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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영상

[Style]저녁 7시가 되면 서울 관문에 ‘LED 마법’… 건물도 살아 움직인다

서울역 건너편 서울스퀘어서 ‘미디어 아트’ 색다른 실험

[사진]23층 빌딩이 초대형 캔버스로 서 울스퀘어 디지털 파사드는 이 시대의 ‘피라미드’이다.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공공 예술이기도 하다. 서울역사 롯데마트에서 바라본 디지털 파사드에 줄리안 오피의 ‘군중’이 상영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수도 서울의 관문 서울역. 역사(驛舍) 밖으로 나오면 건너편 서울스퀘어 건물(옛 대우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일 오후 6시 59분이면 이 건물 앞면이 서서히 환해진다. 지상 23층 건물 전체가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이 발광되며 숫자들이 나와 춤을 춘다. 숫자와 시계의 형상들이 돌고 돌면서 카운트다운되더니 7시 정각을 알린다.

그리고 여섯 명의 거대한 사람이 나타난다. 눈 코 입과 목이 없는 이 사람들은 서류 가방과 넥타이를 맨 채 걸어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10분 동안 계속 왼쪽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걷는다.

도대체 이들은 왜 걷는 것일까.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거대한 그림을 바라보다 건물 아래를 바라보니 이번에는 조그마한 그러나 ‘진짜’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서 걷고 있다.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쪽 방향만 바라보며. 쭈∼욱.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인 ‘미디어 캔버스’에 펼쳐진 줄리안 오피의 ‘군중(crowd)’이라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다. 파사드는 건축물의 정면부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미디어 파사드는 주로 건물 전면에 발광다이오드(LED)로 설치한 대형 전광판을 뜻한다.

○ 무한대 색의 전구가 만드는 예술 
 

[사진]‘살찐 모나리자’ 이이남의 ‘비만 모나리자’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전 명화 ‘모나리자’가 천천히 옆으로 늘어났다가 줄어든다. 이이남은 고전 명화를 변용한 디지털 아트를 다수 선보이고 있는 작가이다. 사진 제공 가나아트갤러리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바꾸어주는 LED는 1962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현재는 적, 녹, 청색의 밝기를 10비트로 조합해 10억7374만1824가지 색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눈이 구별할 수 있는 색상 수를 훨씬 뛰어넘는 ‘풀 컬러’를 만들어내는 것.

LED를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는 2000년대 들어 세계 주요 도시에서 유행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의 옥상공원인 ‘밀레니엄 파크’는 벽돌 형태의 LED 집적판을 쌓아 올려 얼굴 형태를 만들고 입에서는 물줄기가 쏟아지는 미디어 분수를 설치해 유명해졌다. 일본 도쿄 한복판 긴자에 들어선 ‘샤넬타워’는 화려하며 독특하고 창조적인 LED 파사드로 알려지면서 브랜드 홍보를 톡톡히 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O2 아레나’,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린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세계의 주목을 끈 ‘냐오차오(鳥巢)’도 미디어 파사드의 대표적인 예이다.

국내에서는 2004년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 도입된 것이 효시로 꼽힌다. 금호아시아나메인타워, 신세계백화점, 삼성그룹 본관, 하나은행 본점, LG CNS 상암IT센터와 LG텔레콤 사옥 등도 디지털 파사드를 도입했다.

지난해 11월 오픈한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는 규모가 압도적이다. 약 30억 원이 들어간 이 시설은 전면부에 4만2000개의 LED 전구가 쓰였으며 가로 99m, 세로 78m로 단일 미디어 파사드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가나아트갤러리가 처음부터 단순한 패턴이나 장식이 아니라 미디어아트를 위한 ‘미디어 캔버스’로 기획 시공했다. 지난 1년간 이 곳에서는 크리스마스 기념 작품, 신년 기획 작품, 2010 남아공 월드컵 응원전, 한글날 기획전 등의 미디어 아트가 선보였다.

