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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시각

파리 거리에 예술을 두르다

[박건형 순회특파원 좌충우돌 유럽통신] 파리 거리에 예술을 두르다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허문 그들

▲ 파리의 거리 곳곳에서는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작품들을 쉽게 대할 수 있다. 위쪽부터 카이 언덕에 그려진 자나&JS의 작품과 미스티크의 사인이 들어간 여성 그림, 역동적인 남성을 표현한 몽마르트르 언덕의 제롬 메나제 작품. 

‘가치’에 대한 평가는 보통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된다. 선 안쪽은 음악 또는 예술이고 바깥쪽은 소음이나 낙서라는 식이다. 그러나 선의 경계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바깥쪽에서는 선을 넘어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일부는 어느새 선 안에 들어와 있다. 피카소가 그랬고, 앤디 워홀이 그랬듯 선을 넘은 사람들은 선각자, 개척자로 추앙받는다.

키스 헤링과 장 미셸 바스키야가 미국에서 ‘그래피티’(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를 개척하던 1980년대 파리에도 낙서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 파리 남쪽의 카이 언덕을 찾았다. 언덕 곳곳의 거리 표지판 아래나 상점 담벼락 구석에서 이제는 거장으로 불리는 이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실연 뒤의 쓸쓸함을 달래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하는 문구를 담은 그림을 카이 언덕 이곳저곳에 그렸던 ‘미스티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유하는 것은 갇히는 것이다.’ ‘나를 잠들게 하기 위해, 너는 꿈을 꾸게 한다.’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함께 적혀 있는 문구들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느낌이 와닿지 않지만, 작품 속의 눈빛만으로도 미스티크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느껴졌다. 1980년대 초반 그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래피티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조차 낯선 분야였다. 경찰들은 그의 그림을 단순한 낙서로 여겨 지우기 바빴고, 그렇게 초창기 작품들은 사라졌다. 1990년대 후반 미스티크는 상점 주인들에게 그림을 그리겠다는 허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미스티크가 그린 검은색 드레스의 여인들은 카이 언덕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전시회를 갖는 유명 아티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화살표 사인으로 유명한 ‘길거리 예술의 전설’ 제프 에어로졸의 작품이나 블렉 르 라, 스피디 그라피토, 자나 & JS 등의 그림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가졌던 제롬 메나제의 작품은 예술가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찾았다. 벽에 그려진, 자유를 갈망하는 듯이 움직이는 메나제의 역동적인 남성들은 ‘예술’과 ‘낙서’의 경계를 거침 없이 허물었다. 권총을 든 여성을 담은 빨간 배경의 작품에다 미스티크는 ‘인정받는 예술은 이미 죽은 예술이다.’라고 적었다. 담벼락을 캔버스로, 길거리를 화랑으로 삼아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하고 계속 지워지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피티가 예술이라는 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무너진 도시 파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만남이었다.

kitsch@seoul.co.kr

서울신문 | 2010-09-02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