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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패션

[패션 스토리]인생의 멋을 디자인한다

임수정, 김태희, 고소영, 한채영 등 많은 여배우들이 레드카펫과 CF 의상으로 선택해 이슈가 되고 있는 드레스. 이 드레스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맥과 로건이다. 과연 이들이 만든 의상에는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을까?
 

 
한국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로 주목받다
아내인 맥과 남편인 로건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자신들의 이름을 따 국내에 오픈한 하우스 쿠튀르, 맥앤로건에서 지금 가장 ‘핫’한 의상으로 손꼽히는 드레스를 디자인한다. 드레스라고 하면 일단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부가 만든 드레스를 지그시 감상하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진다. 과연 어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까? 이 질문에 로건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 시대 어머니들의 의상은 당연히 한복이었는데, 양장이 국내에 들어올 무렵이었다. 그래서 한복은 길이가 버선이 보일 정도로 짧게 올라갔고, 치맛자락을 끌어당겨서 그 손으로 양산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지금으로 말하면 클러치백을 들고 있는 모습이 상징적이었다. 그런데 로건은 어머니께서 치맛자락을 움켜잡으신 그 모습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한복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볼륨감! 그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디자이너가 되고 난 후에도 그 모습은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다시 그 모습을 재해석해본다면 어떨까.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귀한 원단을 소개받았다. 정성스런 돌 다듬이질로 탄생한 한복 천. 처음 이 원단을 받았을 때 아주 귀하게 느껴져 아까운 마음에 선뜻 가위질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재단을 하지 않고 옷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특유의 디자인이 나왔다. 몸을 따라 원단을 돌려가며 디자인하는 드레이핑 기법.

“이 귀한 원단을 접하면서 느낀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복 원단의 폭은 보통 33cm인데, 다른 나라 원단보다 좁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 33cm라는 폭이 얼마나 우수하냐 하면, 휘어서 돌리고 사선으로 올리는 등으로 디자인을 하다 보면 독특한 볼륨감이 생기고 여기에 따라 의상에 자연스러운 그림자가 생깁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의상에 그림자가 생기면 볼륨감이 더욱 풍성하게 살아난다는 것이죠. 서양 의상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그림자를 찾아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폭이 넓은 원단에서는 이런 그림자를 살리는 작업이 조금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복 원단을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그림자를 살리는 게 가능한데 그 결과 더 우아한 아름다움이 표현되죠.” 
 

로건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패션 화보 촬영차 여러 번 맥앤로건의 의상을 접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드레이핑이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울까, 곡선미와 입체감의 조화가 정말 환상적이다!’라고 감탄했던 기억. 그런데 자세히 보니 원단에 전통 무늬가 은은하게 들어가 있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드레스를 ‘뉴 룩 한복’이라고 부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뉴 룩’을 발표하면서 여성 복식의 혁명을 일으켰던 주인공이 크리스찬 디올이라면, 우리나라에서 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뉴 룩 한복을 선보여 한국 전통 의상의 멋을 재발견하게 한 주인공은 맥앤로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리드미컬한 곡선이 그려내는 여성스러움, 치맛자락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장미 모양이 되기도 하는 독특한 디자인…. 한복 느낌의 의상을 입어야 할 자리라면 이렇듯 변형된 디자인의 뉴 룩 한복을 입으면 더욱 멋진 드레스 스타일이 연출되지 않을까. 중년층은 여기에 한복풍 볼레로를 매치하면 우아한 기품이 더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맥앤로건의 의상이 어머니 세대만 겨냥한 것은 아니다. 특히 한복 원단을 사용한 미니 드레스를 보면 트렌디한 감각이 조화를 이뤄 젊은 층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하다. 주름으로 포인트를 살린 미니 드레스에 재킷을, 원피스형 드레스에 볼레로를 매치해본다면 한결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뉴 룩 한복, 딸의 미니 드레스…. 하우스 쿠튀르의 대상이 모든 여성인 만큼 이곳에서는 온 가족이 입을 수 있는 룩이 다양하게 탄생하고 있다.

