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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디자인 입은 한글 대중 속으로

2006년 파리전시회서 주목…진부함 벗고 세련되게 변형
시계·명함 등 일상 파고들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글’이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언어적 우수성뿐 아니라 문자 자체의 아름다움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 ‘한글’ 하면 떠오르는 ‘올드’한 느낌에서 벗어나 글자체를 세련되게 변형시키거나 재미있는 문구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중에게 한층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2006년 한글을         ◇한국패션문화페스티벌에서 패션 디자이너  
            프린트한 다양한 의상을 선보여 세계인의         박동준은 김호득 화백의 ‘문자’ 연작을 의상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접목해 눈길을 끌었다.

# 한글을 입다

한글이 문양의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패션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글자를 프린트한 것에 불과했다. 행사 등이 있을 때 티셔츠·모자 등에 글자를 박아 넣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한글을 문양으로 이용해 패션을 선보이면서 인식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2006년 한국·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열린 ‘한글 패션 프로젝트’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한글을 프린트한 다양한 의상을 선보였다. 흰옷에 붓으로 흘려넣은 듯한 한글의 선들은 세계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으면서 아름다움을 해외에서 인정받았다. 김연아 선수는 이씨가 만든 한글 티셔츠를 입고 공연했으며, 이명박 대통령도 그가 디자인한 한글 스카프를 착용한 바 있다.

메시지가 우선이었던 한글 티셔츠도 변하고 있다. 한글 티셔츠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반8’의 티셔츠를 보면 ‘젊은이’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미친 존재감’ ‘수컷’ ‘암컷’ ‘상무’ ‘선생님’ 등 새겨진 문구의 내용이 기발하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즐겁게 ‘외국인’ 등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한국패션문화페스티벌에서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반영한 의상들을 볼 수 있었다. 디자이너 이도이는 캘리그래퍼 강병인이 그려낸 우리말 ‘꽃, 봄, 꿈, 춤, 숲, 별’을 이용한 옷을 만들었다. 또 디자이너 박동준은 김호득 화백의 ‘문자’ 연작을 의상에 접목해 관심을 끌었다. 검정과 회색, 흰색 등 무채색을 기본 색상으로 해 롱 베스트, 롱 드레스, 롱 재킷에 한글의 자음을 담았다.

가방 등 패션 액세서리 부문에서는 디자이너 이건만씨가 한글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씨가 디자인한 가방, 지갑 등에는 문장이나 단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ㅎ’ ‘ㅁ’ ‘ㅇ’ 등 자음을 적절히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만든 스카프, 지갑 등은 뛰어난 창의성과 조형미를 인정받고 있다.

이밖에 ‘아트앤크래프트’ 디자이너 정영숙씨나 한복디자이너 박술녀씨, 뮈샤 주얼리 디자이너 김정주씨 등도 훈민정음을 프린트한 넥타이, 한복치마, 목걸이·반지 등을 만드는 등 한글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캘리그래피 업체 ‘필묵’의        ◇폰트디자인 회사 ‘산돌티움’의  ◇한글의 자음을 하나의
            붓글씨를 이용해 디자인한          글씨로 꾸민 명함집.                  문양으로 활용해 디자인한
           시계.                                                                                    이건만의 여성 핸드백.

# 일상에서 한글을 사용하다

한글은 패션계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온·오프라인에서도 한글을 디자인에 활용한 상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제 초콜릿, 명함집, 시계 등 1000여개에 달하는 상품들이 한글디자인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이들 제품의 특징은 한글 모양을 변형한 캘리그래피(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를 활용했다는 것. 폰트디자인회사 ‘산돌티움’은 한글 디자인 업체 중 주목받는 곳이다. 2008년 설립된 산돌티움은 유명한 글자체인 ‘산돌체’ ‘광수체’ 등을 개발했다. 시계, 명함집, 열쇠고리 말고도 USB, 도장, 파우더케이스, 거울, 부채 등 디자인이 필요한 모든 제품에 한글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캘리그래피 회사 ‘필묵’도 자체 개발한 손글씨로 한글의 멋을 전하고 있다. 메모장이나 시계, 컵받침, 컵, 그릇은 물론이고 냉장고, 종이쇼핑백 등에도 손글씨를 이용한 디자인 상품이 있다.

          ◇한글 모양으로 디자인한 USB.                   ◇행남자기가 최근 선보인 한글 디자인 컵 세트.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행남자기는 한글 손글씨 제품을 내놓았다. 한글자모와 한글서체, 수묵 느낌의 한국적 이미지를 머그세트, 뚝배기, 반상기 세트, 어린이 식기 등에 담아냈다. 행남자기는 한글 디자인 상품 판매수익금의 일부를 한글을 사용하는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 한글학교에 전달할 예정이다.

정부도 매년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함께 ‘한글문화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한다. 올해 공모전에도 한글을 입체화한 가방, ‘복’ 머플러, 한글모양 경첩, 한글 옷걸이, 한글모양 티백, 우비용품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 제품이 출품됐다. 당선작은 8∼21일 광화문 세종이야기 지하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세계일보>입력 2010.10.07 (목) 21:57, 수정 2010.10.08 (금)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