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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손잡이 컵 tea cup에 담긴 디자인의 의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오후의 티 파티에서나 볼 법한 손잡이 컵들에서 발견한 디자인.





프롤로그
< 정글> 영국통신원으로 활동하던 김지원. 영국에서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를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만났다. 영국에 거주하는 동안 영국의 디자인 문화 칼럼을 기고하던 그는 그곳에서 공부한 그 어떤 것보다 < 정글> 을 통해 디자인과 관련한 글을 쓰게 되고 그것이 ‘쌓이게 된 것’이 가장 소중하다 말한다. 디자인을 단순히 테크닉, 스킬, 실체화된 형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문화로 접근해 바라보며 사색하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말이다. 영국에 가기 전 모닝글로리 아트디렉터였던 그는 디자인 문화를 읽기 편하고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것을 추구한다. 단순한 가벼움과는 다른 ‘쉬워 전달력이 강하고 편안한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제안한 ‘동화 속 디자인 세상’은 디자인 플러스 문화 스토리텔링의 또 다른 면이다. 조금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디자인은 의외의 것에서 추출된다. 디자인은 문화는 물론 이념을 포함하는 철학과 사상, 인류와 인류의 역사, 공간과 구조물 등 다양한 유무형의 모든 것에 존재한다. < 정글> 이 찾아낼 그것들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본제로 돌아가 고전동화가 현대의 그것보다 좋은 것을 아이들 교육에 빗대어 말한다면, 권선징악 구도가 뚜렷한 고전동화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선과 악을 터득하게 하여 악에 만연한 사회와 사람에 잘 적응하게 한다는 것에 있다. 고전동화, 그것에는 권선징악의 교훈도 있지만, 디자인도 있다. 김지원의 동화 속 디자인 철학은 영국에서 보낸 시간의 향수로
가득 차 있어 이국적이다. 모자이크같이 짜맞춰진 해적문화의 나라지만, 자국의 글자에서 파생시키는 다양한 문화로 해적문화의 자격지심을 씻어내는 영국. 흐릿한 영국 하늘에 청승스레 걸려있던 조각 달 사진을 보내 주던 김지원은 이제 없지만 < 정글> 을 계기로 글 쓰는 디자이너로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 좋다. 그와 같은 디자인하는 글쟁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가 한국에서 보내 온 첫 번째 글이다. 
글 김지원 | 에디터 이찬희 | 디자인 김효진

엉망진창 티 파티?
토끼 굴 아래로 툭 하고 떨어진 순간, 이상한 나라 속 얼기설기 엉켜버린 시공간을 경험하던 앨리스가 잠시 쉬어가기를 청하던 오후의 티 파티.
빈 찻잔들만 즐비하게 널려있는 기다란 탁자에 다닥다닥 모여 앉은 산 쥐와 모자 장수, 3월의 토끼, 그리고 초대 받지 않은 작은 소녀가 차를 마시며 뒤죽박죽 대화를 시작한다.

“집 앞 나무 아래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3월의 토끼와 모자 장수가 탁자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탁자는 컸지만, 그 셋은 탁자 한쪽에
바짝 몰려서 앉아 있었다.
“자리가 없어! 자리가 없어!”
그들은 앨리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넉넉한데 뭘 그래요!”
앨리스는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탁자 한쪽 끝에 있는
커다란 팔걸이 의자에 앉았다.”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묘사된 이 기이한 다과회는 시대의 이상을 표현한 그림 작가 케이트 그린어웨이(Kate Greenaway)의 빅토리안 티 파티 < The Tea party> 와는 참으로 다른 분위기다. 화창한 여름날 오후, 좁다란 장미 길을 따라 정원 안으로 들어서면 눈부신 실크 드레스의 상냥한 안주인이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낭만적인 티 파티의 풍경과 달리 캐럴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이 괴상한 티 파티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이나 주고 받는 말썽쟁이 어린 아이들의 놀이쯤이라고 넘길법하다. 그러나 빅토리안 시대 상류 계층들에게 향유되며 모든 계층에 확산되었던 오후의 티타임(Afternoon Tea)의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가치에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환상 속에서나마 행해지는 이 같은 문화 파괴, 해체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억압당한 욕구를 해방시키는 짜릿한 행위로 여겨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행동이
역시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릴지라도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저 자리에
끼지는 않을 거야!”
숲 속 길을 따라 걸으며
앨리스는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저런 바보 같은 다과회는
생전 처음인걸!”

