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기타

아이팟과 나이키가 만났더니


2007년 1월9일은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한 날이다. 또 이날 애플은 회사 이름을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 Inc.)에서 애플(Apple Inc.)로 바꿨다.

더 이상 자신들이 컴퓨터만을 만드는 회사가 아님을 공식 선언한 셈이다. 애플은 디자이너나 파워유저들만 사용하던 컴퓨터에서 생활의 일부분인 휴대폰, MP3, 게임기, 내비게이션 등으로 범위를 넓혀나갔다.


애플은 디자인ㆍ소프트웨어 기술을 기초로 핵심 사업을 재정의하면서 성공법칙을 만들어 냈다. MP3를 음악 서비스사업으로 재정의한 게 대표적 성공사례다. 바로 아이팟이다. 이제 아이팟은 크리넥스나 제록스처럼 MP3 플레이어를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애플은 컴퓨터 판매 대수 보다 아이팟 판매 대수가 더 많다.


애플은 아이팟을 단순한 음악을 듣는 MP3가 아니라 디지털라이프 기기로 재정의했다. 애플이 아이팟을 재정의한 이유도 단순하다. 음악은 소비자의 시간을 뺏을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강력한 수단이다. 음악은 하루 종일 우리의 삶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단지 수십 곡의 노래만이 아니라 고객이 갖고 있는 노래 모두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대안은 아이팟에 하드드라이브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MP3는 플래시메모리 위주가 대부분이었다. 노래는 20~30곡을 저장하는데 그쳤다.

물론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하드디스크가 플래시 메모리 제품보다 세배 이상 커 갖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애플은 전 세계 하드드라이브 업체를 찾아다녔다. 결국 도시바가 초소형 하드드라이브를 개발한 것을 알고 계약을 맺었다. MP3에 쓴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도시바는 그런 하드드라이브를 만들어내고도 애플과 같은 아이팟을 만들지 못했다.

하드드라이브를 장착한 아이팟은 노래를 1000여곡까지 저장할 수 있었다. 잡스는 아이팟을 첫선 보일 때 작고 얇고 많은 노래를 저장할 수 있다며 ‘extraordinary(놀라운)’ ‘unbelievable(믿기 어려운)’ ‘awesome(엄청난)’과 같은 수식어를 남발하며 자랑했다. 아이팟이 인기를 끌자 플래시 메모리 제품을 내놓던 업체들도 줄줄이 하드디스크를 내장한 MP3제품을 내놓았다. 이런 이유로 1940년대 라디오, 1950년대 주크박스, 1980년대 워크맨이 있었다면 2000년대엔 아이팟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애플의 역사는 재정의의 역사다. 잡스는 컴퓨터뿐 아니라 영화 음악 휴대폰 등 4개 산업의 시장을 재정의하고 진로를 바꿔놓았다. 미래학자인 앤드루 졸리는 “애플을 비롯한 후발주자는 단순히 경쟁의 조건을 정의하는 게 아니라 재정의하는 것으로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컴퓨터를 재정의했다. 애플컴퓨터가 나오기까지 컴퓨터 이미지는 사무실 한 공간을 차지하는 IBM의 메인프레임이였다. 하지만 애플은 컴퓨터를 개인이 손쉽게 쓸 수 있는 기기로 재정의 했다.


잡스는 스마트폰도 재정의 했다. 휴대폰 업체들은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다음의 시대를 영상통화의 시대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사람들은 영상통화를 불편해했다. 광고에서도 사라졌다. 휴대폰업체들은 스마트폰의 미래도 잘못 짚었다. 휴대폰업체들은 스마트폰에 다양한 기능을 마구마구 심어 넣었다. 그들은 그것을 진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휴대폰이 더욱 복잡해졌다고 여겼다.

잡스는 거꾸로 생각했다. 스마트폰은 휴대폰의 진화가 아니다. PC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복잡해진 휴대폰 대신에 들고 다니기 편한 PC를 만든 것이다. 아이폰이 등장했다. 삶의 새로운 방식을 제공했다. PC의 단순화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도구였을 뿐이다. 이제 사람들은 아이폰을 통해 PC에서 하고 있는 경험을 누렸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열광했다.


이제 비즈니스 세계에선 단지 같은 업종 기업만이 ‘맞수’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경쟁자가 불쑥 튀어나온다. 경쟁자, 즉 라이벌 역시 재정의 해야 할 때다. 업종 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장점유율(Market Share)’ 경쟁시대가 막을 내리고 ‘시간점유율(Time Share)’ 경쟁시대가 온 것이다. 고객들이 자사 제품을 사용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할애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세계 1위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는 1994년부터 5년 연속 3배 이상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보인 뒤 서서히 둔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리복, 푸마, 아디다스와 같은 신발업체가 아니라 소니, 닌텐도, 애플 같은 IT업체라는 결론이 나왔다.

나이키의 주요 고객인 청소년들은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으면 그 돈의 60%를 신발이나 스포츠 용품구입에 썼다. 하지만 이들이 닌텐도 게임을 접하면서 운동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게 돼 운동화 구입 비중이 30%로 줄었다. 나머지는 게임기나 게임용 소프트웨어 구매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매출 확대를 위해 나이키가 선택한 파트너가 바로 애플이었다. 나이키는 사람들이 조깅을 할 때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MP3를 듣는 것에 착안했다. 나이키 운동화 밑창에 센서를 달고 이를 아이팟에 연결시키면 아이팟 LCD창에 운동량이 기록되는 '나이키+아이팟 스포츠 키트'를 시장에 내놓았다. 나이키 신발 밑창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만보기를 부착해 만보기의 정보를 무선 수신한 다음 아이팟에 알려주는 제품이다. 조깅 데이터를 아이팟에 기록하고 인터넷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스타벅스 

스타벅스는 커피숍을 커피 마시는 곳에서 문화를 마시는 곳으로 재정의했다. 제품이 아닌 문화를 재단장하면서 사람들은 비싼 가격에 늦은 서비스도 참고 어려운 주문 표에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에비앙은 흔해빠진 물도 고급스럽다고 재정의했다. 에비앙은 물병 갖고 다니는 풍속을 만들었다. 닌텐도는 게임을 부모 몰래 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함께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게임기는 당당히 거실로 나오게 만들었다.

시장 재정의는 기존 제품과 소비자를 다시 확인해보는 전략이다. 재정의는 결국 소비자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더 많은 기업들이 비즈니스 재정의로 소비자의 삶을 풍족하게 만족시켜줬으면 좋겠다.

사(社)적인 이야기
http://blog.hani.co.kr/june/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기사등록 : 2010-09-14 오후 03:53:44   
ⓒ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