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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뱅앤올룹슨의 혁신 디자인, 어디서 왔을까?

덴마크의 기능주의, 가구•산업 디자인 분야 경쟁력 높여 

왜 이 기사를 읽어야 하는가?
더 이상 뺄 것 없이 간결한 디자인의 진수,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21세기 디자인 트렌드로 전 세계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것으로 단순함과 더불어 실용성까지 겸비했다.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출발지는 어디일까? 바로 신생 디자인 강국 덴마크다. 가구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을 비롯해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간결하게 표현된 덴마크 제품들. 덴마크는 어떻게 디자인 강국이 되었을까? 그리고 덴마크 기업에게 디자인은 어떤 의미일까?(편집자주)

덴마크 디자인의 핵심, 기능주의
덴마크 디자이너들은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 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바우하우스 특유의 엄격하고 독단적인 표현방식은 따르지 않았다. 덴마크 디자인은 기능주의적인 면을 살리면서도 자연적인 표현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럼 덴마크 기능주의란 어떤 것일까? 건축과 산업 디자인에서 사물이나 건물의 본래 목적에 치중하여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능주의에서는 디자이너가 사물을 관찰하고 그 기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와, 관찰된 기능을 단순하고 최소화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다 보니 단순하고 선형적인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고 기능과 사용자의 측면을 재치 있게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덴마크에서는 1960년대부터 기능주의가 인기를 끌었다.

덴마크 기능주의를 대표하는 디자인 기업들

1) 벌나돗앤비욘

벌나돗앤비욘(Bernadotte & Bjørn)은 덴마크 최초의 산업 디자인 전문 스튜디오이다. 공동 창업자 악톤 비욘(Acton Bjørn)은 원래 은 세공을 하던 세공사 출신이고, 시그바 벌나돗 (Sigvad Bernadotte)은 스웨덴 왕실 태생의 산업 디자이너이다. 이들은  1950년대부터 잘 나가는 덴마크 디자이너들을 기용하기 시작해 기계, 생활용품, 가구에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한 제품들을 만들고 있다.

혹 마가레타 보울(Margrethe Bowl )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이는 벌나돗앤비욘의 장수 제품으로 손꼽힌다. 마가레타 보울은 다른 평범한 제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에나멜을 입힌 새로운 재질을 사용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테인리스 그릇이 등장하면서부터 마가레타 보울은 점차 대체되었지만 오늘날까지 재질의 특수성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벌나돗앤비욘은 미국의 산업디자인 풍토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1964년 벌나돗이 스톡홀름에 사무실을 새로 내면서 스튜디오의 활동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벌나돗앤비욘은 덴마크 기능주의 디자인의 산실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덴마크 출신으로서 전설적 디자이너로 이름난 쟈콥 젠슨(Jacob Jensen).  그는 벌나돗앤비욘의 초창기 멤버인데 20년 넘게 뱅앤올룹슨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며 국제 디자인상을 100회 이상 수상했다. 또 벌나돗앤비욘은 디자인에 새로운 물질과 기술을 끊임없이 접목, 다양한 기업들과 합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뱅앤올룹슨이다.

2) 뱅앤올룹슨

벌나돗앤비욘과 합작하여 뛰어난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기업은 바로 뱅앤울룹슨(Bang & Olufsen)이다. 뱅앤울롭슨은 80년의 전통을 지닌 덴마크의 혁신적 장인 기업으로 손꼽힌다.  2009년 약 8800억원(4376 덴마크 크로나)의 매출을 기록했고 현재는 약 2500명의 직원이 뱅앤올룹슨에서 일하고 있다.

뱅앤울롭슨은 음향시스템에 아쿠스틱 렌즈 기술이라고 불리는 음향 인식 렌즈 기술을 도입해 타 음향시스템 기기와 음질부분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 ICE전원 기술은 스피커를 압축함으로써 높은 에너지 효율로 인해 스피커쪽으로 열이 발산되어 음질을 떨어뜨리는 대형 스피커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뿐만 아니라 영상기기의 경우 자동 컬러 관리(Automatic Color Management) 기술로 선명한 플라즈마 화면을 자랑한다. 또한 비전클리어(Vision Clear)기술은 방 어디에서 보든 동등한 화질로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한다.