본문 중 글은 『마틴 가드너의 앨리스 깊이 읽기, 북폴리오』에서 발췌

디자인으로 재해석된 티 파티
꿈이 아니다. 공원 산책길에 엄청나게 커다란
티 컵을 뒤집어 쓰고 뛰어 다니는 이상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티 컵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다가 느닷없이 머리에 뒤집어 쓰며 깔깔거린다.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까지 하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다. 나른한 오후, 사람들은 오간데 없고 거대한 티 컵들만이 공원 분수대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 웃기는 티 파티이다. 어느 예술가의 행위예술이겠거니 하고 지나치며 웃어 넘겼는데, 며칠 일이 지나 그 거대한 손잡이 컵을 디자인 행사장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닫힌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은 화분이 된 티 컵을 구경하기도 하고, 머리에 써보기도 하고, 마시는 시늉도 하며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 재미있는 티 파티이다.
디자인 그룹 잼(jamdesign)과 BPF EPS 그룹의 협업에 의해 탄생된 이 거대 티 컵은 재질의
견고성 때문에 제품의 포장재로 널리 사용되는 EPS(expanded polystyrene) 소재로 만들어 졌다. 98%가 공기인 이 경량 소재는 거의 모든 색상과 형태로의 구현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제조 과정상 낭비되는 것 없이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이미 재료적인 특장점으로 많은 산업 분야에 적용되고 있지만 디자인 제품의 개발도 가능한 매력적인 소재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 이 거대 티 컵의 탄생 배경이다.
콘셉트 면에서 보면 ‘손잡이 컵(tea cup)’이라는 소재는 가장 보편적인 영국인의 문화를 상징한다. 모든 이들이 즐기는 이러한 보편적인 문화가 사물의 과장된 비례와 만나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키고,
이 디자인 산물은 생각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계 속에서 서서히 뿌리 내리고 생각이 진화되는 것을 돕는다. 중요한 것은 EPS 컵의 디자인 콘셉트가 단순히 과거의 것을 차용하거나 갑작스런 아이디어의 발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안에서 행해진 일이라면,
어쩌면 티 컵이라는 소재는 사람들의 공감을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차 문화(British tea culture) 안에서, 1800년대 캐럴이 이야기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2000년대의 EPS
티 컵은 소재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비우고 소재 자체를 재해석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손잡이 컵 속 디자인 문화
동화 속에는 사람들의 삶도 담겨 있고, 그들이 바라는 세상도 담겨 있다. 이야기는 마법의 미로를 통해 그들의 꿈을 현실 세계로 실어 나르는 수단이 된다. 디자인 세상도 이야기 속 세상과 같다. 그러니 이야기가 없는 디자인은 그저 잠시 잠깐 눈만 즐겁게 하는 장식품에 불과한 것이다. 문화의 흐름 속에 덧붙여지거나 떨어져 나가 변화되는 삶처럼 다듬어지고 변형된 디자인 산물 속에는 우리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투영되어있다. 200년 전 웨지우드(Wedgwood)의 클래식한 티 세트가 지속시켜왔던 영국 음다문화(飮茶文化)의 정신이 오늘날 거대한 EPS 티 컵의 형태로도 표현되고 그들의 사회 안에서 이 같은 디자인 행위들이 받아들여지고 퍼지는 것처럼 말이다.

< 사진캡션>
120p jamdesign의 Tea cups project
121p A Mad Tea Party by John Tenniel, Source from www.ebbemunk.dk
122p Victorian Tea Party by unknown, Source from www.simplesue.tumblr.com
123p Tea cups project by EPS & jamdesign, Source from www.eps.co.uk * EPS의 웹사이트에서 짧은 필름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