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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디자이너가 꼭 봐야 할 영화 1

디자이너에게 영화란 끊임없는 아이디어의 원천이고 참신한 크리에이티브를 찾을 수 있는 영감의 보고다. 디자이너 박경식의 눈으로 본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필자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은 일이 막히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반드시 길 건너 영화관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과도 한 달에 한번 꼴로 꼭 영화를 단체 관람한다. 극장 성격 상 흥행 위주의 영화가 주를 이루지만 이런 습관 때문인지 직원들이 스스로 다른 영화들을 찾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영화를 자주 찾는 건 이 회사뿐일까, 설사 디자인 회사가 아니더라도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단지 재미, 흥미를 제공해주는 엔터테인먼트만은 아니다. 디자이너에게는 끊임없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고, 늘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참신한 크리에이티브를 찾아 다니는 이들에게 영화는 항상 옆에 끼고 다녀야 할 영감의 원천이다. 더욱이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하듯 실로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완성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다방면의 아이디어를 얻고 영감을 받기에 영화보다 나은 것은 없다.

박경식 디자인하는 영화 애호가│에디터 이찬희│디자인 김효진

히치콕이 선택한 것, 천재의 즉흥성
2010년 경인년(庚寅年)을 맞아 디자이너, 디자인 그리고 영화를 접목시키는 시도를 해볼까 한다. 평론가나 영화인의 입장이 아니라 디자이너 입장에서 감히 영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시나리오의 전개, 배우들의 연기, 감독의 연출은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임은 틀림없지만 본 칼럼에서는 디자인 장르에 속한 타이틀 시퀀스, 영화 포스터, 예고편, 의상 및 분장, 특수효과 및 cg, 캐릭터, 세트, 무대 디자인, 장면 설정 및 구도 등 디자인적,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에 조금 더 치중하고자 한다.
이미 본 영화일수도 있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분석을 요한다면 영화는 영화를 넘어선 영감의 원천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 감독의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는 매우 좋은 시작점이라 생각한다. 1959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지금까지 웬만한 명작 걸작선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며, 2008년도 미국필름협회(afi, american film institute)에서 역대 영화 40위, 미스터리 장르(국내에서는 스릴러 장르 정도)에서 7위를 기록할 정도로 저명한 영화다. 미국 개봉 당시에는 흑백이었으나 dvd로 복각되었을 때는 컬러를 새로 입혔다.

줄거리는 뉴욕 맨해튼 메디슨가에 광고 ae*로 종사하는 로버트 손힐(robert thornhill - 캐리 그렌트 역)이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면서 어떤 사건에 연류되는 첩보영화다. 손힐이 여기 저기 경찰과 악당들을 피해 다니면서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연출되는데, 이 때의 장면이 마치 사진 작품처럼 조형적으로 매우 아름답다. 또한 이 영화에는 역사와 픽션이 함께 공존해 더욱 흥미진진한데, 1952년도에 완공된 un 본부가 이 영화에 처음으로 선보이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역대 미국 대통령 얼굴들이 새겨진 러쉬모어 산(할리우드 최고의 관광명소)이 위험한 대결의 장소로 탈바꿈 한다. 실제로 이 장면은 처음의 시나리오에는 존재하지 않은 장면이었다고 한다. 당시 각본을 쓴 어네스트 리먼(ernest lehman)과 히치콕 감독이 촬영 중 주인공이 러쉬모어 산 링컨 대통령 콧구멍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제작 중에도 이 영화의 가제로 < 링컨의 콧구멍에 숨은 사나이> 가 거론됐다고 한다.
이렇게 장면들이 즉석에서 연상, 촬영되면서 짜깁기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황량한 평야에서 경비행기에 쫓기는 모습, 달리는 기차에서 경찰을 피해 다니는 장면, 뉴욕 중앙역 격인 그랜드센트럴 스테이션(grand central station)에서의 추격신 등의 이미지들이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후에 히치콕은 신문에서 읽은 cia가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을 미끼로 간첩과 범죄자를 속출한다는 기사를 보고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007 첩보 영화 시리즈에 어떤 큰 영향을 줬으며, 영화 곳곳에서 그 흔적이 다분히 보인다.


