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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Trend]‘그릇 테두리에 손잡이’ 코렐 새 디자인, 사교 모임에 딱이네!

■ ‘컨투어’ 시리즈 디자인 하타자 씨 e메일 인터뷰
“원재료인 유리 속 불의 감촉 사람들이 손으로 느끼게 표현… 요즘 트렌드는 ‘녹색지향’이죠”

‘컨투어’ 시리즈를 디자인한 주방용품 디자이너 리사 하타자 씨. 사진 제공 월드키친

정호승 시인은 개가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밥그릇’이라는 시를 썼다. ‘…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맛있게 먹어보았나/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그릇에도 맛이 있다/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밥 한 그릇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잊고 살아오진 않았을까. 매일 매일 밥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그릇들. 컵, 젓가락, 접시, 숟가락, 포크, 칼 같은 주방용품들은 매우 개인적이며 친밀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보고 듣고 만지며 입속에 넣는다. 주방용품은 우리 일상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여기에 디자인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다 비슷하고 그게 그거인 것 같지만, 그릇에도 유행이 있고 기술이 깃들어 있다.

요즘 한국 시장에서 그릇 트렌드는 심플한 디자인과 패턴이다. 커다란 무늬와 금박을 입힌 화려한 그릇보다는 라인이 절제되고 단순하면서 모던한 디자인의 그릇을 선호하는 추세다. 한국 소비자들은 편안한 느낌의 그릇을 좋아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달 초 세계적인 주방용품업체 월드키친의 디너웨어 브랜드 ‘코렐’은 기존의 코렐 그릇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의 ‘컨투어’ 시리즈를 선보였다.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발레리나의 몸짓을 그릇으로 표현한 컨투어는 그릇 테두리에 손잡이가 있는 독특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디자이너 리사 하타자 씨가 ‘신세대 코렐’이라고 칭한 신제품 ‘컨투어’. 새롭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 접시 테두리 곡선을 따라 손잡이를 만들어 서빙하기에 편리하게 했다. 사진 제공 월드키친
 
지금까지 코렐은 매끈한 외관을 기본으로 다양한 무늬를 통해 변화를 줘왔지만, 그릇 자체의 디자인을 이처럼 파격적으로 바꾼 것은 처음이다. ‘월드키친’의 김지영 차장은 “그릇을 들고 먹는 경우가 많은 서구 문화를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제품”이라면서 “한국에서도 파티나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어 변화하는 생활 패턴에 발맞춰 가려 한다”고 말했다.

컨투어 시리즈를 만든 이는 핀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주방용품 디자이너 리사 하타자 씨다. 그는 독일 주방용품 브랜드 WMF, 일본의 조지루시마호빙 등에서 디자인을 맡았으며 레드닷, 굿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그를 지난달 말 e메일로 만났다.

그는 “월드키친의 안나 에이드 디자인 담당 이사로부터 새롭고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컨투어는 손님 접대를 좋아하고 이동을 즐기며 사교적이고 친근하고 개성이 넘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3중 압축유리 재질인 코렐은 고열로 녹인 유리를 금속 몰드로 찍어 만든다. 마음대로 성형할 수 있는 도자기 그릇과 달리 코렐이 다양한 그릇 모양을 수시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하타자 씨는 “용암처럼 흘러가는 붉고 뜨거운 유리에서 불의 힘을 느꼈다”면서 “이 느낌을 사람이 손에 잡을 수 있는 접시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타자 씨는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과연 새 식기, 부엌 칼, 차 주전자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벌써 세상에는 필요한 것들이 충분히 있는데.’

“뉴욕의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수백 개의 그릇을 둘러본 뒤 생각합니다. ‘그냥 또 하나의 그릇’을 디자인할 거라면 그 프로젝트를 할 이유가 없다고 다짐하죠. 화폐, 맥주병, 우표, 방사선 촬영기 등 우리 주변에는 많은 디자인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디자인이라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디자인은 시각적 구성, 실용성, 삶을 더 편하게 하는 것, 보기에도 좋고 즐거운 것을 만드는 일이지요.”

하타자 씨의 디자인 철학은 ‘항상 다르게 보고 듣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는 부엌용 칼을 디자인하기 위해 여러 부엌용 칼의 외형과 느낌, 스타일에 대해 여성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그 여성들이 칼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중요한 요소를 감지해냈다. 그들이 사실 큰 칼을 들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그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성을 위한 대형 칼’을 디자인했고 이 칼은 엄청난 양의 판매를 기록했다. 남성 소비자들 역시 이 칼을 선호했다. 그는 이 사례에는 ‘새로운 사고를 하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보고 들어라’, ‘진정한 해답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라’는 교훈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주방용품 디자인 트렌드로 ‘녹색 지향(going green)’이 우세한 추세라고 전했다. 이런 트렌드를 제품 디자인에 적용시킬 뿐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데 건강한 소재를 선택하는 것,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것, 책임감 있는 생산 공정 등에 디자이너들이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동아일보 | 2010-10-08 03:00  2010-10-08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