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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디자인 아티스트 소은명 `삶과 창작 사이`

전문 용어로는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부르는 그녀의 전공 분야에서는 창작물이 꼭 한 가지 형태가 아니다. 가구를 발표한다고 해도, 디자인마다 창작의 근간이 되어주던 느낌을 적은 시가 뒤따른다. 그녀의 작품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것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수성도 풍부하다.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해서 꼭 첨단 디지털 기술이 탑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소은영의 작품으로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지켜보고 그 안에서 제기되는 의문들을 포착하는 소은명은 디자인 아티스트라는 직함처럼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 있다. 발표한 작품이 최종적으로 가구라고 해도, 실용성과 생산성만을 다루는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상에서 놓쳐버리기 일쑤인 것들, 작은 것, 사소한 것 하나를 보더라도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스케치할 수 있는 오랜 감수성은 그녀가 소신을 가지고 작업할 수 있게 해준 힘이 되었다.

‘나무가 책이 되고 책이 나무 되네’ ‘숨겨진 차원’ 등 작품 이름이 독특하다. 작품으로 가구라는 형태를 삼은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부터 가구를 만들려고 디자인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 작품 구상이 너무 많다. 계속 실험하고 실패도 했다가, 결국 미뤄둔 것들도 있다. 그런데 계속 발표되는 것이 가구인 것이다. 사람과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는 것이 가구이지 않나? 그런 면에서 사람과 사물 사이의 소통을 이야기하다 보니 가구로 표현되는 것 같다.

가구를 설명하는 글들이 새롭다. 가구를 바라보면서 디자이너의 감수성을 느끼게 되는 까닭도 첨부된 글의 몫이 크다. 그것도 인터렉티브 디자인 차원에서 의도된 것인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본래 글쓰기를 좋아해 시를 써왔다. 작품 콘셉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설명이 아닌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시를 읽어보는 것만으로 내가 이 작품을 만들 때의 생각과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까지 모두 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내 자신의 생활이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한다. 때로는 가구가 “요즘 너 어떻게 지내?”라는 지인의 안부에 대한 답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숨겨진 차원’을 보고는 결혼한 사람이고,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저렇게 쌓고 올라갈 필요까지 있을지에 대한 질문으로, 싱글 눈에는 1백 퍼센트 공감하기 어려웠다. 부부 각자에게 공간이 필요하지만, 한 사람의 아내로, 아이의 엄마로 살다 보면 남편과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공간을 내어주게 된다. 1시간 정도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때에 천장을 보고 있으면, 저 위에 올라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구에 따른 반응은 연령층마다 달랐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아이 엄마들에겐 많은 호응을 얻었다.

디자인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쨌든 가구에는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부분도 있지 않은가. 예를 들면 경제성, 실용성, 활용도와 같은 것? 물론이다. 디자인 아티스트라는 말에는 디자인과 순수 미술 두 분야 모두에 발을 담그겠다는 의도가 있다. 책장은 사각 형태가 가장 경제적이고 실용적이지 않는가? 하지만 ‘나무가 책이 되고 책이 나무 되네’는 책을 보관할 수도 있고, 하나의 창작 오브제로도 활용할 수 있는 두 가지 면을 아우른다. 그렇다 보니 두 분야 모두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더불어 환경적인 문제에 관해서라면 숙지하고 있다. 내겐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이 굉장히 크니까. 나무의 형태라고 해도 나무를 사용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무를 참 좋아하지만, 결국 재료 낭비가 심해지는 거다. 결국 메탈을 사용했고, 나중에 버릴 때도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작가 소은명과 작품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떤 소통이 가능한가? 일상에서 주어진 의문들, 그리고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예컨대, 어느 날 문득 집 안을 둘러보니,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가구들뿐이더라. TV 앞에 놓인 소파도 그렇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나란히 눕지 않는가? 서로 마주 앉을 기회가 적어진 이들에게 던진 작품은 ‘릴레이션 쉽(Relation sheep)’이다. 목마를 타듯 마주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돕는다.

* 소은명의 작품은 다가올 9월에 열릴 런던 페스티벌 기간 중 ‘100% 디자인 런던’에 전시된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홈페이지를 확인하자. www.designartist.co.kr

기획_한지희
슈어 9월호
중앙일보 | 2010.09.30 14:5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