옷 입는 데 자유로워질 것
드레스 잘 만드는 이 부부의 평소 옷차림은 어떨지 문득 궁금해진다. 옷 하나로 서로 돌려 입는다는 것이 이들의 대답. 아내의 카디건은 남편의 목도리가 되고, 남편의 티셔츠는 아내의 원피스가 되기도 한다. 아내는 심지어 남편의 바지도 입는다. 이들은 이렇게 재미있는 룩을 좋아하고 정해진 규칙 없이 시도하는 것을 즐긴다.

“중년 여성들이 옷 입는 데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20년 동안 실험을 거치면서 겨우 찾아낸 나만의 스타일인데’라면서 다른 스타일로 절대 바꾸지 않을 거라 다짐하는 경우도 봤죠. 하지만 하나의 스타일만 고집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현재의 생각에서 ‘이건 좀 과하지 않을까’ 하는 이 정도가 오히려 적당한 것 같아요. 한 가지 피했으면 하는 아이템이 있는데, 중년 여성들에게 유니폼처럼 돼버린 골프복이에요. 상의는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하의는 골프 바지를 입은 것도 종종 봤죠. 그런데 이제 그것만은 좀 벗어던졌으면 좋겠어요. 물론 골프 치러 갈 때는 그 옷을 입어야겠죠. 하지만 평상시에는 다른 아이템을 입어야 합니다. 왜냐고요? 골프복은 운동복이니까요.”

자유로운 스타일링. 이것이 이 부부의 옷 입는 방식이자 모든 중년 여성들에게 적극 권하는 패션 팁이다.

파리지엔의 패션 문화를 배운다
국내에 자신들의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 프랑스 파리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서 활동했던 디자이너이기에 파리지엔의 옷 입는 방식도 잘 알고 있을 터. 멋스럽기로 소문난 그들의 스타일링 비법은 무엇일까? 
 

“파리 여성들의 옷 잘 입는 방법은 바로 레이어드입니다. 방금 산 옷들을 서로 레이어드 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옷을 이용하는 것이죠. 그들에겐 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요. 단순히 멋을 내고자 레이어드를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알뜰한 정신에서 이전 세대가 입었던 옷들을 물려받아 이를 현재의 옷과 믹스해서 입다 보니 그게 오히려 멋스러운 연출법이 됐고, 프렌치 스타일의 정석이 된 것 같아요.”

어머니의 재킷에다 트렌디한 벨트를 멋지게 매치한다거나, 혹은 빈티지 의상의 경우 그 시대에만 있었음직한 패브릭이나 가죽일 수도 있어 지금은 돈을 주고도 구입할 수 없는 유니크한 아이템으로 오히려 주목받기도 한다.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옷들을 지금 꺼내보면 이런 의외의 재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파리 여성들의 멋은 어느 한순간에 나온 게 아니라 오랜 세월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하는 로건. 맥 역시 패션에서도 정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파리 여성들의 옷 입기는 유행이 아니라 문화예요. 적당히 구입해서 한 시즌 입고 말지 뭐, 이런 생각이 아니라 나중에 후손에게 이어질 것을 고려해서 선택하죠. 우리도 패션에 있어서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정통성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녀의 말처럼 생각의 변화를 가진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지금보다 더 뛰어난 패션리더가 될 수 있는 밑바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스타일리시한 사람들을 보면 당사자 한 세대에서 나오는 멋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보고 자란 세대의 집합체다. 따라서 윗세대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인생의 멋이 후손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이제 패션은 대대로 물려줘야 할 하나의 문화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1 헴라인을 자연스럽게 들어 올려 종아리가 살짝 보이도록 디자인한 레드 롱 드레스는 섹시한 멋을 연출한다. 2 슬림한 듯 볼륨감이 살아 있는 베이지 미니 드레스. 평상복으로 활용할 때는 재킷을 레이어드하면 트렌디한 스타일이 연출된다. 3 한복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 드레이핑으로 꽃 모양을 연출해 포인트를 준 롱 드레스에서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제품 협찬 / 맥앤로건(02-3443-7911) ■진행 / 신경희 기자 ■사진 / 이주석

레이디경향 201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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