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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영상

5년간 만든 애니메이션을 무료로 공개했다고?

여러분은 Sita Sings the Blues를 제 허락없이 마음껏 복사, 공유, 상영, 다운로드, 판매, 방송, 리믹스하실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모든 영화를 사용할 때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영화를 볼 수 있을까요? 허락이나 비용의 제약이 있다면 영화가 얼마나 퍼져나갈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을 신뢰하고, 문화를 신뢰하고, 자유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최근 픽사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토이스토리’가 3편으로 막을 내렸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흥행으로 픽사는 애니메이션의 명가임을 다시 한 번 만천하에 드러냈다. 영화, 그 중에서도 특히 애니메이션은 수많은 장비와 기나긴 제작기간, 또한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픽사의 모든 역량이 투입된 102분짜리 애니메이션의 제작비용은 약 2억달러(2천 400억원)이며, 제작에 4년이 걸렸다. 정말 막대한 리소스 투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단 한 명이 가정용 컴퓨터로 만들었다면?

<이미지 출처 : Sita Sings the Blues 홈페이지 / CC-BY-SA>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Sita Sings the Blues)는 니나 페일리가 5년동안 집에 있는 가정용 PC로 만든 82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30살에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접한 니나 페일리는 애니메이션 관련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에서 니나 페일리는 감독이자, 작가이자, 프로듀서이자, 편집자이자, 애니메이터 역할을 했다.

혼자서 만든 인디 애니메이션이 안봐도 뻔하지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오산이다.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인도의 힌두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세계 각국 영화제에서 입상을 통해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뉴욕타임즈, 와이어드, BBC 등 주요 매체도 이 애니메이션을 관심 있게 다뤘다. (관련기사 보기)

<출처 :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 홈페이지. CC BY-SA> 

애니메이션 보기

그러나’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의 정말 특별한 점은 이 영화에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CCL(Creative Commons Lisence)의 BY-SA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가 적용되었다는 데 있다.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고, 원하는 곳에서 상영해도 된다. 심지어 영리 목적으로 이용해도 좋다.

5년간의 엄청난 노력 끝에 만든 ‘자식’을 어떻게 CCL을 적용해 공개할 수 있었을까? 최근 뉴욕에서 열린 HOPE(Hackers On Planet Earth)에서 니나 페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문화는 계속해서 흘러간다. 살아있는 형태로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흘러간다. 문화는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면 그것은 한 곳에 머물게 되고, 이는 문화라고 할 수 없다.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누구 소유도 아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한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는 2008년 2월부터 2010년 2월까지 2년 동안 전세계 영화제에서 기록된 것만 265번을 상영했다. 영화의 자막도 전세계 이용자들이 스스로 참여해 만들었다. 현재 21개 언어로 자막이 제공되고 있다.

거둬들인 돈도 적잖았다. 2009년 3월부터 1년 동안 벌어들인 돈만도 13만달러, 우리 돈으로 1억 5천만원에 이를 정도다. 이 수익의 대부분이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나 물품 구입으로 생겨났기에 더욱 놀랍다.

니나 페일리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티스트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아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저작권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아티스트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유일한 방법도 아니며, 올바른 방법도 아니다. 저작권은 실제로 규모가 큰 기업들을 보호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동영상 보기)

영화계에서 이런 신선하고 용감한 시도가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금의 영화배급방식에서 벗어나 P2P란 독특한 배급방식을 선택한 VODO의 시도나, 올해 6월 CCL로 공개된 영화들을 모아 상영했던 제1회 창작과 나눔 영화제, 인디시트콤을 CCL로 공개한 윤성호 감독의 시도는 또 어떤가. 쉽지 않지만 의미있는 실험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 ‘실험’들이 ‘흘러가는 문화’를 만들어갈 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by 이기환 | 2010.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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