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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사물과 사람 사이]디자인은 장 담그듯…

이일훈 | 건축가

17세기 초에 한반도에 들어온 고추의 매운맛은 유전자처럼 이어진다. 고추에 비유하는 속담까지 있으니 입을 통해 말이 된 셈. 귀화식물의 토착화를 넘어 아예 토종이 되었다.

고추가 들어오기 훨씬 전 어느 시대나 늘 하던 일인데 마치 이제 처음 하는 듯 수선떠는 짓이 있으니 바로 ‘디자인’이다. 반성해서 고치고, 필요한 것을 만들고, 더 좋게 야무지게, 여러 사람을 위하여, 모양내기 전에 쓸모 있게…. 언제나 지켜야 할 권유사항은 실천이 중요하다. 말과 행사만 앞세우다 가히 디자인 지옥이 되리라. 그러면 ‘엿장수 맘대로’처럼 ‘디자이너 맘대로’가 된다. 바로 디자인 과잉이요, 체증이다.

디자인은 겉치레 꾸밈과 장식이 아니다. 일상의 질을 높이는 디자인이 되려면 보이지 않는 바탕에 충실해야 한다. 비 내리면 물 고이고, 눈 내리면 빙판 되는 웅덩이 옆에 디자인(?)된 간판과 정류장을 만든다고 좋은 길이 되겠는가. 울퉁불퉁 길바닥 반듯하게 펴는 것이 디자인(!)의 출발이다. 눈요기보다 걸음걸이의 안전을 위하는 것이 먼저다. 디자인은 입맛을 속이는 인공조미료가 아니다. 맛있는 고추장 담그려면 먼저 좋은 고추를 골라야 하듯 디자인의 실행에도 순서가 있다. 그것이 디자인의 생활화다.

입력 : 2010-08-30 21:55:11ㅣ수정 : 2010-08-30 23: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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