백화점 매장까지 모두 21개의 로컬 부티크가 있다. 최근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가 인천공항에 세계 최초의 공항 면세점을 유치하기 위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을 만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 왕족과 백만장자들이 반한 ‘여행 가방’ 
 

루이뷔통 브랜드의 DNA는 ‘여행’이다. 1854년 자신만의 브랜드를 세운 창시자 루이 뷔통(사진)은 원래 트렁크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1921년 스위스 근처 프랑세 콩테에서 가구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로부터 나무 다루는 법과 대패 쓰는 법을 배웠다. 루이 뷔통은 14세 때 집을 떠나 400㎞를 걸어 파리로 ‘상경’했다. 상자를 만드는 장인의 견습생이 돼 하루 13시간씩 일했다. 1837년 ‘파리 생제르맹 선’이 개통됐다. 역마차 시대는 끝나고 철도가 세상의 속도와 흐름을 뒤바꿔놨다. 자동차의 시절이 뒤를 이었고, 여행과 이동에 대한 욕망이 ‘폭발’했다.

여행용 가방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치솟았다. 루이 뷔통은 “모든 이동의 본질은 상상력”이란 데 생각이 미쳤다. 플레잉카드 세트나 젖병 케이스, 애완견 캐리어부터 조립식 마차 부품함, 이동식 책상과 여행용 침대, 열기구 불시착용 탈출장비까지 여행에 관련된 모든 것을 만들었다. 주문자의 취향과 니즈를 반영한 ‘스페셜 오더 서비스’였다. 나폴레옹 3세의 왕비 ‘몬티조의 유제니’가 여행 짐 싸는 일을 그에게 위임했다. 당시 왕족은 최고의 패셔니 스타였고, 그들을 둘러싼 모든 일이 대중의 유행이 됐다. 가죽 대신 방수 가공 캔버스를 사용한 루이 뷔통의 트렁크는 여행의 시대에 꼭 필요한 소품으로 자리 잡았다. 1867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수상하면서 브랜드의 명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루이 뷔통의 고객 명단에는 황금시대의 미국 백만장자들과 터키의 술탄 압둘 하미드, 중동의 석유왕 걸벤키엔, 할리우드의 왕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인도 왕의 이름이 있었다. 이 같은 명성은 21세기까지 이어졌다.

마크 제이콥스, 150년 전통에 활기를 불어넣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과 파리 혁명정부의 격변으로 루이 뷔통 브랜드에 1차 위기가 왔다. 파산 직전까지 몰리자 루이 뷔통은 파리 도심을 떠나 아니에르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훗날 전설적인 모노그램 패턴을 개발한 아들 조르주는 16세 때 살림집 한쪽의 공방에서 견습 과정을 시작해 브랜드를 되살렸다. 현재 5대손인 파트리크 루이 뷔통은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과 스페셜 오더 서비스 부문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1987년 루이뷔통은 LVMH 그룹으로 거듭났다. 꼭 10년 뒤인 1997년에는 뉴욕 패션계의 앙팡테리블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했다. 의류·구두·액세서리·보석 등 패션 부문으로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1963년생인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뷔통의 150년 전통에 경쾌하고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최고 성적으로 졸업하고 ‘올해의 학생’으로 호명된 인물이다. 재기발랄하고 천재적인 디자인으로 이름을 날리며, 미국 패션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선정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세 번이나 선정됐다. 21세 때는 로버트 더피와 ‘제이콥-더피 디자인 회사’를 창립하고, 1986년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컬렉션을 발표했다. 로버트 더피와 함께 루이뷔통에 합류하던 1997년에는 마크 제이콥스의 첫 번째 매장도 뉴욕에 문을 열었다. 다음해 2월엔 파리 샹젤리제와 런던 뉴 본드가에 루이뷔통의 첫 ‘글로벌 매장’ 두 곳을 열었다. 2000년 1월엔 남성복 컬렉션을 발표하며 향수와 화장품을 제외한 패션의 모든 부문을 접수했다.