특히 뱅앤울롭슨이 추구하는 사용자 기반의 디자인은 리모콘으로 음향기기와 영상기기뿐 아니라 실내의 조명까지 완벽히 조절할 수 있는 편의를 보장한다. 시스템 통합을 통해 음향, 영상기술이 실내의 모든 환경을 통제한다는 개념은 뱅앤올룹슨의 핵심역량 중 하나가 되었다. 최근에는 아이폰으로 뱅앤올룹슨의 제품을 모두 조절할 수 있는 앱(App)을 개발하기도 했다.
 
뱅앤울룹슨의 또 다른 특이점은 해외 공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제품의 설계부터 생산, 조립, 보관까지 모두 덴마크에 있는 본사에서 이루어 진다. 비싼 덴마크의 노동력을 이용해야 하지만 초기의 장인정신에 기반해 제품의 전 공정을 철저히 관리한다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특히, 거의 전 제품에 사용되는 알루미늄을 양극산화처리(anodized)하는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알려져 있다. 양극산화처리를 하면 부식을 방지하고 뱅앤올룹슨 특유의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제품의 전 과정이 철저히 기업 내에서 이루어 지는 것과는 달리 뱅앤올룹슨과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독립적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어찌 보면 상당히 모순된 것으로 느껴진다. 디자인이 핵심역량인 기업에서 이 부분을 아웃소싱한다니?

뱅앤올룹슨은  자사의 가치와 비전, 아이디어를 엮어주는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디자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을 기용하는 것은, 이것이 다양하고 독창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는데 더욱 유용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도 한 회사에서 유사한 프로젝트로 계속 일하는 것 보다 자유롭게 일을 하는 것이 창의성 보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뱅앤올룹슨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을 기용하기는 하지만 이들을 제품의 제작 공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이와 함께 뱅앤올룹슨만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도록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한 관리자(Contact Manager)를 따로 두고 있다.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뱅앤올룹슨의 가치가 투여된 제품의 일례로 최근에 출시된 베오타임(BeoTime)을 살펴보자. 알람시계 베오타임의 제작 목표는 사용자에게 놀라움과 영감을 주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디자인만 봐도 여타 다른 시계들과는 차별화된다. 사실 베오타임은 단순한 흑백의 LCD 화면과 활동 센서, 자동 LCD화면 조명기능이라는 다소 ‘소박한’기술들로 포장돼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알람 소리를 넣을 수 있고 만지기만 해도 알람이 자동으로 몇 분간 멈추는(snoozing) 기능을 한다. 작고 가벼워 침실에 부담 없이 둘 수도 있다. 심지어 다른 뱅앤올룹슨 기기를 자동으로 끄는 타임아웃 기능도 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기존의 지루할 수 있는 제품을 특별한 제품으로 재구성 한 것이다.
 
3) 레고 (Lego)
레고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감 브랜드이다. 레고라는 이름의 장난감은 1934년부터 등장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레고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이제는 다양한 사업영역으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목수였던 올레 크리스찬센 (Ole Kirk Christiansen)이 창립한 이 회사는 현재 130여 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으로서 세계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장난감 회사가 되었지만, 회사는 아직 창립자 가족의 소유로 남아있다.

레고는 1940년대부터 플라스틱 블록을 이용한 장난감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1949년에는 영국에서 발행된 특허를 사들여 블록들을 끼워서 만들 수 있는 형태의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간단하면서도 창의성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레고의 특징은 어린이들의 창의력을 발전시켜주는 장난감으로 자리매김 하기에 충분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레고는 형형색색의 블록을 끼워 맞추어 현대적인 완성물을 표현 할 수 있다고 평가받았다.

승승장구 잘나가던 레고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2004년 창사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판매실적을  기록하게 된다. 다른 장난감사 마텔 (Mattel)에 회사가 넘어간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레고는 전 맥킨지 컨설팅 회사 경영자 출신인 욜겐 크눕스톨프(Jorgen Vig Knudstorp)를 경영자로 새로 영입했다. 새 경영진은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재고하고 앞으로의 전략방향을 다시 잡아 레고라는 회사를 새로 일으켰다.