○ 실험은 계속된다…건물과 대화하고 게임까지

[사진]아이폰 앱을 활용한 ‘게임 아트’인 ‘트윗 스퀘어’. 사진 제공 가나아트갤러리

디지털 미디어 아트 실험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그라피티 리서치 랩’의 작품 ‘레이저 태그’는 서울스퀘어처럼 대형 빌딩을 캔버스 삼아 레이저 빔으로 그림을 그린다. 도시 곳곳에 스프레이로 뿌린 낙서인 ‘그라피티’를 디지털 미디어로 재현한 것이다. 아주 강한 초록색 레이저 빔을 건물에 쏘면 그 흔적을 따라 프로젝터가 빛을 투영하여 마치 빛으로 낙서를 한 것처럼 만들어 준다.

가나아트가 11∼12월 서울스퀘어에서 진행하는 ‘미디어 파사드 워크숍’도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 게임 등을 활용해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시도한다. 정지해 있던 무채색 건물이 이제 예술과 시민과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12월 중 선보일 이준 교수 팀이 이끄는 ‘빅 스크린, 빅 게임’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게임이 될 듯하다. 서울역 입구에 단말기를 설치해 일반 시민이 직접 게임을 하고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가 이 게임을 중계한다.

게임 내용은 단순하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초기 아케이드 게임 ‘퐁(Pong)’을 변형한 ‘퐁(Fong)’ 게임에는 물고기(fish)가 등장한다.

실제 물고기가 들어 있는 어항을 가져다 놓고 이를 카메라로 인식해 게임에 적용된다. 무작위로 움직이는 물고기는 공의 방향을 바꾸며 게임을 방해한다. 컴퓨터로 만드는 유사 무작위(pseudo random)가 아니라 진짜 무작위이다. 이 교수는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지 모르는 물고기는 우리 뜻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제약, 불안요소, 사회 부조리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LED 파사드는 피라미드 같은 대형 아이콘”▼

■ 이준 대구가톨릭大 교수 인터뷰 

공간예술인 미술과 시간예술인 음악은 오랫동안 따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현대 컴퓨터 기술은 분리됐던 이 두 예술을 연결시켰다. ‘디지털 미디어 아트’는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각 청각 등 ‘멀티미디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이준 대구가톨릭대 디지털디자인과 교수(38·사진)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독특한 이력을 밟아왔다. 서울대 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 교수는 음악에 대한 열정도 버리지 못했다. “미술에 음악을 접목시키고 싶어서 음대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어요. 마침 당시 1990년대 중반은 이제 막 컴퓨터 음악이 국내 대학 커리큘럼에 들어오던 때였지요. 그런데 결국은 음악과 미술을 연결해주는 기술을 이해해야겠더라고요.”

컴퓨터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대 공대 컴퓨터공학과 편입을 준비했다. “아마도 제가 서울대 미대 역사상 공대로 편입한 첫 사례일 겁니다. 모두가 말렸지만 저는 정말 기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었어요.”

어렵게 공대를 졸업한 그는 이번에는 음악 유학을 떠났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음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소리를 어떻게 인지하고 표현하는지, 소리를 디지털 기술로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배웠어요. 신시사이저를 직접 디자인하고 새로운 악기도 개발했지요.”

이 교수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KAIST에서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았다. 박사 논문 주제는 ‘칵테일 제조기법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

“칵테일 바에는 맛, 시각, 사운드, 대화, 여자 등 다양한 것들이 있죠. 병은 ‘미디어’를 상징하고요. 병 안에 어떤 거든지 담을 수 있으니까요.”

이 교수는 이번 서울스퀘어 미디어 파사드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활용한 새로운 실험을 선보일 계획이다. “대형 LED 파사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대형 ‘아이콘’이에요. 정보를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참여하도록 해 새로운 경험을 줄 것입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동아일보 | 2010-12-03 03:00  2010-12-03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