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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법 위에 디자인 … 장애인 울리는 볼라드

밝은색 칠해야 하는 규정 무시하고
도시 미관 좋다고 잿빛 색상 칠해
시각장애인 감지 못해 자주 다쳐
충격 흡수 잘 안되는 불량품 많아
 

4급 시각장애인 신상균(48·경기도 안산시)씨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안마를 배우기 위해 서울을 갈 때마다 긴장한다. 잿빛 볼라드(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사진) 때문이다. 신씨는 “1~2m 이내의 사물은 구분할 수 있지만 어두운 색깔의 볼라드는 잘 안 보여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부딪히기 일쑤다”고 말했다. 볼라드 끝에 얇은 형광 띠가 부착되어 있으나 가로등·차량 등의 불빛과 섞여 밤이면 구분하기 힘들다.

30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 르네상스거리’. 지하철 7호선 이수역 14번 출구에서부터 경문고 입구까지 5m 너비의 보도 가운데에 50여 개의 볼라드가 줄지어 서 있다. 동작구가 3월 르네상스거리를 조성하면서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에게 이 거리는 ‘허들 경기장’으로 불린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승철 연구원은 “앞이 약간 보이는, 장애 등급이 낮은 시각장애인에게도 잿빛 볼라드는 큰 장애물”이라며 “볼라드를 없애는 것이 힘들다면 전체를 밝은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도입하는 볼라드가 오히려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위협하고 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는 눈에 잘 띄도록 밝은 색을 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2008년 만든 ‘디자인서울 가이드라인’은 볼라드 본체의 색상을 무채색(회색 계열)으로 칠하도록 규정해 탈법을 부추기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의 볼라드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밝은 색을 칠하도록 한 법 규정을 의식해 머리 부분에 2㎝ 너비의 반사 띠를 두르도록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유승주(43·서울 역촌동)씨는 “1m 높이의 볼라드에 설치한 2㎝ 형광 띠는 위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기준에 맞지 않는 볼라드도 많다. 볼라드는 높이 0.8~1m, 폭 10~20㎝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질이어야 하며 1.5m 간격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가 조사한 결과 3만7000여 개의 볼라드 중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 2만5722개(69%)에 달했다. 시각장애인에게 볼라드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볼라드 30㎝ 앞에 점형 블록을 설치해야 하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마국준 서울시 교통운영과장은 “문제 있는 볼라드를 정비하라는 지침을 구청에 내렸으며, 볼라드의 색을 바꾸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0.12.01 01:25 / 수정 2010.12.01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