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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10~20대 新 놀이문화 ‘다꾸’를 아십니까?

네이버 ‘다이어리 꾸미기’ 카페만 800여개… 회원수 수십만 명 되는 곳도

▲ ‘쥬떼의 블로그 holic’(blog.naver.com/nainoi)을 운영하는 박다흰씨의 다이어리. /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어떻게 해야 이런 글씨체로 쓸 수 있나요? 마테(마스킹테이프)랑 손글씨 빈티지 느낌 너무 예뻐요! 그런데 저 형광펜은 어디꺼인가요? 형광펜 후기 부탁드립니다. 나두 다꾸 잘하구 싶은데 ㅠ.ㅠ’.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다이어리 꾸미기★’ 카페에서는 이와 비슷한 댓글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온다. ‘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인 ‘다꾸’가 10~20대 사이에서 새로운 ‘놀이’로 각광받고 있다. 첨단기기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들이 가장 아날로그적인 종이 다이어리 꾸미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 ‘다꾸인’은 테이프나 스티커를 오려 붙이고 형형색색 펜들로 다이어리를 메워나간다. 그리고 남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있는 다이어리를 뽐내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다. 이들에게 다꾸는 유희이자 예술이다. 
   
다꾸 커뮤니티의 선구자는 ‘★다이어리 꾸미기★’ 카페(cafe.naver.com/deco-diary). 9월 8일 현재 회원 수는 35만6254명이다. 요즘에도 일주일에 카페 회원이 1000명씩 늘어난다. 네이버에만 다꾸에 관한 카페가 800개가 넘는다. 다꾸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파워 블로거들도 적지 않다. 
   
다꾸 카페에서는 다꾸에 유용한 정보들이 가장 사랑받는다. 일본에서 막 공수해온 스티커나 특이한 펜을 가진 다꾸인이 올리는 사용 리뷰가 대표적이다. 외국에 나갔다 돌아올 때 희귀한 다꾸 용품을 대량 구입해 벼룩시장에 매물로 내놓는 다꾸인들도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다꾸 용품에 대해 다꾸인들끼리 주고받는 정보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놀랄 만큼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예컨대 0.28㎜짜리 펜촉이 0.3㎜ 펜촉과 얼마나 다른지도 토론 대상이 된다. 디자인 테이프의 끈적임까지 정리해서 정보로 올리는 다꾸인도 있다. 네이버 닉네임 ‘플를넛님’의 펜 리뷰는 웬만한 제품 전문가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다. “시스노 0.5펜은 부드럽게 써지지만 굵어서 번지기도 하고, 동글한 글씨로 쓸 때 잘 써지더라고요. 시그노 0.38은 0.5보다 얇아서 잘 써지고 제가 펜을 세게 잡는 편이라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공책 뒷면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네요.” 
   
수제스티커의 공유 또한 다꾸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손글씨로 구성된 수제스티커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다른 사람들이 인쇄해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꾸 파워블로거 중엔 미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진짜 전문가들도 많다. 그들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스티커를 커뮤니티 회원들이 내려 받는다.
   
다꾸인들을 상대로 온라인 강좌를 여는 열성파도 많다. 자신의 다꾸 작품을 보여주며 일러스트 그리는 법, 타이포그라피하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네이버 닉네임 ‘각설탕’의 ‘잡지 하나로 나만의 말풍선 만들기!’ 다꾸 강좌에는 5806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다꾸인들이 급증하면서 대형서점이나 문구점에도 ‘다이어리 특별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지난 9월 3일 재개장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다이어리 코너는 손님들이 붐벼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다이어리 브랜드 ‘몰스킨’ 판매를 담당하는 김진주씨는 “몰스킨의 하드커버 다이어리는 품절된 상태”라며 “팬시 문구점에 가서 다이어리 꾸밀 재료들을 사는 여학생들 중에는 ‘스티커가 눈에 아른거린다’며 다시 와서 사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다꾸인들 중에는 디자인 전문가들이 쓰는 필기구나 고가의 문구를 사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문구 분야만 다꾸 특수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출판계에서도 ‘다꾸’ 실용서가 계속 출간되고 있다. 2007년 출판된 ‘다이어리 꾸미기’를 시작으로 ‘일러스트 다꾸 프리노트 4인의 손그림’ ‘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스티커 연습장’ 등 10여종의 다꾸 관련책이 출판되었다. ‘다이어리 꾸미기’는 현재 3권까지 시리즈로 나와 있다. 작년엔 계간 잡지인 ‘다꾸부꾸’까지 출간되어 다꾸인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 새로 개장한 교보문고에는 다꾸에 유용한 일러스트 북 코너도 따로 마련돼 있다. 
   
다꾸 관련 용품을 사고 파는 온라인 시장 또한 활발하다. 온라인 쇼핑몰 꼬모네임(www.comoname.com)을 운영하는 문지은 대표는 ‘맞춤 네임 스티커’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학창시절 친구들끼리 예쁘게 글씨 쓰기, 다이어리 꾸미기에 ‘목숨 걸었던’ 경험을 되살려 고객들이 원하는 글귀를 새겨주는 스티커 판매 사업을 구상했다고 한다. 문 대표는 “요새 다꾸인들은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원하는 글귀, 글꼴, 스티커의 크기까지 신경 쓴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미소천사’ 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문구를 새겨 달라는 요구가 많아요. 개성 있는 다이어리를 만들기 위해서 남들과는 차별화된 모양을 원하는 고객도 많고요.”
   
600가지가 넘는 모양의 스탬프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큐스탬프(www.qstamp.co.kr) 이광병 대표는 원래 종합 문구를 파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다 다꾸인들의 스탬프 문의가 잇따라 스탬프만 파는 쇼핑몰을 따로 열게 되었다고 한다.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대단합니다. 그래서 더욱 다양하고 많은 스탬프를 요구하는 것 같아요.”
   
종이 다이어리는 인터넷 미니홈피 붐이 일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한때 나돌았었다. 하지만 미니홈피와 무관하게 종이 다이어리는 더 각광받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 치중하는 미니홈피와 달리 종이 다이어리는 자신이 직접 꾸며나가며 더 큰 자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이자 생명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쥬떼의 블로그 holic’(http://blog.naver.com/nainoi)을 운영하고 있는 다꾸인 박다흰(23)씨는 종이 다이어리의 매력에 대해 “꺼내 보고 직접 만질 수 있고 소장가치가 있어요. 미니홈피로는 느끼지 못할 감동”이라고 말했다.
  
다꾸인들이 쓰는 용어들
   
   디테 디자인테이프 (흔히 사용하는 테이프와는 달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테이프)
   마테 마스킹테이프. 손으로 뜯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일본 스티커
   샌디 캐나다산 스티커 샌디라이온. 매니아층이 많고 재질이 다양함

문경연 인턴기자·서강대 3년   주간조선 [2123호] 2010.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