‘모노그램’과 아이콘들

1 무라카미 다카시의 메가히트작 ‘체리 모노그램’(2004년). 예술과 산업의 훌륭한 협업 사례로 경영학 교과서에도 실렸다. 커다랗고 부드러운 여행용 가방 ‘키폴백’은 루이뷔통의 첫 번째 대중 베스트셀러다. 2 루이뷔통 하이주얼리. 모노그램 모티프와 브랜드 컬러인 갈색을 형상화했다. 3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그래피티 모노그램’(2001년). ‘스피디백’은 우리나라에서 ‘3초백’으로 알려진 디자인이다. 4 패리스 힐턴이 들어 유명해진 ‘네버풀백’(2007년). 이름처럼 모든 걸 쓸어담아도 절대 가득 차지 않는 큰 사이즈가 인기 요인. 5 루이뷔통의 ‘여행 DNA’를 보여주는 시티가이드 뉴욕편.
 
①모노그램 루이뷔통 최고의 히트 상품은 브랜드 로고인 모노그램 그 자체다. 당대에 벌써 자신들의 트렁크를 모방한 모조품이 판치자 아들 조르주는 카피할 수 없는 브랜드의 고유한 정체성을 창조하는 데 골몰했다. 1888년 베이지색과 갈색의 바둑판 무늬로 이뤄진 ‘다미에’에 이어, 1896년 지금의 ‘모노그램’ 패턴을 만들어냈다. 모노그램에는 네 개의 꽃잎을 가진 꽃과 네 개의 모퉁이를 가진 별이 그려진다. 이들은 각각 원과 마름모 꼴 속에 담겨 있다. 아버지 루이 뷔통의 이니셜인 L과 V가 번갈아 새겨졌다.

1996년에는 모노그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헬무트 랭, 아이작 미즈라히,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마놀로 블라닉 등의 유명 디자이너 7명이 모노그램을 재해석한 한정판 핸드백을 제작했다. 이후 아티스트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모노그램 그래피티’(2001년), 무라카미 다카시가 93가지 색을 넣어 만든 ‘멀티컬러 모노그램’(2003년), 웃는 얼굴의 벚꽃과 체리가 그려진 ‘체리 블로섬 모노그램’(2003년)과 ‘체리 모노그램’(2004년) 등이 발표돼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사진]핫 트렌드인 밀리터리 요소에 유머를 가미한 올해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 장면. ‘아프로 헤어(흑인들의 곱슬거리는 둥근 머리형)’와 여우꼬리 장식이 큰 화제가 됐다.
 
②키폴(Keepall)·스피디(Speedy)·네버풀(Neverfull) 3종 세트 1901년 하드 트렁크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재질로 만든 ‘스티머 백’(빨랫감 따위를 넣는 납작한 가방)이 만들어진 이후 소프트 백이 대중화됐다. 1924년 선보인 키폴은 ‘모든 것이 들어간다’는 이름 그대로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다. 옆으로 길쭉한 반원통형에 손잡이가 달렸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발한 이름으로 루이뷔통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1930년대엔 키폴을 핸드백 사이즈로 만든 스피디가 출시됐다. 어떤 옷에도 어울리는 적당한 사이즈의 가방이라 스피디한 여행과 실용적인 여성들에게 적합하다는 뜻이다. ‘지영이백’ ‘3초백’이 바로 이것이다.

‘절대로 가득 차지 않는다’는 의미의 네버풀은 2007년 패리스 힐턴이 들어 유명해졌다. 커다란 역사다리 꼴로 소지품이 많은 현대 여성에게 적합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루이뷔통은 2008년부터 양대 시그니처 백인 키폴과 스피디 구입 고객에게 영문 이니셜과 컬러 줄무늬 등을 새겨주는 ‘몽 모노그램’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달부터 네버풀 고객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했다.