브랜드의 정체성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에서 ‘모두를 위한 평생 상품’으로 바뀌었다. 전통적인 장난감 시장이 컴퓨터 게임에 밀려서 축소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유명 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스타워즈를 레고 블럭을 이용한 게임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 자체 영화 제작과 티셔츠 등 파생상품을 만들어 브랜드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레고를 이용한 놀이공원도 유럽과 미국에서뿐 아니라 아시아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렇듯 다가오는 위기에 맞선 전략은 디자인 기업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잘 맞아 떨어졌다. 디자인이라는 핵심 역량에만 힘을 쏟지 않고 핵심역량을 이용한 사업 다각화는 레고를 위기에서 구출해 냈다.

덴마크가 디자인 강국이 된 배경은?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장인정신: 덴마크의 산업화는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비교적 늦었다.  산업화, 대량생산이라는 메가 트렌드가 나중에 들어온 만큼, 덴마크에는 장인 정신과 고품질 상품을 선호하는 전통이 계속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전통은 산업화된 제조업분야에도 그대로 뿌리내리게 된다. 그래서 디자인 분야에서도 건축가들과 장인들이 제품생산을 가까이서 살피고 관찰한다.

재질에 초점을 둔 디자인: 덴마크에서 나오는 가벼운 재질의 목재 가구는 북유럽의 자연을 연상시키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덴마크의 전통적 가구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혁신을 불러오기 이전부터 가구시장에서 덴마크 제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민주주의적이고 개인적인 디자인: 디자이너에게 최대한 많은 자유를 주는 덴마크 디자인의 추세는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유명 건축가이자 건축 평론가인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은 민주주의적이고 인간적인 삶에 중점을 두는 가치를 디자인에 불러와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는 점차 덴마크 사회의 주류 관점이 되었다.

정부주도의 디자인 인재 육성: 많은 우수 인재들이 등장하면서 덴마크가 디자인 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토양이 제대로 무르익기 시작했다. 새롭게 등장한 디자이너들은 개인이 원하는 디자인을 자유롭게 발전시키면서 제작공정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중소규모의 기업들이 주로 이때 등장하기 시작한 디자이너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1960년대에 왕립 가구 예술 학교(the Furniture School at the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가 설립되어 덴마크 가구 디자인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정부가 나서 지속성장성 높은 디자인을 지원
디자인은 서비스나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부터 제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따라 제품의 제작, 사용, 폐기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좋은 디자인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경제성과 이어지고 있다.

이 점에서 굉장히 빨랐던 나라가 덴마크이다. 덴마크에서는 지속성장 가능성이 높은 디자인을 인덱스상(INDEX Award)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시상하고 있다. 정부는 수상자들에게 50만 유로를 매년 포상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덴마크 정부는 디자인 제품을 단순히 값비싼 장식품으로 한정 짓지 않고,  “인체, 집, 직장, 놀이, 공동체”라는 다섯 가지 카테고리에서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로 디자인을 평가한다. 이미 수많은 덴마크 디자이너들과 디자인 회사들은 인간중심적이고 전체적인(holistic) 관점을 가지고 일하는 전통을 따르는 덕에 매년 인덱스상 수여식에 뛰어난 디자인들을 쏟아놓고 있다.

우리 기업들에게 주는 시사점
덴마크는2차 세계대전 이후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강점을 가지게 된 국가로 분류될 수 있다. 덴마크는 제품과 서비스 외형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덴마크에서 디자인은 소극적 의미가 아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서 사용자 중심으로 제품을 혁신하고 변모시키는 점은 우리 기업들도 배울 만 하다.

우리나라에도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재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인재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기업에 달렸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자기 기업의 가치와 이념에 따라 제품 생산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하는 뱅앤울롭슨의 사례는 우리도 배울 만 하다.

김경미 IGM 객원 연구원

IGM 비즈니스 리뷰 | 기사입력: 10-09-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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