디자이너가 주목할 것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디자이너가 미소 지을만한 ‘것’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소품에서부터 의상, 그리고 각 장면과 배경 등 디자이너가 흥미롭게 주목할 만한 장치들이 매우 다양하다. 광고업에 종사하는 손힐이 시카고로 가기 위해 가까스로 경찰을 피해 기차에 몰래 타는데 이때 아름다운 금발 미녀가 그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식당칸에 합석하게 된다. 자신을 ‘이브 켄델(eve kendall)’로 소개하는데 직업은 ‘산업 디자이너 industrial designer’라고 말한다. 산업 디자인 업종이 예나 지금 꽤 선망받는 직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에서 두 주인공 남녀가 디자이너 출신인 건 지금도 보기 힘든 경우다. 히치콕은 왜 주인공의 직업을 디자이너로 정하였을까. 아무튼 이런 설정 탓에 상당히 흥미로운 디자인적 요소가 영화 곳곳에 숨어 있다.
먼저, 손힐의 쥐색 양복이다. 손힐의 패션스타일은 당시 맨해튼 메디슨의 광고쟁들이 즐겨 입었던 스타일이었고, 후에 손힐은 영화 역사상 가장 옷 잘 입은 캐릭터로 남성패션지 < gq> 에서 뽑힐 정도의 아이콘이 된다. 이에 대한 오마주 역시 수많은 다른 영화에서 보여지는데, 톰 크루즈가 살인 청부업자로 등장하는 < 콜레트럴 collateral> (2004), 공상과학 영화 < 페이첵 paycheck> (2003)의 벤 애플렉이 입는 양복들이 가장 유사한 예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영화가 끝날 무렵, 악당들이 숨어 있는 집에 주인공이 몰래 침투하는데 벼랑에 지어진 집이 마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낙수장(falling water)이 연상되는 듯하여 이 또한 히치콕의 모더니즘에 대한 향연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집 내부의 가구와 소품들은 50년 당시 인기있었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오브제, 중국산 카페트, 그리고 남미의 유물들이다. 이들 모든 아이템은 현재까지도 각광받고 있어 역시 히치콕의 감성과 철학, 모던아트에 대한 선견지명은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시작되면서 보여지는 타이틀 시퀀스, 이 장면이 디자이너가 가장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일 것이다. 디자인 거장인 솔 바스(saul bass)가 디자인했으며 웬만한 그래픽 디자인 역사책에 단골로 소개되는 장면이다. 근래 영화들의 현란한 타이틀 시퀀스보다는 매우 기초적이고 볼품없을지 모르지만 많은 디자인 학자들은 소위 키네틱 타이포그래피(kinetic typography)의 시초라고 입 모아 말하고 있다.
이렇게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두 주인공이 기차에서 뜨거운 밤을 보낼 것이라는 암시로 기차가 터널 안으로 마구 달린다)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는 디자인 교양에 가까운 대작이다. 물론 탄탄한 시나리오, 영화적 장치들(이를테면 맥거핀 효과**의 사용)이 즐비해 영화인에게 끊임 없는 사랑을 받아왔지만, 그에 더해 디자이너가 꼭 봐야 할 영화임에 틀림 없다. 솔 바스의 타이틀 시퀀스, 주인공의 클래식한 양복, 무대디자인이나 다양한 영화 속 소품들이 50년 지난 지금도 시대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각광 받고 있으며 디자이너에게 히치콕적인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 ae(acount utive)

광고대행사와 광고주 사이의 연락 및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대행사의 책임자. 약칭은 ae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한참 진행되던 중 미국의 광고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뉴욕 맨하튼 매디슨가가 그 중심이었다. 당시 그런 ‘광고쟁이’들을 지칭하여 mad men이라 했고, 참고로 최근 amc미국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중인 < mad men> 이 당시 광고쟁이들의 생활상을 그리는 드라마이다. 이는 후에도 다루겠지만, 역시 필자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드라마이다.

** 맥거핀 효과(macguffin effect)

‘맥거핀’이란, 줄거리에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잡아 끌어 긴장감이나 의문을 자아내게 만드는 장치를 뜻하는 말. 히치콕 감독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으며 후에 영화 줄거리에 자주 사용되는 장치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맥거핀은 마이크로필름인 기밀문서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