이 밖에도 1930년대 코코 샤넬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반달 모양 알마(Alma), 복조리 모양 노에(Noe, 1932년), 원통형 빠삐용(Papillion, 1966년), 쇼퍼백을 연상시키는 정사각형 서류가방 삭 플라(Sac Plat, 1968년), 변형된 부채 모양의 엘립스(Elipse, 1997년) 등이 가방 명가의 카테고리를 채우고 있다.

③‘LV컷’ 하이주얼리 2002년 스위스 공방에서 만드는 ‘땅부르’ 시계에 이어, 2005년 하이주얼리 시장에도 진출했다. ‘LV컷’이라고 불리는 꽃과 별 모양의 다이아몬드 주얼리가 대표상품이다. 당시 루이뷔통은 3초백과 같은 엔트리 아이템(처음으로 구입하는 진입단계의 명품) 덕분에 대중들에게 익숙해지는 대신, 진짜 럭셔리 구매계층인 상위 1%로부터는 멀어지고 있었다. 루이뷔통은 패션의 정점이자 완성인 하이주얼리 라인을 론칭함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보호했고, 확고부동한 명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④시티 가이드 & 트래블 스크랩북 루이뷔통의 여행 DNA를 표현하는 또 한 가지 상징물로 파리·런던·도쿄 등 세계 주요 30여 개 도시에 대한 ‘시티 가이드’를 들 수 있다. 1998년부터 펴낸 이 책자에는 고급 부티크 호텔과 레스토랑, 앤티크 가구숍, 벼룩시장 등의 정보가 빼곡하다. 서울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트래블 스크랩북’이라는 기념책자도 있는데, 2002년 중국 진출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아티스트 순 추안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루이뷔통을 빛낸 아티스트와 뮤즈

[사진]루이뷔통을 혁신한 천재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와 일본 출신 현대작가 무라카미 다카시. 배경에 다카시가 만든 ‘멀티컬러 모노그램’(2003년) 가방들이 보인다.
 
루이뷔통은 재능 있는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후원한다. 쇼윈도 디스플레이도 이에 활용됐다. 감독이자 무대 디자이너인 로버트 윌슨이 담당한 2002년 크리스마스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이다. 채도가 높은 형광 오렌지, 핑크, 그린 컬러에 반짝거리는 코팅을 덧입힌 ‘베르니 모노그램’은 브랜드의 늙은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함께 만든 베르니 백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후 마크 제이콥스는 일본 출신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라카미의 대표적인 모티프인 ‘날아다니는 눈동자’를 넣어 만든 ‘아이 러브 모노그램’ 이벤트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무라카미에게 세계 300여 개 매장 윈도 디스플레이 작업을 맡겼다.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마주해 아이 러브 모노그램과 체리 블로섬, 멀티컬러 모노그램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얘기를 담은 5분짜리 홍보용 애니메이션 ‘수퍼 플랫 모노그램’은 쇼윈도 디스플레이로도 활용됐다.


루이 뷔통의 여성 뮤즈는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다. ‘대부’의 명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이며 그 자신이 패셔니 스타인 그는 지난해 ‘소피아 코폴라 포 루이뷔통 컬렉션’을 론칭해 백과 클러치, 슈즈(웨지힐 샌들)를 내놨다. 여행을 주제로 한 ‘코어 밸류 캠페인’에 아버지와 함께 모델로 서기도 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명사들의 리스트도 화려하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 테니스 스타 슈테판 그라피와 앤드리 애거시 부부, 아폴로 13호 사령관 짐 러벨 등이다. 아프리카부터 달나라까지 여행을 주제로 해, 유명 사진작가 애니 라보비츠가 직접 촬영해 화제가 됐다.

이진주 기자 [meganews@joongang.co.kr]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92> 럭셔리 브랜드 이야기 루이뷔통
[중앙일보] 입력 2010.09.08 00:16 / 수정 2010.09.08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